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봉호의 시대읽기] 상대적인 과학, 절대적인 성경

손봉호 | 기사입력 2019/03/11 [08:50]

[손봉호의 시대읽기] 상대적인 과학, 절대적인 성경

손봉호 | 입력 : 2019/03/11 [08:50]

손봉호 박사(사진)는 서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 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에서 사회철학과 사회윤리학을 가르쳤으며, 한성대학교 이사장, 동덕여자대학교 제6대 총장을 역임했다.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로 현재는 고신대학교 석좌교수, 기아대책 이사장 등을 맡고 있다.

 

현대 인류 문화 형성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두 현상을 꼽으라면 기독교와 과학기술을 들 수 있다. 그런데 이 두 거대한 세력은 16세기부터 애증관계 (愛憎關係)를 유지해 왔다. 기독교가 아니었다면 오늘의 과학기술은 불가능했을 것이나, 그런데 기독교에 가장 큰 위협을 가한 것은 역시 현대 과학과 과학기술이다. 

 

종교개혁은 자연이 살아 있고 신적이란 전통적인 유기적 세계관(organismic world view)을 자연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인간이 조작할 수 있다는 기계적 세계관(mechanistic world view)으로 바꿔 놓았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자연을 상대로 두려움 없이 실험할 수 있었고, 그 덕으로 오늘의 자연과학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이 호이카스(R. Hooykaas)를 비롯한 대부분의 과학 사학자들의 주장이다. 오늘날 심각해진 환경오염에 대한 책임은 기독교가 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화이트(Lynn White Jr.)도 현대 과학의 발전이 기독교 때문이란 것을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상 그 무엇도 현대 과학만큼 기독교에 위협적인 것은 없었다. 1802년 프랑스 물리학자 라플라스(P. Laplace)가 우주의 체계에 관한 자신의 저서를 나폴레옹에게 바쳤을 때 나폴레옹이 그 책에는 우주의 창조자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자 그는 “폐하, 저는 그런 가설이 필요하지 않습니다(Sire, Je n'avais pas besoin de cette hypothése-là.)”라고 대답했다. 이후 이 발언은 기독교에 대한 과학의 입장을 가장 잘 대변하는 것으로 유명하게 되었다. 

 

최근 옥스퍼드 대학의 도킨스(R. Dawkins) 교수가 쓴 《만들어진 신》(김영사, 2007)도 그런 관점을 표현한다. 오늘날 다른 어느 종교나 사상보다 자연과학이 더 큰 대중의 신뢰를 받고 있고, 과학기술이 인간에게 전대미문의 힘을 제공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공격은 기독교의 권위에 심각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초대교회가 당대 철학으로부터 받았던 것보다 훨씬 더 무서운 공격을 오늘의 기독교가 받고 있다.

 

이에 대해서 기독교는 심각하게 대처할 수밖에 없었다. 대표적인 대응은 과학적 지식의 권위를 인정하고 과학의 설명과 어긋나는 성경의 내용을 신화나 상징으로 재해석해 버리는 것이다. 자유주의 신학이 주로 이런 입장을 취했고 그 때문에 교회는 치명상을 입었다. 자연과학의 권위를 인정한다는 점에서 창조과학운동도 다르지 않다. 다만 자유주의 신학과는 달리 과학적으로 당장 설명될 수 없는 성경의 내용도 얼마든지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이렇게 과학을 이용해 성경을 옹호하려는 시도는 성경의 진위를 결정하는 기준이 과학임을 인정한다는 것을 함축한다.

 

성경의 권위를 끝까지 지키려는 상당수의 그리스도인은 성경은 과학 문서가 아니므로 성경이 과학적인지 아닌지를 문제 삼을 이유가 없다는 입장을 취한다. 성경의 권위와 과학의 권위 양자를 다 존중하면서 “신앙 따로, 과학 따로”의 편리한 해결책이라 할 수 있다. 대부분의 한국 그리스도인들과 그리스도인 과학자들이 이런 입장을 취하는 것으로 본다.

 

이런 관점에는 물론 일리가 있다. 성경의 핵심적인 개념인 ‘사랑’, ‘구원’, ‘죄’, ‘회개’ 같은 것은 과학적 연구의 대상도 아니고 과학이 논의할 능력도 없다. ‘아름다움’, ‘슬픔’, ‘존엄성’ 등도 마찬가지다. 물론 현대 과학은 모든 현상을 물리적인 것으로 설명하려는 환원주의(reductionism)와 부분적인 설명을 전체로 확대하려는 연장(延長, extrapolation)의 유혹을 받고 있고, 실제로 그런 유혹에 넘어간 ‘과학자’들이 없지 않다. 스키너(F. Skinner)처럼 자유니 존엄성이니 하는 것은 모두 허구라고 주장하거나 심지어 도덕도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심리적 현상을 생물학으로, 생물학적 현상을 화학적으로, 그리고 화학적 현상을 물리적으로 설명하려는 환원주의자들이 매우 많다. 이런 주장은 엄격하게 말하자면 실험으로 증명하는 과학이기보다는 논리적으로 추정하는 철학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과학적인 문서가 아니다”라는 주장에는 성경을 어떤 특정한 범주에 한정하는 위험이 있다. 과학적 지식은 특정한 성격을 가진 것으로 한정할 수 있지만, 성경의 내용은 그렇게 제한할 수 없다. 성경에는 역사, 시, 심리적 현상 등 다양한 종류의 내용이 있고, 그 가운데는 자연과학이 문제 삼을 내용도 얼마든지 있다. 동정녀 탄생, 부활, 기적 같은 것이 과학적인 논의의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다. 그러므로 성경 전부가 과학적 문서는 아니지만, 자연과학과는 어떤 갈등도 있을 수 없다는 주장은 피상적이고 너무 쉬운 해결이다.

 

이런 갈등에 대해서는 아직도 만족할 만한 해소방법이 없다. 그래서 갈등이 생기면 (1) 그 성경 구절을 우리가 올바로 이해했는지, (2) 그것이 잘못이란 과학의 주장이 과연 절대적인지를 물어보아야 하고 (3) 과학의 주장이 의심할 수 없이 참이라면 우리는 기다려야 한다. 우리의 성경 해석도 잘못된 것으로 판명될 수 있고 과학의 주장도 잘못으로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한쪽은 거짓이라는 성급한 결론은 위험하다. 

 

*본 내용은 <주변으로 밀려난 기독교>에 수록되었던 원고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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