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시골집 마루 / 마경덕

서대선 | 기사입력 2019/07/01 [09:10]

[이 아침의 시] 시골집 마루 / 마경덕

서대선 | 입력 : 2019/07/01 [09:10]

시골집 마루

 

마루는 나이를 많이 잡수신 모양입니다

뭉툭 귀가 닳은 허름한 마루

이 집의 내력을 알고 있을 겁니다

봄볕이 따신 궁둥이를 디밀면

늘어진 젖가슴을 내놓고, 마루귀에서

이를 잡던 쪼그랑할멈을 기억할 겁니다

입이 댓발이나 나온 며느리가 아침저녁

런닝구 쪼가리로 박박 마루를 닦던

그 마음도 읽었을 겁니다

볕을 따라 꼬들꼬들 물고추가 마르던 쪽마루

달포에 한 번, 건미역과 멸치를 이고 와

하룻밤 묵던 입담 좋은 돌산댁이 떠나면

고 여편네, 과부 십 년에 이만 서 말이여

구시렁구시렁 마루에 앉아 참빗으로 머릴 훑던

호랑이 시어매도 떠오를겁니다

어쩌면 노망난 할망구처럼 나이를 자신 마루는

오래전, 까마귀가 되었을지도 모르지요

눈물 많고 간지럼 잘 타던 꽃각시

곰살맞은 우리 영자고모를 잊었을지 모르지만,

걸터앉기 좋은 쪽마루는

지금도 볕이 잘 듭니다

마루 밑에 찌든 고무신 한 짝 보입니다

조용한 오후

아무도 살지 않는 빈 마루에 봄이 슬쩍 댕겨갑니다  

 

# “시골집 마루”는 집안에서 환류가 가장 잘 이루어지는 곳이다. 집 앞의 풍경과 집 뒤의 풍경까지도 모두 바라 볼 수 있는 곳이며, 공기의 흐름이 막히지 않고 돌아나가는 곳이다. 마루는 집에서 중심 역할을 한다. 집의 모든 동선이 거쳐 가는 곳으로 안방과 건넌방, 사랑방과 누마루, 채와 마당 사이의 매개 공간이자 완충 공간이다. 마루는 식사, 취침, 노동, 여가, 독서 활동, 등 일상생활의 중심 공간이며 접객, 연회 등 비일상 생활도 영위되는 곳이다. 

 

마루는 외부세계와 내부세계를 이어 주는 곳이기도 하다. “달포에 한 번, 건미역과 멸치를 이고 와/하룻밤 묵던 입담 좋은 돌산댁”이 바깥세상 소식들을 전하기도 하고, 이웃들도 들려 물도 얻어 마시고, 땀도 식히고, 농사 이야기나, 대처에 나간 자손들 자랑도 하는 공간이다. 특히 처마 아래 비를 피할 정도의 “쪽마루”는 “봄볕이 따신 궁둥이를 디밀면/늘어진 젖가슴을 내놓고, 마루귀에서/이를 잡던 쪼그랑할멈”도, “눈물 많고 간지럼 잘 타던 꽃각시/곰살맞은 우리 영자고모”도 깔깔거리며 수다를 떨던 수다공간이자 옆집 아낙네가 엉덩이를 걸치고 막 쪄내온 감자나 옥수수를 같이 나눠 먹을 수 있는 곳이다.   

 

누구라도 편하게 들려 서로의 마음을 털어 놓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나누고, 말없이 풍경만 바라 볼 수 있는 "시골집 마루” 같은 마음의 공간 하나쯤 들여놓고 살았으면 좋겠다. 맛있는 음식도 나누어 먹고 이웃과 허물없이 수다를 떨어도 채송화처럼 순하고 낮은 마음들이 환하게 피어나는 “쪽마루” 같은 마음의 공간도 곁들이면 더욱 좋으리라.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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