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이라는 불완전한 텍스트에 관하여

박항준 | 기사입력 2019/09/11 [10:50]

‘상식’이라는 불완전한 텍스트에 관하여

박항준 | 입력 : 2019/09/11 [10:50]

[텍스트 테러리스트]

이번에는 우리가 얼마나 내 텍스트에 갇혀 살면서 엉터리 기준을 남발하며 남들을 비난하는지 반성해 볼 시간이다. 단순히 지하철을 한번 타면서 만들어지는 불완전한 ‘상식’이라는 텍스트를 뒤돌아본다면 쉽게 그 의미를 알 수 있다. 

 

우측통행으로 바뀐 지 오래인데 왜 좌측으로 와서 내 길을 방해하지?

지하철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있는 아줌마들은 대체 뭐야! 

스마트폰 읽으면서 왜 천천히 걸어? 

지하철에서 음료 먹는 사람들 참~~ 

레깅스가 외출복이냐? 

쩍벌남 그렇게 주의를 줘도~~

에스카 레이터에서 왜 걸어가? 그렇게 바쁘면 계단으로 다니던가~

이렇게 뚱뚱하면 남을 위해서 지하철 좌석에 안지를 말아야지

에스컬레이터 왼쪽에 서서 바쁜 사람 길을 막지! 배려를 몰라. 

지하철 먼저 내리고 나중 타는 거는 상식인데 왜 먼저 들어오시나?

저 여자는 왜 지하철에서 화장을 하지. 여기가 화장실이냐?

껌 씹고, 술 냄새나는 사람들은 예의 상 택시 타면 안 되나 

책은 안 보고 온통 스마트폰들만 보고들 있네~목 부러지겠다 

젊은 애가 게임에 미쳐서 지하철 내내 게임이네.....

왜 공간 많은데 날 툭 치고 가지? 

저 어르신은 노약자석 놔두고 왜 내 앞으로 오는 거야?

지하철에서 백 팩 앞으로 매는 거는 기본이야 

스마트폰 보면서 걷지 좀 마라

그렇게 뛰어갔는데 문 급히 닫고 출발해 버리는 기관사는 뭐야!

기다리는 의자에 같이 좀 앉게 하지 짐은 왜 올려놓은 거야 

기껏 줄 서 있는데 왜 새치기? 

 

어마어마한 나만의 상식(text)이 만들어지고 있지 않은가? 모두 ‘상식’이라는 포장된 텍스트다. 내 상식에 맞지 않으면 몰상식이 되고, 배려가 없는 사람이 되고, 무식한 사람 취급하게 된다. 우리는 지하철 한 군데에서만 엄청난 판사 놀이를 하고 있다. 이 판사 놀이가 직장으로, 가정으로, 사회로, 국가로 퍼져 나가다 보니 우리 사회는 ‘몰상식의 왕국’으로 매도되고 있다.   

 

[‘상식’의 정의 바로 알기]

그럼 위의 텍스트들 중 실제 몇 개의 사례가 불법일까? 아이러니하게도 불법행위는 거의 없다. 그럼 대부분 상대방에 대한 배려, 예의 즉, ‘상식’이라는 기준으로 내 텍스트가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럼 상식이란 무엇일까? 상식이 무엇이기에 상대를 판단하고 비판하는 텍스트의 기준이 되는 것일까? 사전적으로 상식이란 ‘사람들이 보통 알고 있거나 알아야 하는 지식. 일반적 견문과 함께 이해력, 판단력, 사리 분별 따위가 포함된다.’로 정의된다.  

 

그런데 사리분별과 판단력의 기준을 정하는 우리 자신이 정보의 부정확성과 주관성으로 인해 객관적이지 못하다는데 ‘상식’의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며 현대인들 간에 서로를 비웃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솔직히 하루에 몇 번씩 되새기는 것이지만 위 텍스트 사례들은 전혀 상식적이지 않다. 심지어 에스컬레이터의 경우 ‘걸어도 된다’와 ‘걷지 말아야 된다’라는 사회적 합의가 없이 서로 상대를 비웃고 있다. 최근에는 인터넷에 ‘한 번에 고기 두 점씩 먹는 친구가 진상이 아니냐?’는 글이 올라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우리 모두 ‘상식’을 내세운 텍스트 테러리스트인 것이다. 

 

[위험한 사람! 상식적 인간]

‘상식’적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있는 불평 불만자들을 우선 조심하자. 이들이 오히려 가장 비상식적인 사람이며, 자기 프레임(text)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는 가장 이기적인 사람이다. 나 스스로도 ‘상식’이라는 기준으로 상대를 비판하지 말아야 한다. 상대의 행동은 상황과 태도에 의해서 표출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ABC이론이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상대의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러니 비판할 자격이 없다. 

 

[이제 콘텍스팅(contexting)의 세계로....,,]

내가 만들고, 알고 있는 ‘상식’은 공유해야 할 ‘불완전한 텍스트’ 일뿐이다. 그러므로 강요해서도 안되며, 가르침의 대상도 아니다. 서로의 ‘상식’들을 융합하고, 결합하고, 합의하는 과정이 필요할 뿐이다. 법이 항상 올바른 것은 아니지만 이 합의과정을 거친 약속이기에 지켜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텍스트 합의과정을 콘텍스팅 (텍스트 간 융합, 결합, 협력, 합의의 과정)이라 명명한다. 이제 ‘상식’이라는 이기적 기준을 버리고 상대의 텍스트와 결합하는 콘텍스팅 세계로의 여행을 떠날 차례다.

 

박항준 세한대학교 교수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