시대가 바뀌긴 했다. 1949년 병역법이 제정된 이후 69년 만에 처음으로 ‘양심적 병역거부’가 무죄 선고를 받았다. 군대와 전쟁에 반대하는 확고한 신념이 있다면 입대하지 않아도 ‘빨간줄’이 그이지 않게 됐다.
대법원은 지난 1일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입영을 거부한 여호와의증인 신도 오승헌 씨(34)에게 징역 1년 6월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깨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창원지법으로 환송했다. 소위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한 2004년 전원합의체 판결을 스스로 뒤집은 것이다.
이번 판결의 핵심은 “현역입영 또는 소집통지서를 받은 사람이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일이나 소집일로부터 일정 기간이 지나도 입영하지 않거나 소집에 응하지 아니한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병역법 조항의 ‘정당한 사유’에 종교적 신념을 포함한 것이다.
여호와의증인은 칼을 잡지 말고 서로 사랑하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이유로 전쟁과 병역을 거부한다. 오씨는 1997년 당시 만13세 무렵 여호와의증인 신도가 된 이후 2003년 만19세가 되어 병무청으로부터 소집통지서를 받았으나 종교적 신념을 들며 입영을 거부했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에 앞서 헌법재판소는 이 같은 사람들을 위해 대체복무제를 마련하지 않은 것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국방부는 소위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복무기간을 36개월로 한 대체복무제를 곧 발표할 예정이다.
# ‘양심적 병역거부’가 아닌 ‘종교적 병역거부’
그들이 군대를 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칼을 잡지 말고 서로 사랑하라’는 종교적 가르침에 따른 것이다. 그들은 병무청으로부터 소집통지서를 받아도 이같은 신념으로 입영을 거부해왔다.
적어도 필자가 느끼기에 대다수 많은 불특정 국민들이 이들의 입영거부에 ‘양심’이라는 정당성을 부여하지는 않는다. 만약 이들이 말하는 ‘양심’이라는 도덕적 가치가 사회시스템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해서는 사회를 이루고 있는 불특정 다수의 구성원으로부터 공감을 받아야 한다.
군대는 우리 사회 전반이 공감하고 있는 시스템의 일부이고, 그들은 군대를 주관적 판단으로 비양심 조직으로 구분할 수 없다.
따라서 그들에게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관대한 문장의 사용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 이들의 집단행동에는 양심이 아닌 ‘종교’라는 단어가 어울린다. /최재원 기자
# ‘양심’을 향한 분노와 감정을 거두길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형사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대한민국이 들썩이고 있다. 군대 다녀온 사람은 비양심적이냐는 울분부터 여호와의 증인이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온다. 한마디로 군대라는 조직에 대한 ‘감정(感情)’이 날것 그대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굳이 감정이라는 단어를 꺼낸 이유는 대한민국 헌법 19조에 분명히 ‘양심의 자유’가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양심이라는 단어를 다소 윤리적인 측면에서 받아들이지만 법에서 명시하는 양심은 사상의 자유까지 포함하는 광의의 양심이다. 정확하게는 도덕성보단 신념이나 가치관과 그 속성이 맞닿아 있다. 대법원이 처벌할 수 없다는 판결과 함께 대체복무제를 마련하라고 주문한 배경에는 광의의 양심이 자리하고 있다.
헌법에는 사상을 포함한 양심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명시하고 군대가 걸리면 그러한 헌법조문이 효력을 잃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무논리이자 법의 충돌이다. 물론 국민감정을 배제할 수는 없는만큼 군필자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을 정도의 대체복무방안은 필요하다.
병역거부자들은 자의로, 말 그대로 사상과 양심을 걸고 군대대신 ‘감방’을 선택한 이들이다. 국가가 양심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말하려면 감방 대신 다른 선택지를 마련하는 것 역시 국가의 의무다. 남북통일을 생각하는 대한민국이라면 이러한 선택지는 더더욱 필요하다. /박영주 기자
#양심적 병역거부(?) 양심 없는 사람들의 소리
국위 선양을 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운동선수들의 병역면제와 관련해 부작용이 발생한 것을 지켜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병역회피’의 문을 열어준 대법원의 판결을 인정할 수 없다.
특히 방위산업체 등으로 대체복무가 진행되고 있지만 이마저도 불성실하게 보내 논란이 일었으며, 현재는 사라졌지만 연예 병사제도 또한 그 문제가 많아 폐지됐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복무기간이 현역으로 복무하는 것보다 길다고는 하지만 대부분의 남성이 군대를 다녀오는 상황에서 이를 평등하다고 받아들일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고민해봐야 한다.
특히 향후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현역병보다 복무기간이 더 길다는 점을 문제 삼을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 만약 이러한 일이 벌어진다면 그때도 이들의 입장을 받아들여줄 것인가.
또한 양심의 기준을 어디다 둘 것인가. 정부가 관심법이라도 쓴다는 것인가. 단지 여호와의 증인 신자라는 이유만으로 ‘양심적’이라는 단어를 붙여줄 수 있는가.
남북이 평화모드로 가기에 이제는 자유와 인권의 향상을 도모해볼 수 있다는 순진한 생각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우리나라의 정권이 바뀌고, 대외적인 외교 상황이 바뀌어 한반도의 안보 위기가 고조될 가능성은 이제 생각하지 않는가.
차라리 모병제를 주장하면 지지라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왜 국민의 4대 의무 중 병역에서만 ‘양심’이라는 변수가 작용하는지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 그들은 공동체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대법원 판결은 아직 대체복무제와 현역 입영자들에 대한 보상 방안이 마련되지 않은 점에서 다소 성급한 면이 있지만, 자유와 인권의 원칙을 확립한 것에 의미가 있다. 남과 북이 평화 국면으로 접어들며 무력 경쟁을 완화해 나가고 있다. 이 점에서 병역법의 ‘정당한 사유’에 종교적 신념과 양심의 자유를 포함한 판단은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도 부합한다.
흔히 병역의 의무를 국민의 4대 의무라고 한다. 나머지 3개는 납세, 근로, 교육이다. 이들 4대 의무는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의 유지와 번영을 위한 구성원의 책임이다. 병역의 의무 부과 대상인 대한민국 남성이 종교적 신념과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군 복무를 거부했다면, 그 대신 무언가 할 일이 주어져야만 한다.
그래서 대체복무제 도입이 오랫동안 논의돼 왔다. 국방부는 조만간 이와 관련한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36개월 동안 교정시설에서 복무토론 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이를 두고 국가인권위 권고나 국제기준에 못 미친다는 비판은 있다. 그러나 기간을 얼마로 하고 방식을 어떻게 하든 병역거부자들이 공동체를 위해 국방에 준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결국 핵심은 공동체다. 국가라는 하나의 공동체를 위해 의무를 다한 사람이라면 응당 그에 대한 혜택이 주어져야 한다. 현역병으로 복무를 마친 예비역들이 상실감을 느끼게 해서는 안 된다. 또한 병역거부자들이 마치 무임승차를 하는 것처럼 보여서도 안 된다. 최근 체육계가 병역 문제로 비난받은 일을 잘 되새겨봐야 한다. /성상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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