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섭의 복싱비화] 비운의 세계 챔프 최요삼과 그의 마지막 트레이너

조영섭 기자 | 기사입력 2019/08/08 [22:10]

[조영섭의 복싱비화] 비운의 세계 챔프 최요삼과 그의 마지막 트레이너

조영섭 기자 | 입력 : 2019/08/08 [22:10]

복싱칼럼을 연재한지가 어느덧 5년여를 맞이했다. 서투른 글 솜씨라도 권투에서 배운 초심과 인내심을 잃지 않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자세로 전력투구 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요즘 글을 쓰기 전에 먼저 생각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그림을 그리기 전에 스케치를 하듯이 글을 쓰기 전에 머릿속에 밑그림을 일목요연(一目瞭然)하게 그려 본다. 마치 복싱에 입문할 때 스파링 보다는 기본 스텝을 배우게 하고 가수의 꿈을 꾸며 첫발을 내딛는 지망생에게 발성연습만 시키듯이 말이다. 

 

좋은 글은 좋은 감정에서 생기고 감정은 좋은 생각에서 일어나기에 감정과 생각은 일란성 쌍둥이 같은 묘한 함수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 8일 오전 이동포 관장과 지인들이 문성길체육관을 찾았다. (왼쪽부터) 조영준 캡틴 체육관 후원회장, 전 WBA, WBA 세계챔피언 문성길, 이동포 캡팅체육관 관장, 텔런트 권관오 © 조영섭 기자


각설하고, 오늘 비화의 주인공은 WBC라이트 플라이급 챔피언 최요삼(73년, 정읍)의 마지막 트레이너이자 현재 서울 강동구에서 캡틴 복싱클럽을 운영하는 이동포(67년, 서울) 관장이다. 

 

이 관장은 최요삼이 2002년 멕시코의 아르세 에게 4차 방어에서 타이틀을 상실한 후 2003·4년 연달아 치러진 두 차례의 세계타이틀전에서 패하고 은퇴를 선언했다가, 마지막 불꽃을 태우기 위해 2006년 컴백했을 당시 그의 전담 트레이너 였다. 

 

이 관장은 직속상관인 이영래 사범 과 조민 관장에 비해 지명도는 떨어질지라도 지도 능력만큼은 낭중지추(囊中之錐) 같은 검증된 존재다. 이런 그가 최요삼과 호흡을 함께하며 2007년 9월 WBO 인터콘티넨탈(플라이급)챔피언에 등극하는데 견인차 역할을 했고 그해 12월 25일 1차 방어전에서 헤리 아몰(인도네시아)과 경기에서 최요삼이 승리를 거두고 유명을 달리할 때 역사의 현장에 있었던 산증인 이다. 

 

87년 영등포중학교 2학년 때, 원진체육관에 입관하면서 시작된 최요삼의 복싱은 89년 신생 용산공고에 창단멤버로 입학하면서 서곡을 울렸고 93년 프로에 입문해 94년 신인왕, 95년 한국챔피언, 96년 동양챔피언, 99년 세계챔피언에 등극하면서 마치 미장이가 벽돌을 쌓아 올리듯이 차곡차곡 정상에 올랐는데, 이는 박종팔, 정기영에 이은 3번째 기록이다.

  

최요삼은 93년 7월 13일 문성길이 살라자르와 9차 방어전을 치를 때 데뷔전을 치른다. 이후 심영자 회장 사단에서 이영래 사범의 조련을 받으며 비약적인 급성장을 이룬다. 89년부터 95년까지 6년 동안 필자와도 호흡을 맞췄던 최요삼은 내 품을 떠나 일취월장 발전을 거듭하면서 결국 99년 10월 WBC LF급 타이틀전에서 챔피언인 태국의 사만 소루자 투롱을 불려 들여 판정승을 거두고 정상에 올라선다. 

 

당시 사만은 44전 41승(31KO승)1무2패의 기록으로 10차 방어에 성공했으며, 그 중 8차례는 KO로 장식한 하드펀처였다. 사만은 장정구, 이열우, 김광선, 카바할(미국)등 최고의 복서들과 맞대결을 펼쳐 5승1패의 우위를 점한 극강의 움베르토 곤잘레스(멕시코)의 WBC 라이트플라이급 타이틀을 놓고 95년 맞대결을 펼쳐 격렬한 타격전 끝에 7회KO로 잡고 정상에 올랐던 톱복서였다,  

 

이런 화려한 커리어를 지닌 사만을 꺽고 정상에 오른 최요삼은 2차 방어전에서 또 한 차례 사만과 재격돌, 군말 없이 7회 KO승을 거두며 도약을 예고한다. 하지만 IMF와 맞물려 2년 4개월동안 단 3차례의 방어전만 치르면서 곤욕을 겪는다.

 

결국 2002년 4차 방어전에서 28승(20KO승) 1무 3패를 기록한 호르헤 아로세(멕시코) 에게 벨트를 내 준다. 아로세는 이후 플라이급과 슈퍼플라이급에서 3체급을 석권하는 초특급 복서로 성장했지만 최요삼은 이후 두 차례의 세계타이틀 매치에서 실패하며 묘한 희비쌍곡선을 그렸다. 

 

▲ (왼쪽부터) △격투기출신에서 복서로 전환한 방승환과 이동포 관장(우측) △마지막경기에 출전하는 이동포 관장과 최요삼 △조민관장, 최요삼, 전광진 매니저, 이동포 관장(우측) (사진=조영섭)

 

의욕을 상실한 상태에서 최요삼이 만난 트레이너가 한국화장품 소속의  이동포관장 이다. 수도승처럼 절제된 생활을 하는 이동포 관장을 오랫동안 지켜본 전 IBF 플라이급 챔피언 정비원(60년, 부안)은 올곧음과 강직함을 겸비한 복싱후배라고 말한다.      

 

강단 있는 지도력으로 김봉준, 정비원, 백종권 등 3명의 챔피언을 베출시킨 명트레이너 조민(45년, 인천체대) 관장의 문하에서 현역생활을 시작한 이 관장은 83년, 후에 WBA미니멈급 세계정상에 오르는 김봉준과 함께 프로테스트를 받는다. 

 

하지만 김봉준 등은 탈락하고 이 관장만 합격 하면서 84년 프로로 전향했으나 고질적인 퇴행성 허리 디스크로 시달리면서 얼마 후 선수생활을 접고 만다. 참고로 세계챔피언 중 프로테스트에 탈락한복서는 3차례연속 탈락한 변정일과 김봉준 단 2명이다.  

 

조민 관장 휘하에서 체계적으로 트레이너수업을 받은 이동포 관장은 2006년 최요삼의 트레이너로 낙점되어 지도를 시작한다. 그가 최요삼에게 던진 첫마다가 인상적이다. “다꺼진 불씨라고 남들이 무시해도 개의치마라. 다 꺼진 불씨가 다시일어나 산을 태우는 법이다.” 

 

안정을 찾은 최요삼은 WBO 인터네셔널 타이틀(플라이급)을 획득하는 등 4연승을 질주한 후. 2007년 12월25일 1차 방어전을 준비한다. 이경기가 끝나면 WBO 플라이급 타이틀에 포커스를 맞출 수 있는 중요한 일전이었다. 

 

상대는 21승6KO승8패3무를 기록한 인도네시아 미니멈급 챔피언을 지낸 헤리 아몰 선수. 마지막훈련이 끝나자 그는 스승인 이동포 트레이너에게 “사범님 저는 죽으면 제 몸에 있는 장기 다 기증해버리고 떠나고 싶습니다”라고 말하자 이 관장은 “재수 없는 소리 말라”고 야단을 쳤다. 

 

운명의 그날, 4회부터 6회까지 퍽,퍽 소리가 날 정도로 서로의 이마가 부딪치는 파열음소리가 격렬하게 일어난다. 흡사 소싸움 같은 버팅으로 오히려 최요삼이 더 큰 데미지를 입는다. 7회부터 최요삼은 자꾸 글러브로 눈을 비빈다. 처음엔 땀이 들어가서 그런 줄 알았지만 눈에 이상 현상이 일어나 시야가 흐려져 눈을 비빈 것이다. 

 

최요삼은 사만 과의 타이틀 탈취과정에서도 지능적인 버팅을 유효적절(?) 하게 사용하면서 감점을 당한일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상대는 5cm나 키가 작고 12살이나 젊은 아몰이다. 그가 헤드 버팅으로 맞받아치자 역으로 최요삼은 충격을 받은 채 12회를 맞이한다. 결국 상대의 일타에 최요삼은 쓰러진다. 이후 극적으로 승리를 거뒀지만 그는 병원으로 이송된다. 

 

이 과정에서 구급차에 같이 동승한 이 관장은 구급차 내에 산소호흡기가 재대로 작동하지도 않아 충분한 응급조치를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뇌압을 낮추는 약품도 구비되지 않아 안타깝다고 회고했다. 또한 뇌전문 의사가 아닌 정형외과 레지던트가 동행 했다고 하면서 권투가 아무리 주먹으로 하는 운동이라지만 모든 행정이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는듯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2008년 1월 3일 최요삼은 결국 35세의 길지 않은 삶을 마감한다. 33승19KO승 5패의 전적을 남기고... 그날은 그의 아버님 기일이었다. 놀라움과 황망함이 한꺼번에 밀려온 이 관장은 추스를 수 없는 슬픔이 덮쳐 그의 인생에서 지울 수 없는 변곡점(變曲點)이 되어버렸다. 

 

살을 저미는 절망감을 느낀 그는 결국 트레이너생활을 접는다. 그리고 일 년 동안 여행을 하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충전(充電)의 시간을 가진 후 2009년 강동구에 체육관을 오픈하며 새로운 도약을 시도한다. 

 

▲ 제50회 전국 신인선수권대회에서 종합우승과 을 수상한 이동포 체육관 (사진=조영섭)


이 관장은 2009년 자신의 명성을 알고 찾아온 MMA에서 활약한 전도유망한 방승현과 양해준에게 복싱을 지도하면서 인지도를 높힌다.  2018년엔 제50회 중·고 신인선수권대회에서 종합우승과 함께 최우수 지도자상을 받으며 주목을 받는다. 

 

사실 사설체육관에서 전국선수권 타이틀이 걸린 대회에서 종합우승을 창출한 경우는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어려운 일이기에, 그의 역량을 높이 평가하기에 부족함이 없으리라 생각한다.

 

이때의 주역들인 이병인(유원대학교), 신유섭(이상 서울체고), 이제니(영파여고), 신기은(하남경영고)등은 국가대표 상비군으로 발탁되어 활약했는데 군계일학은 헤비급의 이병인이다. 그는 무려 4차례나 상비군에 선발되어 독보적인 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이런 커리어를 쌓은 이동포 관장을 나는 사석에서 전 프로야구 한화 이희수 감독 같은 지도자라 평했다. 왜냐면 82년 프로야구가 태동해 37년 이란 세월이 흐르면서 한화이글스는 배성서 감독을 시작으로 이광환·강병철·김영덕·김인식·김성근·한대화·유승안·김응룡·한용덕 등 숱한 명장들이 팀을 맡아 지도했지만, 99년 유일무이하게 한화팀을 한국시리즈에 우승시킨 감독은 무명의 이희수 감독이기 때문이다. 반짝거린다고 금은 아닌 것이다. 

 

이런 이동포 관장이 지난 7월 6일 아침 일찍 나의 체육관에 들려 최요삼에게 어머님 같은 역할을 담담한 심영자 회장님 희수연에 참석하고 싶지만 새로 오픈하는 체육관 공사관계로 참석하지 못한다는 말을 전하면서 축의금을 전달하고 떠났다. 돌아서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마태복음에 나오는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는 말을 음미하며 그의 가슴 따뜻함에 훈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최요삼은 우리 곁을 훌쩍 떠나갔다. 모든 만물은 한번 핀 것은 지고 온 것은 기어이 돌아간다. 그것이 자연의 섭리다. 또한 복싱이나 인생이나 대리석과 진흙이 혼합되어 펼쳐진 드라마 같다. 왜냐면  한편으로 보면 비극 같이 보이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희극같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생을  연극이라 부르는가 보다.

  

조영섭

 

문화저널21 복싱전문기자

 

현) 서울복싱연맹 부회장

현) 문성길복싱클럽 관장 

 

전) 82년 로마월드컵 대표선발전 플라이급 우승

베냐민 19/08/09 [06:18] 수정 삭제  
  최고의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낙지 19/08/10 [13:25] 수정 삭제  
  최고의 글입니다! 최요삼 복싱 시절을 알게 되어서 좋았습니다.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쓰신게 보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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