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생명선 / 윤효

서대선 | 기사입력 2019/05/27 [07:52]

[이 아침의 시] 생명선 / 윤효

서대선 | 입력 : 2019/05/27 [07:52]

생명선

 

날이 풀리자 아파트 마당에 실금이 또 하나 늘었다.

 

어제는 비까지 내려 더 아프게 드러났다.

 

풀리지 않는 일 탓이겠으나 심란했다.

 

손바닥에 자주 눈이 갔다.

 

내내 뒤숭숭했다.

 

그런데 오늘 보니 풀 죽을 일이 아니었다.

 

실금을 따라 푸른 것들이 일제히 돋아나 있었다.

 

# 경쟁률 4만 6931대 1. 최근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위치한 아파트 한 채 매물에 몰렸다는 청약 경쟁률이다. 분양가가 8억이 넘는 아파트라 일반 서민들은 시도하기도 만만찮은 가격이다. 그것도 현금으로 아파트 대금을 지급할 수 있는 사람들만 참여 할 수 있었다는 뉴스를 접하며, 배도 고프지 않은 짐승들이 먹잇감을 가지고 노는 그들만의 놀이터를 바라보는 심정이다.   

 

꼬박꼬박 세금내고, 성실하게 직장생활하고, 자식 키우며 내 집하나 마련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최소 십 여 년 이상 걸리는 서민들이 사는 오래된 아파트에 “날이 풀리고” “비까지 내려”, “아파트 마당에 실금이 늘어나”도 보수하려면 반상회를 거치고 수리비를 마련하는 대책을 세우는 데도 시간이 걸린다. 현금을 들고 한 채 남은 아파트를 차지하려 오만여명이 달려가고, 소유하고 있는 주택이 백여 채 이상 되는 사람들이 수 백 여명 된다는 통계 앞에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아온 서민들에겐 어떤 잘못이 있는 건지 마음이 “뒤숭숭”하다.  

 

“날이 풀리자 아파트 마당에 실금이 또 하나 늘었다./어제는 비까지 내려 더 아프게 드러”난 모습을 본 시인은 자신의 마음에도 실금이 가는 것을 느낀다. 남들은 삼사년 살다가 아파트 값이 오르면 시세 차익을 남기고 다른 아파트로 이사도 잘 갔건만, 아파트 마당에 실금이 가도록 주변머리 없이 한 아파트에 살아온 자신의 모습에 공연히 풀이 죽는다.  “그런데 오늘 보니 풀 죽을 일이 아니었다./실금을 따라 푸른 것들이 일제히 돋아나 있”는 것이다. 남들처럼 투기와 재물 늘리는 재주는 없지만, 갈라진 시멘트 마당 실금 사이를 뚫고 씩씩하고 푸르게 돋아나는 풀의 왕성한 생명 의지와 아름다움을 찾아낼 수 있는 눈과 마음은  돈으로 환산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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