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왕궁리유적전시관, 백제왕도 체험장으로 각광

일반인 및 역사·공예·건축·토목·문학 분야 학생 및 연구자 발길 이어져

박명섭 기자 | 기사입력 2019/06/12 [16:57]

익산 왕궁리유적전시관, 백제왕도 체험장으로 각광

일반인 및 역사·공예·건축·토목·문학 분야 학생 및 연구자 발길 이어져

박명섭 기자 | 입력 : 2019/06/12 [16:57]

일반인 및 역사·공예·건축·토목·문학 분야 학생 및 연구자 발길 이어져

 

전북 익산시에 위치한 왕궁리유적전시관이 백제시대 왕궁의 모습, 왕궁 안에서 사용했던 물건 및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 등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는 역할로 주목받고 있다.

 

왕궁리유적과 미륵사지는 공주, 부여의 백제유적과 함께 백제역사유적지구라는 이름으로 2015년 7월 8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세계유산 등재 주제어는 ‘백제왕도’로 백제왕도와 관련된 왕궁과 사찰, 방어시설인 성곽, 왕릉 등 8개 유적으로 구성됐다. 왕궁리유적은 백제 왕궁으로서는 처음이자 유일하게 확인됐기에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고 할 수 있다. 

 

전시관 먼저 둘러보고 유적지 둘러봐야

 왕궁리유적에 가보면 국보 제289호 왕궁리 5층석탑을 비롯한 유적지 일대와 왕궁리유적전시관을 만날 수 있다. 제대로 된 관람을 위해서는 전시관을 먼저 돌아보고 유적지를 둘러보는 것이 당시의 시대상을 이해하는데 더 도움이 된다.

 

▲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관세음응험기 △궁성터축소분 △전시관 내부 (사진제공=익산시) 


전시관은 △왕궁리유적 △백제건물 △왕궁의 생활 △왕궁에서 사찰로의 변화 △백제왕궁 등 5개 주제로 구성돼 있으며, 발굴조사 과정의 사진과 100분의1로 축소된 유적 모형 및 각종 보조 자료들을 통해 유적에 대한 이해를 하고 외부 관람을 통해 백제의 숨결을 느껴보는 것이 좋다는 관계자의 설명이다. 

 

 

백제 무왕의 익산천도 상당부분 입증

전시관에 들어가면 왕궁리유적의 1/100 축소 모형과 함께 주변에 서동과 무왕, 관세음응험기에 대한 내용이 전시돼 있다. 

 

기록에 의하면 서동은 익산에서 태어나 오금산에서 마를 캐며 살아가다 신라 진평왕의 셋째딸인 선화공주와 혼인 후 오금산에서 금덩이를 얻어 많은 사람들에게 베풀며 인심을 쌓아 백제 왕위에 오른 후 익산으로 천도했다는 사실이 관세음응험기에 기록됐다.

 

관세음응험기는 국내 기록이 아니라는 점을 들어 일부 신빙성을 의심하는 경우가 있지만 주요 내용인 제석사 화재 사실과 목탑 아래에 발견된 사리장엄을 보관하기 위해 새로 절을 지었다는 것이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돼 기록의 정확성이 상당부분 입증된 후 더욱 주목 받고 있다.

 

중국이나 일본의 왕궁과 비슷한 백제 왕궁

왕궁리유적의 발굴조사 결과 왕궁리유적은 백제 무왕의 왕궁과 후대의 사찰유적이 같은 자리에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왕궁의 외곽은 폭 3m의 담장이 장방형으로 돌려졌는데, 규모는 약 12만㎡이다. 

 

남측 절반은 왕이 정사를 돌보거나 의례, 생활과 관련된 건물이 배치됐고, 북측 절반은 정원과 후원 그리고 금과 유리를 생산하던 공방으로 활용됐다. 또한 남측은 4단의 동서석축을 쌓아 남측에서부터 정전(正殿), 편전(便殿), 침전(寢殿) 등의 건물을 배치하고 외곽 담장에는 총 7개의 문이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 왕궁리5층석탑 (사진제공=익산시)  


이처럼 규모나 공간 활용 방법에 있어 일반 가정과는 확연이 구분할 수 있고 중국이나 일본의 왕궁과 유사한 배치를 하고 있어 왕궁과 같은 특수한 공간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고려사나 세종실록지리지 등에서는 왕궁리 유적이 마한의 왕궁으로 기록돼 있지만 발굴조사 과정에서 대부분이 마한의 유물이 아닌 백제 후기 유물이 출토돼 마한보다는 백제 무왕의 왕궁으로 보고 있다.

 

수도와 귀족을 상징하는 다양항 유물

왕궁리유적전시관에 전시된 유물은 백제 왕궁이라는 사실을 입증 할 수 있을 정도로 백제시대 일반인이 아닌 최고 신분계층에서만 사용하던 귀중품들이 많다. 가장 대표적인 유물로는 수부(首府), 금제품, 유리제품, 중국청자, 전달린토기, 뚜껑이 있는 그릇(완), 대형항아리, 벼루, 변기형토기, 연가 등 이다. 

 

도장이 찍힌 기와인 수부(首府)는 한 나라의 수도 또는 서울을 의미 하며, 금과 유리는 백제 최고 신분계층에서만 사용하던 최고 귀중품이다. 중국청자는 백제를 대표해서 중국과 교류 사실을 말해주고 있으며, 전달린 토기와 뚜껑이 있는 그릇은 백제에서 가장 좋은 기술과 흙으로 만들어졌다. 벼루는 왕궁 내에서 이루어지는 일의 기록과 관련이 있으며, 변기형 토기 역시 백제 최고 신분계층에서만 사용 하던 것으로서 백제 왕궁의 흔적이라는 증거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한편, 익산 왕궁리유적. 일반인은 물론 역사, 공예, 건축, 토목, 문학 등을 배우는 학생들과 연구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유적전시관은 2008년 개관 이래로 유적 발굴조사 과정에서 확인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문화교육장으로 널리 활용이 되고 있으며, 출토된 백제기와 만져보기, 관세음응험기 목판찍기, 유물 이미지 스탬프 찍기 등 체험 프로그램들도 다양해 어린이들에게는 즐거운 추억도 선사한다.

 

문화저널21 박명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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