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봉호의 시대읽기] 종교개혁과 학문의 발전

손봉호 | 기사입력 2019/04/30 [08:33]

[손봉호의 시대읽기] 종교개혁과 학문의 발전

손봉호 | 입력 : 2019/04/30 [08:33]

손봉호 박사(사진)는 서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 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에서 사회철학과 사회윤리학을 가르쳤으며, 한성대학교 이사장, 동덕여자대학교 제6대 총장을 역임했다.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로 현재는 고신대학교 석좌교수, 기아대책 이사장 등을 맡고 있다.

 

현대 과학이 종교개혁으로 가능했다는 주장은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다. 호이카스의 《근대과학의 출현과 종교》(정음사, 1988) 는 매우 설득력 있게, 그리고 상세하게 그것을 제시하고 있고 야스퍼스 (K. Jaspers) 같은 철학자도 같은 주장을 했다.

 

기독교에 비판적인 태도를 취한 역사학자 화이트 (L. White Jr.)가 오늘날 심각해진 환경오염에 대해 기독교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환경오염이 현대 과학기술 때문이란 사실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인데 화이트는 바로 기독교가 자연과학과 과학기술 발전을 가능하게 했다고 주장한다. 

 

호이카스가 상세히 보여 주듯 종교개혁을 통하여 중세까지 지배했던 유기적 세계관이 현대의 기계적 세계관으로 바뀌었고, 그것이 현대 자연과학의 출현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온 우주는 하나님의 피조물이란 창세기의 분명한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천주교는 16세기까지 모든 고대 문화에서 일반적이었던 유기적 세계관에 매여 있었다.

 

자연을 포함한 우주는 짐승이나 사람의 몸처럼 모든 부분이 모든 다른 부분과 연결되어 있는 살아 있는 유기체이며 따라서 그런 우주를 그 자체로 신성한 것으로 취급한 것이다. 그러므로 자연의 한 부분을 전체로부터 분리하거나 어떤 방식으로든지 건드리고 훼손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종교개혁 이전에는 의과대학에서 해부학 실험을 금했는데 그것은 사람의 시신을 신성시했기 때문이었다 한다.

 

과거 우리나라에서 산에 굴을 뚫거나 강에 다리를 놓는 것을 주저한 것, 집을 짓거나 분묘를 만들기 위하여 땅을 파헤칠 때는 반드시 평토제를 지낸 것도 바로 그런 유기적 자연관 때문이었다. 그러나 성경에 의하면 자연은 그 자체로 신성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피조물에 불과하므로 얼마든지 연구하고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종교개혁을 통하여 성경의 권위가 회복되므로 기계적 세계관이 유기적 세계관을 대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자연과학 외 다른 학문 분야들이 종교개혁 때문에 크게 발전했다는 관점은 그렇게 일반적이지 않다. 종교개혁보다는 오히려 그보다 먼저 시작된 문예 부흥에 더 큰 공로를 인정하고 있다. 심지어 종교개혁조차도 문예부흥 때문에 가능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중세교회의 사상적 지배에 항거했다는 점에서 양자 간에 유사성이 있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당시 서양의 지식인들 대부분은 기독교 신자들이었고 그들의 신앙은 세속화된 오늘과는 달리 삶과 생각에 상당히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따라서 대부분의 지식인들은 소수를 제외하고는 당시의 교회와 그 신학의 권위에 감히 도전할 용기를 갖지 못했다. 지동설과 관계된 갈릴레오 재판이나 학자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던 교황청의 ‘금서 목록’(Index Librorum Prohibitorum) 같은 것은 학문 활동을 크게 위축시켰음이 분명하다. 그 금서 목록에는 스피노자와 칸트, 베이컨, 로크, 데카르트, 케플러, 파스칼뿐 아니라 심지어 사르트르의 작품도 들어 있었다. 

 

그런데 칼뱅과 루터가 천주교의 오류를 이론적으로 파헤친 것은 교권에 억눌려 있던 학자들에게 상당한 용기와 자유를 허용했을 것이다. 루터와 칼뱅은 단순히 훌륭한 설교자나 선동가 정도가 아니었다. 당대 천주교의 어느 신학자 못지않게 상당한 학문적 훈련과 성취를 배경으로 한 학자들이었다. 루터가 95개 조항을 제목으로 공개토론을 제안했을 때 천주교 신학자 어느 누구도 도전하지 못한 것을 보면 루터의 지적 능력을 짐작할 수 있다.

 

루터의 설교와 소책자들, 칼뱅의 설교 및 《기독교 강요》는 당시 기독교 지성인들에게 상당한 이론적 설득력과 사상적 해방감을 주었을 것이다. 교회와 신학의 힘이 막강한 시대였기 때문에 지배적인 신학을 이론적으로 비판하지 못했더라면 종교개혁은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종교개혁이 가져온 자유는 잘못된 교권으로부터의 해방이었으며 동시에 잘못된 지적 압박으로부터의 해방이었다.

 

그런 해방의 연장선에서 계몽주의 (Enlightenment)가 일어났다는 것은 역설적이기도 하다. 철학자 칸트는 계몽주의를 “감히 알아라!” (Aude sapere!)란 표어로 특징지웠는데, 학문에서는 어떤 절대적 권위와 금기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보기에 따라서는 종교개혁의 연장이며 지나친 확대라 할 수도 있다.

 

또 하나 학문 발전에 크게 공헌한 것은 루터의 “만인 제사장론”이었다. 중세에는 필로(Philo of Alexandria)가 제시한 “철학은 신학의 시녀” (Philosphia ancilla theologiae)란 관점이 수용되었다. 당시에 철학은 오늘의 모든 인문과 사회과학을 합친 것의 대명사였으므로 신학을 제외한 모든 다른 학문은 세속적이고 신학보다 한 차원 낮은 위치에서 신학을 위해서 봉사하는 위치에 있는 것으로 취급된 것이다.

 

그러나 루터의 만인 제사장 이론이나 칼뱅의 “모든 진리는 성령의 역사”란 주장은 신학 이외의 다른 학문도 신학의 도움 없이 하나님의 진리를 추구할 수 있고 직접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다는 입장을 가능하게 했다. 루터교인이었던 독일의 천문학자 케플러(J. Kepler)가 그의 지도교수 매스틀린(M. Maestlin)에게 보낸 편지에 “나는 신학자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그 때문에 불안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나의 노력을 통해 하나님이 어떻게 천문학을 통하여 영광을 거두시는지 보십시오” 하고 썼다. 지금과 달리 그때는 종교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케플러의 그런 생각은 혁명적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기독교적 세계관에 입각해서 학문연구를 시도하는 것도 종교개혁의 유산임을 인식하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물론 학문의 발전이 모두 긍정적이었고 성경적 입장에서 모두 찬동할 만한 것은 아니다. 종교개혁의 도움으로 발전된 학문이 종교개혁의 정신을 배신한 경우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 뒤에 일어난 계몽주의는 철저히 인본주의적이었고 반 기독교적이었으며 현대 무신론의 못자리가 되었다. 거기에는 물론 종교개혁의 결정적인 도움으로 일어난 현대 자연 과학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마치 부모의 보살핌으로 자란 자식들이 부모로부터 독립했을 뿐 아니라 일부는 부모를 인정하지 않고 무시하며 심지어는 부모를 존경하고 따르는 소수를 조롱하는 형국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오만해진 현대 학문이 영원히 위세를 유지하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쿤(Thomas Kuhn)이 제시한 것처럼 학문의 패러다임은 이제까지도 혁명적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 뉴턴의 물리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학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사회과학 이론들이 누리는 수명은 자연과학의 경우보다 훨씬 더 짧다. 그러므로 적어도 그리스도인 지성인들은 지금의 상황이 전부이며 항상 그러리라고 착각하고 시류에 영합하는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종교개혁이 당시에 지배적이었던 중세의 지적 문화에 비판적인 계기를 마련했던 것처럼 오늘의 그리스도인 지식인들도 지금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물질주의적이고 상대주의적인 정신문화와 수많은 학문적 이론들에 항상 비판적인 거리를 두면서 상대화할 여유를 누려야 할 것이다. 그 휘황찬란한 불빛에 기죽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인간의 학문은 궁극적으로 하나의 유희(game)에 불과하다. 십자가의 도는 이 세상이 추구하는 지혜와 이 세상이 자랑하는 능력에 대해서 항상 비판적이었고 그것이 오히려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계기와 여유를 제공할 수 있다. 그런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 16세기 종교개혁의 유산을 제대로 이어가는 것이 아닌가 한다.

 

*본 내용은 <주변으로 밀려난 기독교>에 수록되었던 원고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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