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낙타는 뛰지 않는다 / 권순진

서대선 | 기사입력 2019/07/29 [08:43]

[이 아침의 시] 낙타는 뛰지 않는다 / 권순진

서대선 | 입력 : 2019/07/29 [08:43]

낙타는 뛰지 않는다

 

날마다 먹고 먹히는

강한 자가 지배하지도

약한 자가 지배당하지도 않는

초원을 떠나 사막으로 갔다

 

잡아먹을 것 없으니

잡아먹힐 두려움이 없다

먹이를 쫓을 일도

부리나케 몸을 숨길 일도 없다

 

함부로 달리지 않고

쓸데없이 헐떡이지 않으며

한 땀 한 땀 

제 페이스는 제가 알아서 꿰매며 간다

 

공연히 몸에 열을 올려

명을 재촉할 이유란 없는 것이다

물려받은 달음박질 기술로

한 번쯤 모래바람을 가를 수도 있지만

 

그저 참아내고 모른 척한다

모래 위의 삶은 그저 긴 여행일 뿐

움푹 팬 발자국에

빗물이라도 고이며 고맙고

 

가시 돋친 꽃일망정 예쁘게 피어주면

큰 눈 한번 끔뻑함으로 그뿐

낙타는 사막을 달리지 않는다 

 

# ‘숭어가 뛰니까 망둥이도 따라 뛰면’, 망둥이도 숭어처럼 될 수 있을까? “물려받은 달음박질 기술로/한 번쯤 모래바람을 가를 수도 있지만”. “공연히 몸에 열을 올려/명을 재촉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삶의 긴 여정을 지나면서 정신의 새로운 변화를 원한다면, 낙타의 여정을 거쳐야 하는 정신의 시련을 이겨낼 수 있어야 한다. 참고 견디어야 할 삶의 짐을 기꺼이 지는 인내심과 낙타의 지구력도 필요하다. 

 

낙타는 달릴 수 있으나 달리지 않는다. 뛸 수 있으나 뛰지 않고 걷는다. 낙타가 사막을 건너는 지혜이다. “함부로 달리지 않고/쓸데없이 헐떡이지 않으며/한 땀 한 땀 /제 페이스는 제가 알아서 꿰매며 간다”. 달려가면 빨리 갈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멀리 갈 수 없다. 사막을 건너는 험난한 여정에서는 감정에 휘둘려 달리거나 뛰지 말고 낙타처럼 걸을 수 있어야 한다. 

 

낙타는 사막을 횡단하기 위해 몸속에 영양분과 수분을 저장한다. 인간의 상황도 이와 같아야 한다. 삶이라는 사막을 건너야 할 때, 육신의 영양분을 비축해야 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정신의 영양분과 수분의 비축이다. 인류가 축적해온 모든 ‘과거’를 자신의 영양분으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과거를 기억하는 것만으로는 그 과거를 소화 할 수 없다.’ 현실의 사막을 건너려면, 자신의 정신 속에 내재화 시킨 과거를 낙타 등에 있는 혹 속에 저장 할 수 있어야 한다. 사막을 건너는 낙타처럼 뛰지 말고 걸어서 삶의 사막을 건널 수 있다면, 이전의 자신을 넘어서서 더 높은 단계로 나아 갈 수 있을 것이다.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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