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봉호의 시대읽기] 기독교는 무식한 종교가 아니다

손봉호 | 기사입력 2018/12/10 [09:08]

[손봉호의 시대읽기] 기독교는 무식한 종교가 아니다

손봉호 | 입력 : 2018/12/10 [09:08]

손봉호 박사(사진)는 서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 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에서 사회철학과 사회윤리학을 가르쳤으며, 한성대학교 이사장, 동덕여자대학교 제6대 총장을 역임했다.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로 현재는 고신대학교 석좌교수, 기아대책 이사장 등을 맡고 있다.

 

1970년까지만 해도 한국 교계에서 신학자의 위상은 매우 높았다. 박형룡, 박윤선, 한철하 등 뛰어난 신학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들 수준에 이르지 못한 신학자들도 교수란 사실만으로 존경 받았다. 

 

신학자의 수도 적어서 희소가치도 높았다. 교단에서 중요한 결정에서 신학자들의 의견이 결정적이었고, 중요한 집회나 큰 교회에서 신학 교수를 강사로 모시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했다. 신학 교수가 목회자가 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위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신학 교수들의 운명은 교단 정치가들이 결정하고, 이단이 누구인지를 결정하는데도 신학자들의 의견은 묻지 않는다. 큰 교회 목사로 차출되는 것은 오히려 유능한 신학자의 표지가 되고 말았다. 한국 교회의 신학은 신학자들이 아니라 교단 정치가들이 좌지우지한다.  

 

“꿩 잡는 것이 매”고 한국 교회의 꿩은 교인 수와 헌금 액수다. 그런데 많은 지식과 심오한 이론은 그런 꿩을 잡는 데 별로 효과적이 아니므로 홀대 받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신학자가 잘 나갈 때 너무 많은 젊은이가 신학 공부를 시작했기에 이제는 신학교가 과도하게 많은데도 가르칠 자리가 부족하다. 과잉 상태니 신학자의 가치가 떨어지고 신학의 가치도 덩달아 떨어지고 있다. 

 

신학의 저평가는 모든 지식, 이론, 지성으로 연장되었다. 교회에서 지식인들의 위치는 헌금을 많이 하는 기업인들이나 인기 있는 연예인들에 한참 못 미친다. 지금 한국 교회는 과거 어느 때보다 더 반지식적이고 반지성적이다. 

 

물론 이런 상황에 대해서는 지식인들에게도 일부 책임이 있다. 신앙과 신학에 대해서 진지하게 알려 하기보다는 겉멋만 들어 만사에 냉소적이거나 아니면 철저히 이원론적이 되어서 자신들의 전문 지식은 신앙과 전혀 무관하게 취급한다. 신앙과 교회에 효과적인 비판도 하지 못하고 크게 공헌하지도 않는다. 

 

지식의 저평가는 성경의 가르침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바울 사도는 헬라인이 찾는 지혜는 십자가의 도에 비해서 어리석은 것이며(고전 1:22-25), 당대의 학문을 대변한 철학은 세상의 초등학문으로 속임수나 다름없는 것으로 취급하였다(골 2:8). 

 

2세기 때 교수 터툴리아누스(Tertullianus)는  “비논리적이기 때문에 믿는다”(Credo quia absurdum)라고 하면서 “(철학의 도시) 아테네와 (믿음의 도시) 예루살렘이 무슨 상관이 있는가?”라고 물음으로써 믿음의 세계에는 지식이 설 자리가 없다고 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알기 위해서 믿어라”(crede, ut intelligas)고 했고, 안셀무스(Anselmus)도 “알기 위해서 믿는다”(Credo ut intelligam)고 했다. 모두 믿음이 지식에 우선하고 믿음이 있어야 올바른 지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기독교는 믿음의 종교지 지식의 종교가 아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런 주장을 펼친 바울과 터툴리아누스, 아우구스티누스, 안셀무스가 모두 당대의 뛰어난 지식인이었다는 사실이다. 아우구스티누스와 안셀무스는 기독교 신학에서뿐만 아니라 일반 철학에서도 중요하게 취급되고, 칼뱅은 23세 때 쓴 〈세네카의 관용론 주석〉에서 라틴 저자만 해도 55명을 인용했다. 

 

그들 외에도 기독교는 토마스 아퀴나스, 루터, 카이퍼, 바르트(K. Barth), 틸리히(P. Tillich), 니버, 도여베르트, 루이스 등 위대한 신학자들과 지식인들을 수없이 배출했다. 만약 그들이 없었더라면 그 후 역사에서 기독교가 누렸던 위상이 과연 가능했겠으며 심지어 믿음과 지식의 관계에 대해서 바로 알 수 있었겠는가? 거대한 세속 문화의 흐름에서 기독교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겠는가? 

 

짐승과 달리 인간의 삶은 좋든 나쁘든 지식에 의해 영위되었고, 현대인의 삶은 대부분 지식이 결정한다. 현대 사회는 ‘지식 기반 사회’가 되었고, 이런 지식의 형성과 축적에는 기독교가 크게 공헌했다. 삶의 방식, 삶의 목적, 가치판단, 세계관, 심지어 지식까지 모두 인간이 개발하고 축적한 지식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여기서 성경 이해, 신앙생활, 교회 사역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성경 자체는 인간 지식에 의해 결정되거나 영향을 받지 않지만, 성경 해석과 구체적인 적용은 지식의 영향을 안 받을 수 없다. 

 

지식의 내용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지식 추구에 필요한 태도다. 모든 거짓, 편견, 편애, 욕망, 감정, 부분적인 것, 일방적인 것, 비논리적이고 불합리한 것을 배제하고 오직 사실 자체만을 정확하게 바로 알려 하는 노력은 학문하는 자의 기본자세다. 

 

거기에는 반드시 끊임없는 비판과 철저한 자기반성이 동반되어야 한다. 비록 그런 자세가 진리 발견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지 않고는 어떤 진리도 발견할 수 없다. 그런 태도를 갖추지 못한 사람은 학자가 될 수 없고 지성인이라 할 수 없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만신창이의 처참한 상황에 처해 있다. 모든 고등종교 중에 가장 불신을 가장 많이 받고 있고, 세상의 조롱과 조소의 대상이 되어 있다. 그 원인 가운데 하나가 그동안 한국 교회에서 자란 반지식적이고 반지성적인 경향이다. 신학도, 지식도 다 무시하고 감정의 흥분을 성령의 감동으로 미화해 꿩을 잘 잡는 매들이 판을 치는 것이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란 사실을 제외한 모든 영역에 학문 연구자의 태도로 접근했더라면 이런 시궁창에 빠져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기독교는 지식의 종교는 아니지만, 무식한 종교가 결코 아니다.

 

*본 내용은 <주변으로 밀려난 기독교>에 수록되었던 원고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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