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봉호의 시대읽기] 엄숙하고 소박한 결혼 문화

손봉호 | 기사입력 2019/07/29 [08:48]

[손봉호의 시대읽기] 엄숙하고 소박한 결혼 문화

손봉호 | 입력 : 2019/07/29 [08:48]

손봉호 박사(사진)는 서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 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에서 사회철학과 사회윤리학을 가르쳤으며, 한성대학교 이사장, 동덕여자대학교 제6대 총장을 역임했다.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로 현재는 고신대학교 석좌교수, 기아대책 이사장 등을 맡고 있다.

 

한 사람의 일생에서 결혼식만큼 중요한 의식은 없다. 태어나는 것과 죽는 것은 자신의 책임이 아니고, 그와 관계된 의식도 당사자에겐 무의미하다. 돌잔치나 장례식이 아무리 성대하고 뜻 있게 치러졌다 해도 그의 삶의 가치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결혼식과 그와 관계된 행사에는 당사자의 생각이 반영될 수 있고, 멋진 결혼 행사는 그 사람들의 삶과 이미지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일생 회고하면서 즐거워하고 자랑스러워하는 결혼식, 자녀에게도 자랑할 수 있는 결혼식, 친구와 친지들이 진심으로 부러워하고 칭찬할 수 있는 결혼 행사, 교회와 사회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결혼식을 올릴 수 있다. 일생에 한 번밖에 없는 중요한 행사를 사람들이 하는 방식대로 그저 적당히 치르는 것은 너무 아깝지 않은가? 

 

한국의 결혼 문화에서 적어도 두 가지는 고쳐야 한다. 하나는 결혼식을 그저 통과의례의 하나로만 취급하는 것이다. 물론 결혼식은 하나의 통과의례다. 그러나 취임식이나 졸업식과 같은 성격의 통과의례는 아니다. 졸업식을 하지 않았다 하여 졸업 자격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취임식이 없었다 하여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결혼식을 올리지 않았으면 여러 면에서 온전한 결혼이라 할 수가 없다. 

 

결혼 의식의 핵심은 서약이다. 신랑과 신부가 증인들과 하나님 앞에서 죽음이 둘을 갈라놓을 때까지 어떤 경우에라도 서로에게 신실하고, 부부의 대의와 정조를 지킬 것을 약속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서약은 단순히 하나의 이례적인 형식이 아니라 국가 간의 조약이나 사업상의 계약과 같이 실제적인 의무와 권리가 발생하는 근거로 보아야 한다. 부부는 피로 연결된 자연적 관계가 아니라 두 성인의 서약으로 맺어지는 언약의 관계다.

 

시내산 언약으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시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민의 지위를 얻은 것처럼 신랑과 신부는 혼인 서약으로 비로소 남편과 아내가 된다. 결혼식을 올리고 하객을 초청하는 것은 그 서약의 증인이 되어 약속수행을 더 충실하게 수행하도록 압력을 받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결혼식은 엄숙하게 치러야 하고 결혼 서약은 신실하게 해야 한다. 

 

또 하나 고쳐야 할 폐습은 결혼 잔치를 돈 잔치로 만드는 것이다. 모든 신성한 것은 돈과 무관해야 하고, 결혼이 신성하다면 돈은 거기에 개입되지 말아야 한다. 돈을 바라서 결혼하는 것은 상대에 대한 모독이고 결혼의 신성함에 대한 모독이다. 수많은 청첩장을 뿌리고, 일급 호텔 예식장에서 온갖 호화로운 행사를 동원해 하객에게 돈 자랑을 하는 것은 신랑 신부의 행복과는 무관하게 부모의 허영심이 상연하는 코미디다.

 

그들은 사람들이 부러워할 줄 알지만 오히려 질투하고, 돈 없는 사람들은 서러워한다. 사람을 질투하게 하고 사람을 서럽게 하는 결혼이 의미 있고 행복할 수 있겠는가? 그리스도인 가정은 그런 광대놀이를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사회의 잘못된 결혼 문화를 고쳐야 한다. 한국 사회와 교계에서 존경 받는 이만열, 김일수, 고(故) 김인수 장로 등은 자녀 결혼식에 청첩장을 돌리지 않고 친척, 친지 몇 분만 초청해 조촐하고 엄숙하게 예식을 치렀다. 

 

신혼 가정에 필요한 모든 것을 부모가 다 공급해 주는 것도 아주 크게 잘못하는 것이다. 신혼부부가 열심히 일하고 철저히 아껴서 반짝거리는 새 숟가락 하나, 새 접시 하나 사 들고 마주 보면서 같이 즐거워하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 그런데 부모가 모든 것을 한꺼번에 왕창 공급해 주는 것은 얼마나 잔인한가? 자녀에게 주는 것은 모든 부모의 즐거움이다. 그런 즐거움을 자신들이 누리기 위해서 신혼부부의 잔잔한 행복을 빼앗아 버리는 것은 자녀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에게 죄를 짓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돈이 가정을 위한 행복의 조건이 아니라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부모의 경제적 책임은 자녀를 양육하고 필요한 교육을 받게 하는 것으로 끝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손을 벌려야 할 정도로 곤궁한 상황이 아니면 물질적으로 돕지 않는 것이 자녀의 책임감과 독립정신을 키우는 것이고 그들의 자존심을 존중하는 것이다. 젊어서 하는 고생은 사서라도 해야 한다. 

 

혼수가 적다고 며느리를 구박하는 못난 부모들이 가끔 있다. 인도 같은 후진국에는 결혼지참금(dowry) 제도가 심각한 사회적 문제다. 남존여비를 고수하는 후진 문화의 전형적인 악습이고, 우리의 혼수제도는 그런 잘못된 악습의 잔재다. 모든 사람의 평등한 인권을 존중하고 여권 신장에 앞장선 한국 기독교가 반드시 제거해야 할 전통이다. 혼수에 집착하는 것은 며느리의 권한이 점점 커지는 시대에 별것 아닌 것으로 늙어서 구박 받을 빙거(憑據)를 만드는 어리석음이기도 하다. 

 

엄숙하고 조촐하며, 모두가 축하하고 즐거울 수 있는 기독교적 결혼 문화가 정착되기 바란다. 

 

*본 내용은 <주변으로 밀려난 기독교>에 수록되었던 원고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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