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봉호의 시대읽기] 주변으로 밀려난 기독교

손봉호 | 기사입력 2018/11/19 [09:02]

[손봉호의 시대읽기] 주변으로 밀려난 기독교

손봉호 | 입력 : 2018/11/19 [09:02]

손봉호 박사(사진)는 서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 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에서 사회철학과 사회윤리학을 가르쳤으며, 한성대학교 이사장, 동덕여자대학교 제6대 총장을 역임했다.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로 현재는 고신대학교 석좌교수, 기아대책 이사장 등을 맡고 있다.

 

한국인은 한복을 입지 않는다. 한복은 명절에만 입는 사치품이 되었다. 현대인에게 종교는 마치 한국인의 한복처럼 되고 말았다. 우리 삶의 한가운데는 경제와 정치, 기술, 학문이 자리 잡고 있고, 스포츠와 예술, 연예 등은 중간지대에서 왔다 갔다 하는데, 한때 삶의 중심부에 있었던 종교는 주변으로 밀려나 사적인 공간에서 쉬는 시간에나 관심을 쓰는 대상이 되고 말았다. 기독교도 예외가 아니다. 

 

이런 현상은 과학적 사고가 중요해진 현대 문화의 발전 과정이 만들어 낸 결과다. 현대 과학은 16세기의 종교개혁을 통해 출현할 수 있었음에도 자신을 끌어올린 사닥다리를 밀어 버렸다. 기독교의 권위는 떨어졌고,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발언권을 상실했다. 그 결과, 탈종교화가 문화 발전의 척도로 인식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기독교의 이런 쇠락은 결코 불가피한 것은 아니었다. 만약 교회와 신학이 좀 더 심각하고 철저하게 문화의 변화와 씨름했더라면 오늘날의 이런 결과는 피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공공영역을 주도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요즘 과학적 사고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조롱을 받고 있고, 과학기술이 주도하는 현대 문명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데 실패했다는 인식이 생겨나고 있다. 심지어 최근의 과학기술은 생산성 향상에도 별로 이바지하지 못했다는 주장까지 대두하고 있다. 기독교 신학은 이런 결과를 예측할 수 있어야 했고, 그것을 설득력 있게 제시했어야 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자유주의 신학은 너무 빨리 과학적 사고에 아첨해 버렸고, 보수신학은 너무 강하게 과학적 사고와 담을 쌓았다. 과학적 사고의 특징과 약점을 성경적 입장에서 철저히 파헤치고 그것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결국 정치, 경제, 기술, 학문 등이 공공영역을 주도하고, 기독교와 기독교 신학은 거기서 무의미하게(irrelevant) 되고 말았다.

 

삶의 주변으로 물러난 기독교는 오직 영혼의 구원과 개인적 경건에만 관심을 기울일 뿐, 인간의 삶을 가장 크게 지배하고 사람들이 관심과 시간 대부분을 쏟아 붓는 공공영역은 내팽개치고 말았다. 결국, 하나님의 주권은 오직 사적인 공간과 휴식 시간만 지배할 뿐 광대한 공적 공간과 시간에는 무력한 것이 되고 말았다. 이런 이원론 때문에 기도와 전도에 열정을 쏟는 그리스도인조차 정치계나 기업계에 들어가면 불신자와 다름없이 행동한다. 

 

사적 공간에 칩거하게 되자 기독교는 편협한 집단 이익과 자체의 정체성 유지에만 급급할 뿐 공적 이익에는 무관심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성경에는 동성애에 대한 경고보다는 가난한 자를 돌보고 정의롭게 행동하라는 가르침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런데도 한국과 미국의 보수 교회는 후자는 무시하고 전자에만 열정을 보인다.

 

특별히 안타까운 것은 오늘날 공공영역에서 매우 중요하고 소중한 이념들의 상당수는 성경의 가르침에 근거한 것인데, 기독교계는 이들의 정신적 특허권을 이용하지 못하고 심지어는 그 사실을 인식하지도 못하는 것 같다. 민주주의, 노예 해방, 여성과 어린이 권리 보호, 가난한 자와 장애인 복지 등은 모두 성경이 강조하여 가르치는 것들로, 전 세계 모든 공공영역이 추구하는 이념들이다.

 

철학자 하버마스(J. Habermas), 매킨타이 (A. MacIntyre), 심지어 무슬림 지도자까지 기본 인권 사상은 기독교의 유산이라고 증언하고 있는데도 기독교는 인권의 가치를 강조하고 그것을 보호하고 신장하기 위해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이런 이원론은 특히 한국 교회에 두드러진다. 기독교가 유교적 세계관이 지배하던 사회에 도입되었기 때문에 사적 공간에 피신한 것은 이해가 된다. 그러나 독립운동, 개화활동, 신교육과 현대 의료 도입 등에서 앞장선 기독교는 공적 공간으로 진출할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는데도 실패했다.

 

그렇게 할 만한 공공신학이 전혀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상하게도 미국에서 개발된 ‘교회와 국가의 분리’(separation of church and state) 원칙이 우리나라에서는 ‘종교’와 ‘정치’의 분리(separation of religion and politics)로 잘못 인식되어 기독교인은 정치를 비롯한 공공영역 활동을 삼가는 전통이 굳어진 것이다. 

 

지금이라도 기독교는 공적 영역으로 관심을 돌려야 한다. 인권 신장, 환경보존, 사회정의 등 모든 사람에게 이익을 주는 이런 활동에 누구보다 더 적극적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고, 사회에 이익이 되며, 교회의 위상과 도덕적 권위를 높여서 복음 전파에도 도움을 줄 것이다. 세속 문화의 공격으로부터 신앙을 지키려는 소극적인 노력보다 훨씬 더 효과적으로 기독교의 정체성을 보존하고 위상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본 내용은 <주변으로 밀려난 기독교>에 수록되었던 원고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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