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봉호의 시대읽기] 정의와 세계관

손봉호 | 기사입력 2019/07/01 [09:14]

[손봉호의 시대읽기] 정의와 세계관

손봉호 | 입력 : 2019/07/01 [09:14]

손봉호 박사(사진)는 서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 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에서 사회철학과 사회윤리학을 가르쳤으며, 한성대학교 이사장, 동덕여자대학교 제6대 총장을 역임했다.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로 현재는 고신대학교 석좌교수, 기아대책 이사장 등을 맡고 있다.

 

마이클 샌델 교수(Michael Sandel)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와이즈베리, 2014)가 출간된 지 1년 만에 100만 권이나 팔렸다. 재미있는 소설도 아니고 당장 생활에 필요한 실용서도 아니어서 그 사실이 더 놀랍다. 책이 워낙 쉽게 잘 쓰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한국인들이 정의에 목말라 있기에 그런 게 아닌가 싶다. 

 

그 책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정의보다는 윤리 전반을 다루고 있다. 윤리란 정의의 문제라고 생각해서 책 제목을 그렇게 붙였을 것이다. 저자의 윤리이론에 전적으로 동의하진 않지만, 윤리 문제가 곧 정의 문제란 것에는 동의한다. 나는 오래전부터 ‘윤리는 직간접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지 않도록 행동하는 것’으로 정의해 왔다.

 

거짓말이 다 나쁜 것만은 아니다. 가령 의사가 환자의 이익을 위해 하는 거짓말은 비도덕적이라 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을 잘못된 길로 이끌어 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거짓말이 비도덕적인 거짓말이다. 따라서 타인을 억울하게 했다면, 이는 정의에 어긋난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비도덕적 행위는 불의(injust)하다. 

 

예외가 없는 건 아니지만 억울함을 당하는 사람 대부분은 약자다. 일반적으로 강자는 억울할 일을 겪지 않거나 혹 당한다 해도 치명적인 손해를 보지 않는다. “부자는 망해도 3년 먹을 것이 있다”는 속담처럼 말이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이 망하면 바로 그때부터 굶는다. 그러므로 정의는 모든 사람에게 필요하지만, 특히 약한 사람을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마치 교통질서는 탱크나 덤프트럭이 아니라 자전거나 소형차의 운행 및 보행자를 위하여 필수적인 것과 같다. 

 

현대 사회에서 정의를 위해 민주주의는 필수적이다. 민주주의가 바람직한 이유는, 다수 의견을 존중해서라기보다 권력의 독점을 막아 부패를 방지하기 때문이다. 모든 권력은 부패하고, 절대 권력은 반드시 부패한다. 그리고 부패는 필연적으로 부정의를 함축한다. 부패의 가장 전형적인 형태인 뇌물수수를 생각해 보면 이해가 쉽다. 어떤 정치학자는 뇌물이 “가난한 자의 돈을 빼앗아 부자에게 주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말했다. 정확한 지적이다. 민주주의는 모든 사람의 권리를 동등하게 존중하도록 보장하는 제도다. 동시에 구체적으로는 약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제도라 할 수 있다. 

 

민주주의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polis)에서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국가의 중요한 사항을 결정할 때, 한두 사람이 아니라 많은 시민이 같이 의논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효시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당시 노예, 여자, 외국인, 상인들은 의결권이 없었다. 달리 말하면 민주주의의 핵심적인 요소, 즉 모든 사람의 평등한 권리, 특히 사회 약자들의 권리보장은 빠져 있었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구성원 전체의 기본 권리를 동일하게 존중해야 한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는 말씀대로 말이다. 민주주의가 서양에서 발달할 수 있었던 것도 기독교적 세계관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봉건주의가 중세를 지배한 것은, 당시 교회가 성경보다 전통의 권위를 더 존중하고 그리스의 세계관에 너무 치우쳐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종교개혁을 통해 성경의 권위와 기독교적 세계관이 회복되면서 민주주의가 발달할 수 있었다. 

 

한국 사회에는 아직도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60번째로 행복한 나라라는 조사 결과는 정의가 충분히 존중받지 못하기에 억울함을 당하는 사람이 많아서이지 않을까.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해서 정의가 바로 서고 약자들이 보호받도록 하는 것, 이것이 바로 기독교적 세계관 운동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임을 잊지 말자. 

 

*본 내용은 <주변으로 밀려난 기독교>에 수록되었던 원고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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