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는 뛰지 않는다
날마다 먹고 먹히는 강한 자가 지배하지도 약한 자가 지배당하지도 않는 초원을 떠나 사막으로 갔다
잡아먹을 것 없으니 잡아먹힐 두려움이 없다 먹이를 쫓을 일도 부리나케 몸을 숨길 일도 없다
함부로 달리지 않고 쓸데없이 헐떡이지 않으며 한 땀 한 땀 제 페이스는 제가 알아서 꿰매며 간다
공연히 몸에 열을 올려 명을 재촉할 이유란 없는 것이다 물려받은 달음박질 기술로 한 번쯤 모래바람을 가를 수도 있지만
그저 참아내고 모른 척한다 모래 위의 삶은 그저 긴 여행일 뿐 움푹 팬 발자국에 빗물이라도 고이며 고맙고
가시 돋친 꽃일망정 예쁘게 피어주면 큰 눈 한번 끔뻑함으로 그뿐 낙타는 사막을 달리지 않는다
# ‘숭어가 뛰니까 망둥이도 따라 뛰면’, 망둥이도 숭어처럼 될 수 있을까? “물려받은 달음박질 기술로/한 번쯤 모래바람을 가를 수도 있지만”. “공연히 몸에 열을 올려/명을 재촉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삶의 긴 여정을 지나면서 정신의 새로운 변화를 원한다면, 낙타의 여정을 거쳐야 하는 정신의 시련을 이겨낼 수 있어야 한다. 참고 견디어야 할 삶의 짐을 기꺼이 지는 인내심과 낙타의 지구력도 필요하다.
낙타는 달릴 수 있으나 달리지 않는다. 뛸 수 있으나 뛰지 않고 걷는다. 낙타가 사막을 건너는 지혜이다. “함부로 달리지 않고/쓸데없이 헐떡이지 않으며/한 땀 한 땀 /제 페이스는 제가 알아서 꿰매며 간다”. 달려가면 빨리 갈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멀리 갈 수 없다. 사막을 건너는 험난한 여정에서는 감정에 휘둘려 달리거나 뛰지 말고 낙타처럼 걸을 수 있어야 한다.
낙타는 사막을 횡단하기 위해 몸속에 영양분과 수분을 저장한다. 인간의 상황도 이와 같아야 한다. 삶이라는 사막을 건너야 할 때, 육신의 영양분을 비축해야 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정신의 영양분과 수분의 비축이다. 인류가 축적해온 모든 ‘과거’를 자신의 영양분으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과거를 기억하는 것만으로는 그 과거를 소화 할 수 없다.’ 현실의 사막을 건너려면, 자신의 정신 속에 내재화 시킨 과거를 낙타 등에 있는 혹 속에 저장 할 수 있어야 한다. 사막을 건너는 낙타처럼 뛰지 말고 걸어서 삶의 사막을 건널 수 있다면, 이전의 자신을 넘어서서 더 높은 단계로 나아 갈 수 있을 것이다.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저작권자 ⓒ 문화저널21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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