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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봉호의 시대읽기] 인권 존중, 기독교의 유산

손봉호 | 기사입력 2019/01/14 [08:54]

[손봉호의 시대읽기] 인권 존중, 기독교의 유산

손봉호 | 입력 : 2019/01/14 [08:54]

손봉호 박사(사진)는 서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 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에서 사회철학과 사회윤리학을 가르쳤으며, 한성대학교 이사장, 동덕여자대학교 제6대 총장을 역임했다.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로 현재는 고신대학교 석좌교수, 기아대책 이사장 등을 맡고 있다.

 

북한에 대해서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할 것인가에 대해 의견 차이가 크다. 나는 적어도 두 가지의 근본 입장을 동시에 취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굶주리는 북한 주민들이 무조건 먹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과 주민에 대한 북한 정권의 인권 탄압을 강력하게 비판하고 인권 상황 개선을 위해서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반되는 것같이 보이지만, 생존도 기본 인권이라면 이 입장은 모두 북한 주민의 인권 보장에 초점을 두고 있다 할 수 있다. 

 

동서를 막론하고 고대에는 인권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인간에게 이성이 있기에 짐승과 구별된다고(animal rationale-Aristoteles) 믿었던 그리스 시대에도 노예, 여자, 외국인들에게는 자유시민과 동등한 권리를 인정하지 않았다. 삼강오륜(三綱五倫)이 있기에 인간만이 가장 고귀하다 (天地之間萬物之衆 唯人最貴-童蒙先習)고 가르친 유교 국가들에서도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존중되지 않았다. 조선 성종(成宗) 때만 해도 사람 하나의 값이 말 한 필 값보다 쌌다고 한다. 

 

사실 모든 인간에게 동등한 기본 인권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설득하기는 쉽지 않다. 인간에게만 이성이 있기에, 기본 인권은 자명하기에, 인간만이 고통을 느낄 수 있기에, 내가 남의 인권을 무시하면 남도 나의 인권을 무시할 수 있기에, 자신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사회계약을 맺었기에 등 그동안 여러 근거들이 제시되었으나 그 어느 것도 다른 사람, 특히 약자의 인권을 확실하게 존중하도록 사람들을 설득하기에는 부족했다. 모두 이론적으로 약점이 있다.

 

인권 존중을 정당화하는 데 가장 많이 이용된 주장은, 인권 개념이 자연권(natural rights)이란 것이다. 흔히 천부인권(天賦人權)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모든 인간에게 불가침의 권리가 자연적으로 주어져 있다는 것이다. 비록 모든 사람이 바로 인식하고 인정하는 것은 아니라도 한 번 인식하면 그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함축되어 있다.

 

1948년 국제연합(UN)이 제정해 발표한 〈세계인권선언〉(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에 당시 소련 연방에 속한 공산국가들과 사우디아라비아가 반대했지만, 지금은 몇몇 이슬람 국가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나라가 지지하고 있다. 이런 것을 보면 기본 인권이 자연권이란 주장이 증명된 것같이 보이기도 한다. 비록 실제로 존중하지는 않더라도 그런 권리가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대부분이 인정하는 것 같다.

 

그러나 과연 인권이 자연권인지, 자연권 같은 것이 존재하는가에 대해서 비판이 없지 않다. 현대 윤리학계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철학자이자 대학교수인 매킨타이어(A. Macintyre)는 모든 사람에게 자명한 인권이란 존재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이 세상에 자명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강조한다. 철저한 공동체주의자인 그는 인권이란 것도 공동체의 전통에 불과한 것으로 본다.

 

매킨타이어는 기본 인권 사상은 유대교와 기독교의 가르침이 세속화된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하나님 대신 자연을 권위로 내세운 것이란 생각이다. 1982년 이란의 유엔 대사 사이드 라자디-코라사니(Said Rajadie-Khorassani)도 국제연합의 〈보편인권선언〉은 “유대-기독교적 전통의 세속적 이해”(a secular understanding of the Judeo-Christian tradition)에 기반한 것이므로 이슬람의 법에 어긋나고 무슬림들에게 적용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인권 사상이 본래 성경에서 비롯되었음을 인정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인권 사상이 서양에서 처음 태동했고 모든 인간이 동등한 기본권을 갖고 있다는 생각은 종교개혁과 문예부흥 때 처음 등장했다. 인권 사상이 처음으로 가장 구체적으로 표현된 것은 독일의 농민전쟁과 관계해 1525년 스바비아(Swabia) 농민들이 요구한 12개 조항이었다. 그 조항의 제3조에 보면 그리스도는 양치기이든 고위층이든 차별을 두지 않고 모두 하나님의 고귀한 피로 구속했기에 농부들을 악한이라고 부르는 것은 개탄할 일이라고 했다.

 

또 제4조에는 우리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 모든 인간에게 짐승과 공중의 새, 물속의 고기들을 지배할 능력을 주셨기에 평민들은 짐승이나 새를 사냥하거나 고기를 잡을 권리가 없다고 하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동등한 권리를 주셨고 그리스도께서 계급의 구별 없이 모든 사람을 구속하셨기에 모든 사람은 기본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함축되어 있다.

 

사실 초대교회와 사도시대에도 노예제도가 있었지만 예수님이나 사도들이 강하게 비판하지 않았고, 종교개혁 이전까지는 기독교에서도 인권 개념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인권 존중의 씨앗은 사람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말씀(창 1:26, 9:6)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남자나 여자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이며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다는 가르침(고전 12:13; 갈 3:28)에 이미 심겨져 있고, 바울이 노예였던 오네시모를 형제라 부른 것(골 4:9; 몬 1:16)에서 이미 싹이 트기 시작했다. 노예제도 폐지의 기수였던 윌버포스(W. Wilberforce)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었다. 인권 존중은 하나님의 명령이고 그것이 그 타당성과 당위성의 유일한 근거다.

 

모든 인간은 동등하게 불가침의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원칙은 기독교가 인류에 끼친 가장 소중한 공헌 가운데 하나다. 만약 그 사상이 없었더라면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회 약자들이 얼마나 많은 서러움과 고통을 당하고 있겠는가? 그리스도인들은 이 위대한 유산을 소중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이 이념을 누구보다 앞장서서 우리의 삶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하고 사회에 정착시킬 책임이 있다.

 

*본 내용은 <주변으로 밀려난 기독교>에 수록되었던 원고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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