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路] 한국화랑(畵廊)의 역사① 근대적 화랑과 현대적 화랑

근대 화랑의 탄생 및 진화과정(1900년〜1969년)

최세진 | 기사입력 2019/03/22 [14:27]

[미술路] 한국화랑(畵廊)의 역사① 근대적 화랑과 현대적 화랑

근대 화랑의 탄생 및 진화과정(1900년〜1969년)

최세진 | 입력 : 2019/03/22 [14:27]

▲ 최세진

우리나라 근대 화랑의 효시는 1900년 상인 정두환의 ‘서화포(書畵鋪, 서울)’ 개설이며, 1970년 4월 반도화랑의 직원이었던 박명자가 ‘현대화랑(現代畵廊. 서울)’을 설립함으로서 현대적 의미의 화랑이 탄생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분수령으로 미술품 수입자유화가 단행되면서 미술품 글로벌 시대가 개막됐고, 1980년대에 가나, 국제, 서미, 아라리오 등 대형 화랑들이 연속적으로 출현했다. 

 

이와는 별도로 1998년 가나화랑에서 미술품 경매회사인 서울옥션을 설립했고, 이후 현대화랑 등 대형 화랑들이 연속적으로 미술품 경매회사를 설립해 경매전성시대 및 (신흥국)미술품 강세 시대를 개막했다. 우리나라 화랑이 걸어온 길을 2회에 걸쳐 살펴보고자 한다.

 

근대 화랑의 탄생 및 진화과정(1900년〜1969년)

근대적 의미의 화랑이란 전시를 통해 작가를 발굴·육성하고 소장자(콜렉터)와 연결시키는 현대 화랑의 상업적 기능을 하지 못하고, 동호인 구락부 형태나 대관 등의 형식으로 운영되는 형태를 말한다.

 

1900년 상인 정두환이 서울에서 서화포(書畵鋪)를 개설한 것이 효시로, 1908년 최영년과 조석진이 합동하여 한성서화관(漢城書畵錧)을 개설했으며,  1913년 해강 김규진이 고금서화관(古今書畵錧)을 개설(1914년 평양 분점 개설. 1920년경 폐관)하는 등 근대적 의미의 화랑들이 출현했다. 

 

1929년 오봉빈이 서울에서 상업화랑 격인 조선미술관(朝鮮美術館)을 개설, 1929. 10. 개관전으로 ‘조선서화진장품전람회’를 개최, 당시 거장들인 오세창, 박영철, 이한복, 이도영, 최남선 등의 작품들을 출품시켜 판매전을 벌이기도 했으며, 1931년 일본 도쿄 우에노미술관에서 ‘조선명화전’을 개최하기도 했다. 나아가 1940년에는 고희동, 허백련, 김은호, 박승무, 이한복, 이상범, 노수현, 최우석, 이용우, 변관식의 ‘10명가 산수풍경화전’을 개최해 당시로서는 센세이션을 일으키기도 했으나 다음해 문을 닫았다.

 

1929년 조선미술관(朝鮮美術館) 개설 등에 자극을 받아 1930년대 초반 화신백화점 및 미쓰코시(三越), 초지야(丁字屋) 백화점에서 전시장 시설 대여 기능 위주의 화랑들이 등장하기도 했다.(미쓰코시 백화점은 동화백화점을 거쳐 현재 신세계백화점, 초지야 백화점은 미도파백화점을 거쳐 현재 롯데백화점) 

 

또한 1947년 대원화랑(大元畵廊)이 충무로에 설립되기도 했으며(1950년경 폐업), 같은 해 명동에서 대양화랑(大洋畵廊)이 설립됐다가 1948년 폐업했고, 1954년 7월 천일백화점에서 천일화랑(天一畵廊)이 개설됐다가 경영부진 등으로 6개월 만에 폐업하기도 했다.

 

이렇듯 어렵게 화랑으로서 설립과 폐업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1956년 반도호텔(현 롯데호텔 자리)내 1층 중앙 로비 한 켠에 작은 공간을 얻어 반도화랑이 개설된다. 당시 반도화랑은 미국여성 실리아(Celia. Z)를 중심으로 외교사절 부인들이 ‘서울 아트 소사이어티(Seoul Art Society)’를 조직해 외국인 여행자와 주재원들을 대상으로 인기 한국화·유화 등을 판매했다. 

 

반도화랑은 초기에는 영부인 프란체스카 여사가 지원하기도 했으며, 1958년부터 1960년 5월까지 아세아 재단 지원으로 유지됐다. 1959년 서양화가 이대원이 운영권을 인수한 후, 1961년 후일 현대적 의미의 화랑 1호인 현대 화랑을 설립한 박명자의 입사로 판매실적이 정상궤도에 오르기 시작하면서 활로가 모색되기도 했다. 

 

이후 한용구가 입사하면서 박명자, 한용구가 실질적으로 반도화랑을 운영했으나 1970년 초 박명자의 독립을 위한 퇴사 이후 한용구 마저 퇴사함에 따라 이대원은 화랑 운영권을 넘겼고, 마지막 화랑 운영권자인 박호열이 재기에 실패함에 따라 1960년대 미술문화의 전령사 역할을 했던 ‘반도화랑’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1960년대 반도화랑은 한국 근·현대 작가(대가)들의 문화 사랑방 역할을 하면서 청전 이상범, 소정 변관식, 운보 김기창, 박수근 등 수많은 작가들의 작품을 판매하는 등 갈증을 해소시켜주는 역할을 했다. 

 

근대화의 여명기인 1960년대 반도화랑은 이후 현대적 의미의 화랑과 일반 콜렉터를 탄생시키는 전진기지 역할을 하는 등 우리나라 미술 및 화랑역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최세진

문화미디어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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