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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양식 인도박물관장, 남다른 인도(印度)사랑과 나라사랑

동양의 시성 타고르의 철학과 사상에 영향…2010년 인도박물관 개관

박명섭 기자 | 기사입력 2019/04/19 [00:13]

[인터뷰] 김양식 인도박물관장, 남다른 인도(印度)사랑과 나라사랑

동양의 시성 타고르의 철학과 사상에 영향…2010년 인도박물관 개관

박명섭 기자 | 입력 : 2019/04/19 [00:13]

동양의 시성 타고르의 철학과 사상에 영향…2010년 인도박물관 개관 

 

“인도라는 나라를 처음 알게 된 것은 1913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동양의 시성이라 불리는 ‘라빈드라나드 타고르’ 때문이었다. 그때는 내가 어린 시절이었고 우리나라가 일제치하에 있었을 때 였다.”

 

9년 전 우리나라에 인도박물관을 개관하고 다양한 교육프로그램과 교양강좌를 진행하고 있는 김양식 인도박물관장. 그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중학교 3학년의 문학소년 이던 오빠가 타고르의 유일한 동시집인 ‘초승달’을 건낸 것이 그와 인도의 첫 만남이었다. 

 

“12살 어린 소녀였던 내가 그 책을 읽고 나서 작문시간에 시를 쓰게 됐다. 그 때는 일제치하라 일본어로 시를 썼는데, 선생님이 잘 썼다고 칭찬해 주셨다. 당시 박완서 작가가 나와 같은 반이었다.” 

 

▲ 김양식 인도박물관장이 타고르의 시집 '초승달'을 번역해 출간한 책을 들어보이고 있다.  ©박명섭 기자

 

타고르를 통해 인도에 대한 관심을 어릴 적부터 가졌던 그는 인도에 대한 동경을 마음속에만 담아둔 채로 시와 서예 등 작품창작에 골몰했고, 39세에 시인으로 등단했으며, 44세 때인 1975년 처음으로 운명적인 인도방문을 하게 된다. 

 

“1975년 제3회 아시아 시인대회를 인도에서 했었는데 그 때 초청을 받아 인도를 처음 가게 됐다. 당시 한국 문인들이 처음 그 땅을 밟았고, 한국 대표로는 나와 조병화 선생님을 비롯해 총 세 명이 가게 됐다. 어린 시절부터 동경하던 곳을 실제로 가서 보니 나도 모르게 뭉클한 마음에 눈물이 쏟아지면서 한참을 속절없이 펑펑 울었다.” 

 

김 관장은 한국에 돌아온 이후 좋은 느낌으로 마음속에 자리하는 인도가 아니라 그 나라에 대해서 제대로 배워보고 싶은 욕구에 사로잡혀 국내에서 유일하게 학과가 개설된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인도철학을 공부하게 됐다. 

 

“당시 논문을 쓰면서 타고르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인도의 철학과 사상을 만나게 돼 너무 기뻤다. 나는 타고르의 시를 읽고 두 번을 울었다. 처음엔 열두살 때 시집을 통해 타고르를 만난 것에 반가워 울었고, 그다음엔 대학원에서 논문을 쓰다 울었다. 열심히 공부했고, 1등으로 졸업했다.” 

 

그는 타고르의 작품 속에 들어있는 인도 철학의 깊이를 들여다 볼 수 있었던 것과 논문을 쓰면서 인도의 철학과 사상을 폭넓게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이 너무 기뻤다는 말을 몇 번이고 강조했다. 

 

“펑펑 울었을 정도로 인도철학과의 만남이 내 인생관을 바꿔주고 나의 작품세계를 더 넓게 열어주고 깊이를 더해줬으니 모든 것에 다 감사하고 있다.”  

 

김 관장은 대학원 졸업 후 타고르 문학회와  인도문화연구소를 광화문 네거리에 열었다. “그 때가 1981년 이었다. 매달 이어진 인도철학과 문화, 그리고 불교와 무대예술, 회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특강을 진행했다. 나는 인도 문학을 담당했는데, 문단의 원로들도 많은 관심을 갖고 참여했었다.” 

 

그는 인도에서도 유명한 철학교수와 문인들을 초청해 강의를 진행하는 한편, ‘코리아저널’이라는 연간 1회 발행되는 간행물을 19년간 발행해 왔다. “20년을 못 채운 것이 아쉽다. 그 간행물이 처음 나올 때인 1982년에 인도의 인디라 간디 수상에게 축전이 왔었다.” 

 

▲ 김양식 인도박물관장  ©박명섭 기자

 

1983년 인디라 간디 수상이 ‘한국에 인도와 관련한 연구단체가 있다는데 놀랐다’며 국빈자격으로 김 관장을 초청했다. 간디 수상은 그에게 ‘한국이 36년간 일제 치하에서 그 고생을 했는데 어떻게 짧은 시간에 발전을 이룰 수 있었느냐? 문화예술 적으로도 그렇고 스포츠도 어떻게 그처럼 빠르게 놀라운 발전을 이뤘냐’는 질문이었다. 

 

김 관장은 “어머니와 아버지의 힘 이라고 대답했다. 농촌에서 농사에 꼭 필요하고 가장 소중한 재산인 소를 팔아서 자녀들을 큰 도시로 보내 공부를 시키는 그러한 힘이 라고 대답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또한 인도에 대한 관심과 심취하게 된 이유에 대한 질문에는 열두살 소녀시절 처음으로 접했던 타고르의 시가 계기였음을 설명했다. 그는 어린시절 처음 접했던 타고르의 동시집 ‘초승달’을 번역해 펴내기도 했다.  

 

김 관장은 지난 2010년 서울 서초구에 인도박물관을 개관해 40년 전부터 수집하기 시작한 지금의 소장품들을 상설전시하고 있다. “시를 쓰다 보니 인도의 시인대회, 타고르 연구관련 행사 등에 초청을 받으면 세미나 등 공식행사가 끝나고 2~3일 간 여러 곳을 다니며 유물이나 미술품 등 문화재들을 찾아다녔다. 매년 한번 이상은 갔었고, 회를 거듭할수록 보는 안목이 높아졌다.”

 

김 관장이 인도의 공예품이나 유물들을 접한 초기에는 인도에 대해 많이 모르던 시절이라 작풍의 가치나 유래에 대해 자문을 해 줄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직접 인도에 가서 수소문해 보고, 현지 전문가를 한국으로 초청해 자문을 구하기도 하면서 소장품들을 모았다.

 

박물관을 찾아오는 인도사람들이 ‘저 유물을 한국으로 가지고 올 때 관련 당국으로부터 제지당하지 않았느냐?’고 물어볼 정도로 국보급의 귀한 작품들도 상당수 소장하고 있다. 

 

인도박물관은 한국에 살고 있거나 관광이나 세미나 등으로 한국을 방문한 인도사람들도 많이 찾는데, 그들도 처음 보는 유물이 많다고 할 정도로 진귀한 예술작품들이 많다. 전시된 그림들도 인도 국립대학의 교수 및 유명한 화가의 작품 등 모두 수준 높은 작품들이다.   

 

김 관장은 박물관 개관 이후 2012년 인도정부로부터 훈장을 수여받기도 했다. “2012년 인도대통령으로부터 우리나라의 국민문화훈장 격인 빠드마슈리 어워드를 수여받았다. 당시 남편도 함께 초청을 받아 같이 인도에 다녀왔다.”

 

박물관은 2층 전시관, 3층 교육실, 4층 수장고로 구성돼 있다.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은 매우 인기가 높으며, 인도와 관련된 학문 전공자나 교수들이 참여하는 세미나, 교양강좌도 진행되고 있다. 5월에는 인도직물전이 개최될 예정이다.

 

박물관 운영에 어려움은 없냐는 질문에 “등록된 박물관이라 시에서 인건비 등의 지원을 해주기 때문에 예전에 비하면 수월한 편”이라며, "무엇보다 방문해 주시는 분들을 보면서 보람을 느낀다"고 답했다. 

 

김 관장은 평생을 모아온 귀한 소장품들을 "서울시에 선물로 드리려 한다"고 밝혔다. “처음부터 내 것으로 가지기 위해 한 것이 아니다. 언젠가는 떠날 텐데 나를 태어나게 했고 키워준 조국에 선물로 드리고 가자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이어온 것이다."

 

그는 “내가 태어난 곳이 서울 종로구 내수동이고, 시댁도 서울 종로구다. 그리고 평생 서울에 살았기 때문에 인도박물관의 모든 것을 서울시에 드리려고 한다”고 말했다.

 

김 관장은 1931년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영문과와 동국대학교 대학원 인도철학과를 졸업했다. △한국현대시인상 △세계시인대회상 △세계뮤즈상 △이화문학상 △인도빠드마슈리 문화훈장 △서울시문화상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정읍후사 △초이시집 △은장도여,은장도여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기탄잘리 △초승달 △타고르의 세계와 사상 △비단황후 등이 있다.

 

문화저널21 박명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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