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항준 칼럼] 기관사의 선택

박항준 | 기사입력 2019/09/17 [16:35]

[박항준 칼럼] 기관사의 선택

박항준 | 입력 : 2019/09/17 [16:35]

# 첫 번째 질문

스피커가 묻는다. “200명의 승객이 타고 있는 고속열차의 브레이크가 고장이 났습니다. 고속으로 달리는 열차를 그대로 직진하면 사용하지 않는 철로로 진입해 열차가 낭떠러지로 떨어지게 됩니다. 201명의 목숨이 위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반면 교차로에서 방향을 바꾸어 터널로 진입하면 얼마 후 전기 없는 선로에서 멈추게 됩니다. 그러나 터널 안에서 공사를 하고 있던 5명의 인부들은 사망하게 될 것입니다. 기관사의 결정에 따라 201명과 5명의 운명이 바뀌게 됩니다." 

 

스피커는 ‘내가 그 고속열차의 기관사라면 나는 201명을 살리는 기관사가 될 것인가? 아니면 어느 잘못도 없는 인부 5명을 살리는 기관사가 될 것인가?’라며 피할 수 없는 두 개의 선택지를 우리에게 준다. 

 

# 두 번째 질문 

스피커가 추가로 묻는다. “당신의 의사결정에 추가될 정보가 있습니다. 터널에서 일하고 있는 5명의 인부 중 3명은 당신의 가족이라는 것입니다. 당신의 장남과 부모님이 터널에 계십니다. 나머지 2명도 수십 년간 같이 동고동락해온 직장동료이자 매우 친한 친구들입니다. 당신이 터널 쪽으로 핸들을 꺾는 순간 당신은 평생 그들을 가슴에 묻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다시 선택지를 드리겠습니다. 당신이 기관사라면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 세 번째 질문

스피커가 재차 묻는다. “무전으로 기관사는 새로운 정보를 듣게 됩니다. 바로 내 뒤에 타고 있는 승객 200명 모두가 교도소를 옮기고 있는 사형수들이라는 것입니다. 강간과 폭력, 살인으로 사형을 앞둔, 사회에서는 쓰레기로 분류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스피커는 “내가 우리 부모와 자식까지 포기하면서 이왕 죽을 사형수들을 살려야 하는가?”를 묻는 것이다.        

 

정의(Justice)란 무엇인가?

위 이야기는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나온 질문을 각색한 내용이다.  여러분이 기관사라면 어떠한 선택을 하게 될까? 쉽지 않은 결정이다. 

 

세 개의 질문에 대한 정의(Justice)는 무엇일까? 각자의 의견(text)이 다를 수 있다. 텍스트 간 갈등이 높아질지 모른다. 들려오는 정보의 내용에 따라 결정이 뒤바뀌기도 할 것이다. 누구는 가족애가 깊어 무조건 가족애를 우선하는 결정을 내릴 수도 있을 것이며, 또 다른 누구는 사형수라도 인권이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 결정을 하더라도 옳다거나 틀리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 그러나 기관사는 선택을 해야 한다. 어떤 선택이 현명한 선택이며, 어떤 선택이 사회적 정의(Justice)를 이루는 선택일까? 

 

이 에피소드를 보면서 우리는 다시 한 번 텍스트의 불완전성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옳거나 바르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텍스트는 추가되는 외부 정보에 따라, 개인의 습성에 따라 또는 또 다른 변수들에 따라 바뀔 수 있는 불완전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약 오르게도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은 여기에서 끝이 난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꼭 화장실에서 큰 볼일을 본 후 뒤를 닦지 않은 느낌을 받는다. 국내에서만 100만 권 이상 판매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은 텍스트의 불완전성을 깨닫게 해주는 역할을 하지만 결국 그 해결책은 주지 못한 채 끝난다. 정의(Justice)의 개념적 정의(definition)에서 머물렀기 때문이다. 이제 마이클 샌델의 책을 뒤로하고 우리 스스로가 정의(Justice)의 실천적 정의(definition)에 대해서 알아보자. 

 

기관사의 본질 찾기(Contexting)

서로 다른 텍스트를 갖고 있는 이들은 바로 콘텍스팅(contexting)을 통하여 텍스트 간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그 구체적인 과정은 칼럼 지면 관계상 생략한다) 

 

우선 기관사의 본질을 찾아보자. 누가 기관사에게 기차의 열쇠를 주었으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렇다. 기관사에게 키를 준 것은 ‘승객을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이송하는 일’에 대한 책임과 권한을 맡긴 것이다. 기관사는 가족의 안전을 위해 기차를 운전할 권한을 받은 것이 아니다. 또한 사형수를 제거하라고 운전의 권한을 받은 것도 아니다. 기관사는 고속열차 운전대를 잡은 순간 가족도, 뒤에 타고 있는 이들이 누구냐에 상관없이 ‘승객의 안전한 이송’을 명령받았을 뿐이다. 이것이 바로 기관사라는 직업의 ‘본질’이다. 

 

여러분도 필자가 제시한 기관사의 책임과 권한에 대한 ‘본질’에 동의하는가? ‘승객의 안전한 이송에 대한 책임’이라는 ‘본질의 정의(definition)’에 고개를 끄덕였다면 콘텍스팅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제 기관사인 나는 눈물을 머금고 내 기차에 탄 승객들을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이송시키면 된다. 이것이 사회적 정의(Justice)다. 

 

서로 다른 시점의 텍스트들 간 갈등 상황 이후에 본질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면 사회가 안정된다. 논란과 싸움이 줄게 되고, 사회가 공동의 목적을 찾았기에 의견이 달랐던 이들끼리도 협력할 수 있다. 공자는 콘텍스팅에 대해 논어 학이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와 멀리하던 이들이 내 텍스트의 본질에 대해 동의해 준다면 이 얼마나 기쁘지 아니하겠는가?((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 

 

박항준 세한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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