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우리 대법원은 일제 강제노역 피해자에 대한 대법원 배상 판결을 내렸다. 일본은 즉시 강경한 대응을 예고했고, 8개월이 지난 지금 반도체 소재 등 3개 품목에 대한 한국 수출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야당과 보수언론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 정부의 대외교 정책의 ‘무능함’을 지적하며 이를 홍보하는데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우리 기업들이 입을 피해까지 ‘막대한’이라는 표현을 빌려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특히 자유한국당은 문 정부의 이념에 대한 고집이 작금의 사태를 만들었다며 비난수위를 높이고 있다. 전희경 한국당 대변인은 2일 “이념적 목표 달성에만 매진하면서 역사상 최악의 국면을 맞이한 결과가 가혹하다”라며 “일본의 무역규제로 (우리 경제가) 무너져 버린다면 먹거리 성장산업 실종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찌 되는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대법원 강제노역 배상 판결이 난 이후 일본 정부는 계속 통상보복을 언급했다”면서 “외교부는 이런 최악의 사태가 발생할 때까지 방관했다. 감정 외교, 갈등외교가 가져온 외교 참사”라고 비판했다.
야당의 말대로라면 우리 정부는 8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했을까. 일본 정부, 아베 총리의 기조는 항상 똑같았다. 강제징용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자국 기업에도 배상은 물론 화해에도 응하지 말라는 기조가 분명했다. 일 정부는 강제징용 뿐 아니라 위안부 문제에도 같은 방식의 접근 ‘모르쇠’를 고수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들이 말하는 대안과 외교적 해법은 무엇일까. 한국당 집권 시절을 살펴보면 양승태 사법부는 강제징용 재판을 지연시키고, 한미행정협정, SOFA같은 특별협정을 통해 일본 기업의 민사 책임을 덜어주고 배상금 액수도 크게 줄이는 방안을 검토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것도 부족해 재판을 앞두고는 판결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피해자들의 승소와 일본 정부의 불편함을 걱정하기도 했다.
강제징용 판결은 피해자로부터 소송이 제기된 지 13년 8개월 만에 끝을 맺었다. 그동안 소송 당사자 4명 중 3명은 고인이 됐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눈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 왜곡의 역사를 등에 업고 많은 시간을 허비해왔다.
시간이 흐른 작금에 와서는 언론에 의해, 정치인들에 의해 강제노역을 당한 피해자, 위안부 할머니가 일본의 보복을 초래한 국가의 이익에 방해가 되는 가해자로 손가락질을 받는 형국이 되어버렸다.
외교에도 사실과 현실은 직시하고 분리해 대응하는 게 원칙이다. 경제보복에 공포감을 씌우고 역사를 잊으라고 설득하는 행태는 정쟁, 좌우 이념을 떠나 무식한 신념의 발로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지금으로부터 80여 년 전 대한민국은 분명 나약했다. 속칭 '윗대가리'로 불렸던 이들은 선량한 우리 국민이 일본에 끌려가 강제노역을 당하는 슬픈 현실을 막을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난 4월 우리 정부는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수산물 수입 제한과 관련해 WTO 제소 승소라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물론 지금 WTO 카드를 꺼내 든다고 이긴다는 보장은 없지만, 우리가 자신을 지킬 역량은 이미 충분히 올라온 것이 사실이다.
우리 자신의 힘을 믿지 못한 채 '경제 파탄', '참사' 등의 단어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며 상하 의존적인 관계를 지속해가자는 그들의 마음속에는 대한민국이 있는지 아니면 그 시절의 일본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문화저널21 최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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