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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路] 한국화랑(畵廊)의 역사② 현대적 의미의 화랑 탄생과 발전

최세진 | 기사입력 2019/03/22 [17:46]

[미술路] 한국화랑(畵廊)의 역사② 현대적 의미의 화랑 탄생과 발전

최세진 | 입력 : 2019/03/22 [17:46]

▲ 최세진

현대적 의미의 화랑이란 각종 미술품 전시를 통해 작가를 발굴 육성하고 소장자(콜렉터)와 연결시키는 상업적 기능을 원활하게 수행하는 장으로서 1970년대 산업화와 중산층 형성이 현대적 의미의 화랑 탄생 및 발전의 기반이 됐다.

 

현대적 의미의 화랑 탄생 및 진화과정 (제1기 : 1970년〜1979년)

1970년 4월, 반도화랑 출신 박명자에 의해 인사동에 ‘현대화랑(現代畵廊)’이란 상호로 현대적 의미의 화랑이 개관됐다. 국내 1호 상업화랑인 현대화랑은 1970년대 주요 작가 대부분의 활발한 전시를 통해 미술문화의 지평을 열었으며, 1973년 9월 최초의 미술시장정보매체인 ‘화랑’이란 잡지를 창간해 미술대중화를 선도했다.

 

이어 1970년 12월에는 김문호가 국내 2호 상업화랑인 ‘명동화랑(明洞畵廊)’을 개관 했다. 초대화랑협회장에 추대됐던 김문호는 명동화랑 개관 후, 추상미술을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등, 활발한 활동으로 미술계에 신망을 구축했으나 경영악화 등으로 1982년 만 51세에 타계하면서 비운의 생을 마감했다.

 

뒤이어 1971년 권상릉이 국내 3호 상업화랑인 ‘조선화랑’을, 1972년에는 유 진이 국내 4호 상업화랑인 ‘진화랑’을 개관하는 등, 현대적 의미의 화랑개관이 본격화 됐다.

 

위 1∼4호 화랑을 필두로 공간화랑(신옥진), 동산방(박주환), 동서화랑(송인식) 예화랑(이숙영). 그로니치(조희영), 공화랑(공창호). 송원화랑(노승진), 가람화랑(송향선), 이목화랑(임경식), 대림화랑(임명석), 맥향화랑(김태수), 진화랑(진이근) 등 1979년까지 약 80〜100개의 화랑이 전국적으로 설립되면서 현대적 의미의 화랑 역사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한편, 1978년 9월에는 1980년대 대한민국 화랑계 지도를 바꾸면서 세계적 화상으로 부상한 이호재가 고려화랑에 직원으로 입사해 근무를 시작한다. 

 

비약적 성장 시대 (제2기 : 1980〜 1999. 글로벌 미술시대 개막)

1980년대 이후(제2기)부터 국제갤러리, 그리고 혜성처럼 나타난 가나아트갤러리를 필두로 화랑가는 중흥의 시대(양적 팽창)를 맞이했고, 서울올림픽을 분수령으로 글로벌 미술시대가 개막되고 본격 전개됐다.

 

1982년 국제갤러리(이현숙), 1983년 가나아트갤러리(이호재), 1988년 갤러리서미(홍송원), 1989년 아라리오갤러리(김창일) 등 메이저급 화랑의 출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외국그림의 본격적인 수입(1991년 미술품 전면 수입자유화) 및 판매와 국제아트페어의 쉼 없는 참여 등으로 미술품의 글로벌 시대가 개막되면서 국내 화랑은 중흥기를 구가했다.

  

1982년에 설립된 국제갤러리는 외국그림들의 수입, 판매의 효시격이라 할 정도로 개관 후 외국 그림 판매에 치중했고, 1983년 가나아트갤러리를 설립한 이호재는 30년 만에 가나아트갤러리를 아시아권 최대화랑 중 하나로 성장시키면서 세계적 화상으로 부상해 ‘미술계 신화창조의 주인공’이 됐다.

 

1988년 10월 청담동에서 서미갤러리를 설립한 홍송원은 2007년 한상률 전 국세청장의 인사청탁용 미술품 로비인 ‘최욱경의 학동마을 사건’을 필두로, 리움미술관 홍라희 관장과 충돌한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 사건. 삼성특검’, 미술품관리 등을 통한 ‘오리온 비자금관리 사건’ 등 각종 재벌‧권력층 비리사건의 ‘돈세탁’ 창구역할을 한 것으로 언론에 알려지면서 현재는 화랑업계를 떠난 상태다.

 

1989년 아라리오 갤러리를 설립하면서 미술계의 괴물로 통칭되는 김창일은 막강한 재력을 바탕으로 해외작품들을 구입해 영국 미술전문지 ‘아트리뷰’가 선정한 세계 100대 콜렉터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미술품 수집 등에 광적이며, 천안을 예술도시로 만들기 위해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1970년 4월 현대화랑을 창립한 박명자 1인에 의해 전개되던 제1기를 넘어, 1980년대 제2기 시대에 진입하면서 1983년 미술시장 자체를 확장시킨 가나아트갤러리 이호재의 출현 및 국제갤러리, 갤러리 서미, 아라리오갤러리의 등장과 서울올림픽을 전기로 글로벌 미술시대를 개척해 나가는 과정에서 화랑 및 미술시장은 전성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현대미술 및 서양화 분야의 비약적 발전과는 달리 골동품, 고서화 판매 등 고미술업계 종사자들은 고미술분야의 양 거두격인 김종춘, 공창호의 오랜 불화 등으로 침체의 늪을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경매전성시대 지속 전개 및 신흥국 미술품 강세국면 도래 (제3기 : 2000년〜)

1998년 서울옥션, 2005년 케이옥션, 2011년 마이아트옥션 등 대형 미술품전문 경매회사의 설립으로 미술시장의 주도권은 빠른 속도로 이들 대형옥션으로 넘어가고 있는 중이다. 향후 이런 현상은 더욱 가속화 될 것으로 판단된다.

 

더불어 유럽 및 미국, 중국 미술품 등 그간 강세를 보인 작품 군들이 경계를 넘어가며, 동남아, 인도 등 제3지대인 신흥국 미술품으로 전환을 모색하는 중이다. 향후 제3지대인 신흥국 미술품의 강세국면이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며, 현대적 의미의 제3기에 속하는 미술시장 변동 국면이 본격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 미술시장은 미술업계 최고 실력자들이 화랑과 경매회사 모두를 독점(가나아트‧서울옥션_ 이호재 / 갤러리현대‧K옥션_ 박명자 / 공아트스페이스‧마이아트옥션 / 공창호)하고 있는 매우 특이한 상황이나, 현실적으로 이를 타개할 방법도 없는 상황이기에 경매의 전성시대는 더욱 가속화 될 것으로 보인다.

 

경매에 있어 작가 사후 70년간은 저작권 보호기간에 해당되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미술품경매회사가 경매를 하기 위해서는 생존 작가 또는 작고작가의 저작권 상속권자로부터 동의나 승인을 받아야 하며, 작가 측에서 경매불허를 공지하면 경매를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의 없는 경매진행이 일상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경매사들의 이런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세계적 작가들이나 거장들이 이를 막아줘야 하는데, 미술시장을 움직이는 실력자들이 두려워 모두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게 현실이다. 

 

때문에 경매사들의 자의적 임의경매 지속행위를 개선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으로 보여 지며, 시간이 갈수록 경매 독주와 시장잠식 등이 더욱 확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런 관행에 대한 비판과는 별개로  미술계 인사들로부터 ‘여왕벌과 황제’로 불리는 현대의 박명자와 가나의 이호재는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미술판을 달구며 그 세를 팽창시키고 있기에, 이 두 실력자에 의한 미술시장의 확장은 한국미술의 밝은 장래를 담보하는 큰 울타리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최세진

문화미디어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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