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최진호 세무사, 최치원 정신으로 지역 문화관광 활성화

박명섭 기자 | 기사입력 2019/04/19 [13:00]

[인터뷰] 최진호 세무사, 최치원 정신으로 지역 문화관광 활성화

박명섭 기자 | 입력 : 2019/04/19 [13:00]

최진호 세무사(탑코리아 세무법인 명예회장)는 최치원 선생의 정신과 사상을 알리는 유일한 문화전도사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오랜 공직생활을 거쳐 퇴직 후에도 경남 산청의 동의보감촌 건립을 제안하고, 그의 친구인 인간문화재 박찬수 목아박물관장의 문화전수관 건립, 함양의 상림숲을 비롯한 최치원 관련 문화관광벨트 조성 등 다양한 아이디어 제안으로 큰 성과를 내고 있으며, 최치원 소설 집필과 드라마의 한중 합작 제작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대개 생각하기는 쉽지만 실천이 어렵고, 때문에 성공은 더더욱 어려운 것이 현실인데, 아이디어 하나로 함양군과 산청군의 실질적인 소득배가운동을 펼치며 성과를 내고있다. 

 

다음은 최진호 탑코리아세무법인 명예회장과의 일문일답

 

● 산청에 동의보감촌을 만들게 된 계기와 추진과정은?

 

1998년 공직생활을 마치고 고향과 인근 지역의 문화콘텐츠를 만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당시 최고의 인기드라마가 ‘허준’이었다. 작가가 같이 운동하던 멤버였기 때문에 허준 선생의 고향이자 선생이 배우고 생활했던 산청에 뭔가를 만들면 관광객들이 많이 올 것이란 생각을 했다. 

 

▲ 최진호 탑코리아 세무법인 명예회장  ©박명섭 기자

 

처음에는 ‘동의보감촌’이라는 용어 보다는 허준의 드라마를 가지고 여기에 한약과 관련된 문화관광 벨트를 만들면 그로인해 산청의 소득이 증대되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하게 된 것이다. 

 

산청군에서는 일시에 투입할 수 있는 재정이 없기 때문에 시행 5개년 계획을 수립해서 콘텐츠를 통한 관광사업을 추진하게 됐다. 우선 목아박물관장인 인간문화재 108호 박찬수 관장에게 의뢰해 유의태 동상과 허준의 동상을 재능기부 받기로 하고, 산청의 동양당한의원 에서 1억, 서울의 한약관련 협회에서 1억 등 총 3억이 모였고, 토지는 우선 군에서 약 50만평을 매입 했다.   

 

그리해 탄생한 ‘동의보감촌’은 2017년 기준, 연간 방문객 수가 약 350만 명에 달한다. 처음에는 ‘산청세계전통의약엑스포’까지는 생각하지 않고 단지 산청의 우수한 농수산물이나 약초 등을 판매하고, 먹거리를 주력으로 하는 수준의 이벤트로 시작했다.

 

세계전통의약엑스포를 유치하는데 있어서도 우리나라에 한약 하면 대구약령시를 비롯해 원주, 함평 등 전국에 12군데 유명한 지역이 있는데, 비교적 열악하고 준비가 덜된 산청이 많은 경쟁 속에서 2013년에 행사를 할 수 있도록 결정된 것은 바로 2006년 ‘동의보감촌’이 유네스코에 등재됐기 때문이다. 

 

그 때 정부예산 약 570억, 군 예산 80억 정도로 약 700억을 들여서 세계전통의약엑스포를 시행했고, 성공적으로 끝났다. 관광객들이 국내는 물론 중국을 비롯한 외국인들도 오면서 현재 350만명 정도가 방문을 하는 명품 행사가 됐다. 

 

문화관광벨트와 연계되는 국내 지역행사 중에서 흑자를 내는 지역은 산청의 ‘동의보감촌’과 순천의 갈대밭 밖에 없다. 그 중에서도 산청이 40억 정도의 흑자를 내고있어 으뜸이라 할 수 있다. 이 일을 진행하는데 우리는 아이디어만 제공한 것이고 실무는 모두 산청군에서 한 것이다. 

 

작은 아이디어로 엑스포를 유치하고 350만명의 관광객을 맞이하며 기반을 구축했고, 앞으로 더 발전할 것이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인접 도시인 함양군에도 최치원 기념관, 역사관이 있기 때문에 같이 연계가 되면 더 많은 시너지가 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최진호 탑코리아 세무법인 명예회장 ©박명섭 기자

 

  함양군에 최치원기념관 건립을 건의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내 고향 함양은 최치원의 실학사상, 애민정신 등을 제대로 보여주는 실천정신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선생께서는 부성군(富城郡: 충남 서산), 태산군(太山郡: 전북 정읍), 천령군(天嶺郡: 경남 함양) 등에서 태수를 지냈다. 

 

그런데 선생의 업적은 천령군에서 특히 돋보인다. 홍수가 나면 대봉산·백운산에서 내려오는 물 때문에 농사에 어려움이 많이 따랐는데, 선생이 천령군 태수로 재직할 때 인공 공원인 상림공원을 조성해 숲으로 만들고 논을 만들어 많은 수확이 나니까 백성들이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게됐다. 뿐만아니라 가뭄에 흉년이 들면 인접한 지역인 남원이나 산청에도 쌀을 빌려줄 정도로 부유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됐다. 선생이 상림숲과 경작지를 조성했기 때문에 부유한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상징성이 있는 곳에 최치원의 정신이 담긴 기념관을 세우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서 군수님께 산청의 한의학 관련 문화광광벨트처럼 함양에 최치원 기념관을 건립하면 문화관광 연계 등 효과가 있다고 건의했고, 함양군이 적극 검토해 시행하게 된 것이다. 

 

조선을 세운 태조, 그리고 태종은 과거시험에서 장원을 한 사람에게는 첫 부임을 함양군수로 정해 최치원의 정신과 실학사상을 직접 보고 경험하게 했다고 한다. 그래야 중앙 정부에서 큰 일을 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함양은 유학과 실학의 뿌리라 할 수 있다. 안동과 쌍벽을 이룬다 할 수 있다. 또한 최치원 선생과 관련한 유적, 비석 등이 많기에 기념관 건립 아이디어를 낸 것이다. 

 

● 친구인 박찬수 목아박물관장이 설립한 목아교육전수관, 국제조각심포지엄, 꽃동산도 최진호 회장의 아이디어인가?

 

목아교육전수관은 박관장이 한 것이다. 인간문화재이다보니 여러 곳에서 제안이 왔지만 고향에 설립하고 싶다는 의사에 따라 산청에 건립한 것이다. 고향발전을 위한 마음이 가장 컸다. 처음에는 유지하는데 어려움이 따랐지만 이제는 군에서 예산을 지원해 주고 있어 운영이 한결 수월해 졌다. 

 

국제조각공원은 초기에는 관광객이 오지 않았다. 때문에 공원이 위치한 산청군 생초면의 면장이 아이디어를 내 경호강변에 꽃동산을 가꾸게 됐다. 현재는 관광버스로 북적일 정도로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가 됐다. 동의보감촌을 거쳐서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아 관광벨트로서 연계성이 좋다고 볼 수 있다.

 

▲ 사진 왼쪽부터 시계방향 목아전수교육관, 최치원기념관, 최치원 기념관 고운루, 백운산 상연대  ©박명섭 기자

 

● 최진호 회장이 저술한 책에 소개된 함양 백운산의 상연대는 어떤 곳인가?

 

제가 쓴 소설책 5권 중 4권에 그 내용이 있다. 상연대는 최치원 선생이 천령군 태수 시절 경애왕이 선생을 찾아와 어머니의 소원을 묻자, 선생이 태산군 태수 시절 바닷가에서 생활할 때는 파도소리로 관세음보살 소리를 들을 수 있었는데, 산 밖에 없는 천령에 오니 그 소리를 못듣게 돼 아쉽다고 하자 왕이 기도처를 지어주라 명하여 건립된 암자다.

 

상연대는 백운산에서 가장 기가 좋은 곳으로, 천왕봉을 비롯해 반야봉까지 지리산 북쪽의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지리산의 정기를 한 번에 받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장소에 암자를 지은 것으로 화재로 소실되기도 했지만 독지가들이 복원해주면서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인 해인사의 말사로 운영되고 있다. 

 

● 최치원 선생 연구를 위한 중국방문은 얼마나 되며, 중국 내에서의 선양사업은 어떻게 하고 있나?   

 

최치원 선생 연구를 위해 중국을 방문한 것은 네 번이다. 선생은 12세에 중국으로 가서 18세에 최초로 빈공과에 장원급제를 했다. 빈공과는 외국인들이 중국의 문화를 배우고 익힌 후 치르는 시험으로, 보통 20~30명 합격한다. 선생은 합격 후 2년동안 나이가 어린 외국인이라는 등의 핑계로 발령을 받지 못했다.

 

2년이 지난 20세에 율수현위로 첫 발령을 받았다. 율수(溧水, 리수이)는 중국 장쑤성(江蘇省) 난징(南京)에 있는 현으로, 선생이 그곳에 부임을 해 보니 마을에 귀신이 나타난다고 하고, 전임자들이 죽기도하는 등 민심이 흉흉해 그에 대해 알아보던 중 꿈에 자살한 쌍둥이 자매의 원혼이 나타나 원수를 갚아달라고 하자 현지시찰을 하고 14 수의 위로시를 지어 영적인 대화를 통해 영혼을 위로해 주니 흉흉하던 마을이 부자마을로 바뀌었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지금도 그곳에는 선생의 기념비가 있고, 교과서에도 실려 선생을 기리고 있다.    

 

한중교류의 상징으로 최치원 선생 공원을 만들어주고, 기념관을 중국에 건립했는데 비용을 경주 최씨 종친회에서 부담하고, 해운대구에서도 일부 부담하고 해서 기념관이 만들어졌고, 현재도 운영되고 있다. 

 

박근혜대통령이 중국방문 시 시진핑 주석이 최치원 선생의 시를 언급한 적이 있다. 선생은 29세에 귀국할 때 17년간 중국에 있으면서 토황소격문을 써서 도통순관(都統巡官)지위까지 올랐다. 황소의 난이 벌어졌을 때 황제가 피난을 간 상황에서 선생은 토황소격문으로 황소를 물리쳤다. 

 

그 격문의 내용은 ‘귀신이 너를 죽이고 하늘이 너를 벌할 것이고 또 백성 전체가 너를 죽이는데 어떻게 네가 황제가 되려고 하느냐? 황제가 되려면 스스로 너의 통치철학을 보이라’는 것이었다. 

 

이후 황제는 선생에게 자금어대(紫金魚袋)를 하사해 하시라도 황제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 정도로 중국에서도 앞길이 보장돼 있었고, 남아서 계속 일해달라는 황제의 요청이 있었음에도 선생은 당나라의 선진 문물과 발달된 정치, 종교제도는 물론, 자기의 철학과 사상을 고국에 전하기 위해 귀국을 택했다. 선생은 6두품의 가장 높은 벼슬인 아찬까지 올라갔다.  

 

▲ 최치원 선생의 동상과 영정  © 박명섭 기자

 

● 35년째 최치원 연구를 하며 최치원 전도사를 자임하고 있는데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는가?

 

저는 경주최씨 종친회의 중앙회장님도 만나보고 여러 분들과 교류하고 있지만, 최치원의 철학이나 사상을 어떻게 알려야 할지 방향을 못잡고 있었다. 그래서 소설의 근본을 최치원의 사상과 철학을 선생이 남기신 네 개의 비문에 적힌 글을 중심으로 분석을 해서 선생의 △애국·애민사상 △풍류도 사상 △천부경을 통해 알리고자했던 사상 등을 국민들께 깊이 있게 알려 우리 대한민국이 문화와 정신면에서 세계 1등이 되는 나라가 되는데 기여하고 싶다. 

  

최치원 정신은 유불선을 초월한 하나를 더한 것이라 했는데 그 하나가 결국은 모든 종교를 포함하는 융합과 소통정신이니까 그 정신이 세계정신이 되면 대한민국이 그 정신으로 갈 때 정치적인 분쟁 없이 소통도 잘 되고 서로가 도와주는 정치, 서로 그런 정치를 하게 되면 최치원의 사상이 빛을 내게 되고 우리 국민들은 세계1등국민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확산하고 전파하기 위한 자료를 더욱 체계화 할 수 있도록 연구원을 설립하고, 자금을 확보해 최치원을 계속 연구할 수 있는 학자들을 배출해내고, 그들을 지원해줄 수 있는 재단법인을 설립할 계획이다. 

 

● 최치원 아트홀이 개관을 앞두고 있는데 선생의 이름을 붙이게 된 계기는?

 

워낙 탁월한 사상가이자 정치가이기 때문에 그 정신을 우리 국민들에게 널리 알리려면 ‘최치원’이라는 융합과 소퉁을 상징하는 상표가 있어야겠고, 그것이 소통되는 장소가 ‘아트홀’이라는 생각에서 개관하게 됐다. 최치원 아트홀을 운영하게 되면 그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최치원 정신을 다 알고 가지 않겠나 해서 최치원을 알리기 위한 시발점으로 아트홀을 개관하는 것이다. 

 

문화저널21 박명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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