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의원님들의 삭발에서 ‘저항’을 찾습니다

박영주 기자 | 기사입력 2019/09/18 [16:55]

[기획] 의원님들의 삭발에서 ‘저항’을 찾습니다

박영주 기자 | 입력 : 2019/09/18 [16:55]

‘블랙코미디’로 전락한 국회의원들의 삭발

1987년부터 시작된 삭발의 역사, 대의는 사라졌다

반복된 삭발에 의미 퇴색돼…일하지 않는 의원님들의 

 

유교문화가 뿌리깊게 자리잡은 대한민국에서 머리를 자른다는 행위는 강렬한 인상을 안겨줬다.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라는 말처럼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소중한 머리카락을 잘라낸다는 것은 결기를 보여주는 수단으로 곧잘 사용돼왔다. 

 

올해만 벌써 두차례의 삭발이 자유한국당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2019년 초에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를 저지하겠다고 박대출 의원이 스스로 머리를 민데 이어 김태흠·윤영석·이장우·성일종 의원과 이창수 충남도당 위원장이 국회 앞에서 집단으로 삭발했다. 

 

하반기에는 추석을 앞두고 이뤄진 조국 법무부장관 임명 강행에 반발하면서 무소속 이언주 의원이 삭발한 것을 시작으로, 박인숙 자유한국당 의원이 바통을 받아 황교안 대표가 청와대 앞에서 삭발식을 했다. 현재 자유한국당은 릴레이 삭발을 예고하며 다수의 의원들이 삭발에 동참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시에 대머리가 된 국회의원들은 투쟁의 의미를 국민들에게 전달하겠다고 말하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정치쇼’라고 입을 모은다. 삭발의 목적은 온데간데 없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담은 사진만이 희화화 돼서 돌아다닐 뿐이다. 정치판에 스며든 삭발은 언제부터 저항이 아닌 쓴웃음의 산물이 됐을까. 정치판에서 이뤄진 삭발의 역사를 되짚어보고 삭발의 의미가 변질된 경위에 대해 살펴봤다. 

 

#1987년 박찬종 신민당 의원의 ‘첫 삭발’

군부독재 종식 위해 김영삼‧김대중 후보단일화 요구 

 

정치판에서의 공식 첫 삭발은 19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박찬종 신민당 의원은 통일민주당에서 한배를 탔던 김영삼과 김대중이 13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분열하자 ‘후보 단일화’를 요구하면서 삭발과 함께 단식투쟁에 나섰다. 

 

13대 대선은 대한민국 최초의 직선제 선거면서, 동시에 전두환 정권의 종식을 알릴 신호탄이 될 것이라는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선거였다. 

 

이 때문에 박 의원 역시도 전두환의 군부독재를 종식하려면 확실한 후보단일화를 통해 승리를 거머쥐어야 한다는 주장을 편 것이다. 실제로 그 당시 전두환 정부와 여당인 민주정의당에서는 4파전 양상을 은연 중에 기대하고 있었다. 

 

박 의원의 삭발과 단식에도 결국 단일화는 실패로 돌아갔고, 전두환이 소속된 민주정의당의 노태우가 통일민주당 김영삼을 꺾고 13대 대통령으로 당선돼 군부정권은 지속됐다. 

 

끝까지 단일화를 외쳤던 박 의원은 이후 통일민주당을 탈당했지만, 삭발이 준 강렬한 메시지와 그 속에 담긴 대의 덕분인지 이듬해인 1988년 그는 무소속으로 서울 서초구 갑에 출마해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다. 

 

#1997년 김성곤 전 새정치국민회의 의원의 삭발 

명퇴‧비정규직‧파견근로자 탄생시킨 노동법, 날치기 통과에 항의 

 

두 번째 삭발은 1997년 김성곤 새정치국민회의 의원이 ‘노동법’ 날치기 통과에 항의하며 진행한 삭발식이었다. 

 

1996년2월 김영삼 정부가 개정을 추진했던 노동법은 사실상 ‘노동개악’으로, 지금 현재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명예퇴직이나 비정규직 문제는 물론 파견근로자를 탄생시키는 첫 단추가 됐던 법안이었다.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 의원들은 노동계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1996년12월26일 ‘관광버스’를 동원해 154여명의 의원들을 국회로 투입시켜 7분 만에 11개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대표야당이던 새정치국민회의에서 거세게 반발했고, 김성곤 의원이 총대를 메고 삭발을 감행했다.

 

삭발을 진행했을 당시의 김 의원은 15대 총선을 통해 처음으로 국회에 입성한 초선 의원이었다. 노동계의 분노를 삭발로 표현한 정치인의 모습 덕분인지, 그는 1998년부터 새정치국민회의 원내부총무를 역임하고 17대‧18대‧19대 총선까지 내리 당선돼 의원활동을 지속했다. 

 

#1998년 정호선 새정치국민회의 의원의 삭발

“나는 2억원을 받지 않았다” 공천뇌물 수수 부인해

 

세번째 삭발로 오면서 정치인의 삭발은 대의를 위한 투쟁보단 개인의 절박함을 보여주는 일종의 ‘호소’로 자리 잡게 됐다. 

 

1998년 정호선 새정치국민회의 의원은 공천과정에서 뇌물을 수수했다는 의혹을 받았는데, 이를 부인하면서 부인 박남희씨와 함께 부부동반 삭발에 나섰다. 주변의 만류로 부인은 삭발에 참여하진 않았지만 정 의원은 “저는 결코 2억원을 받은 적이 없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당시 수사당국에서는 전 전남도의원 김평길씨가 나주시장 경선 과정에서 국민회의 지구당 위원장인 정호선 국회의원 측에 3월1일 2억원, 3월17일 2억원을 포함해 총 4억원을 건냈다고 주장함에 따라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한 바 있다. 이후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됐지만,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의 힘을 빌어 체포동의안이 통과되지 않으면서 방탄국회의 수혜를 입었다. 

 

결국 정 의원은 16대 총선에서 낙선했고, 이후 새누리당 전남지사 후보로 출마하려 했지만 당내경선에서 이중효 당시 새누리당 전남지사 후보에 밀려났다. 삭발까지 하면서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이것이 국민들의 마음에는 그다지 와 닿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 중 하나였다. 

 

© 문화저널21

 

이후 정치권에서 이뤄진 삭발은 2000년대로 넘어가야 한다. 2000년대 중반부터 정치인들의 삭발은 대의보다는 특정 정책이나 사안 등에 대해 반대하면서 자신들의 결기를 보여주는 일종의 ‘보여주기’성 항의수단으로 전락해버렸다. 그때문에 삭발이 가져오는 사회적 효용 역시도 그다지 크지 않고 특정 집단의 이익을 대변해주는데 그쳤다. 특히 일련의 삭발은 노무현 정부 당시인 2003년 2월부터 2008년 2월 사이에 집중됐다. 

 

#2004년 설훈 열린우리당 의원의 삭발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 처리 반발…17대 총선 불출마로 이어져

 

2004년에는 설훈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이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 처리에 반발하며 삭발을 해서 눈길을 끌었다. 

 

설 의원은 당시 조순형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가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주도하자, 지도부 총사퇴와 탄핵철회를 외치며 삭발을 감행하고 무기한 단식투쟁에 돌입했다. 설 의원은 끝내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탈당했고, 17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삭발 선배라고도 할 수 있는 설훈 의원은 최근 BBS라디오 이상휘의 아침저널에 출연해 황교안 대표의 삭발을 놓고 “제1야당 대표가 삭발했다는 이야기는 금시초문”이라며 삭발까지 하면서 정쟁을 지속해야하는지는 의문이라는 경험에서 나온 조언을 내놓기도 했다. 

 

#2007년 1월 이규택 한나라당 전 의원 삭발

노무현 정부 ‘하이닉스 이천공장 증설 불허’ 방침에 반발

 

2007년 1월 25일 한나라당 이규택 의원과 조병돈 이천시장, 이종률 경기도 의원 등 이천시의원들은 국회 앞에서 일제히 삭발을 단행하고 대정부 투쟁을 예고했다. 

 

이는 지역균형발전을 염두에 뒀던 노무현 정부가 ‘수도권 공장 증설은 예외적인 경우 외에는 허용하지 않겠다’는 방침 하에 하이닉스 반도체 이천공장 증설을 불허하자 지역구 주민들이 항의에 나섰고, 지역구 민심을 대표하는 차원에서 지역구의원 및 시장 등이 총대를 메고 삭발을 감행한 것이었다. 

 

당시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한 이들은 “하이닉스는 이천경제를 지켜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경제를 지켜준다”며 정부의 결정이 이천 지역의 생존권을 위협한다고 주장했다. 끝내 7년 뒤인 2014년 정권을 잡은 박근혜 정부에서 하이닉스 이천 공장의 증설을 허가하면서 한나라당의 뜻대로 공장 증설이 이뤄졌다. 

 

#2007년 2월 김충환·신상진·이군현 한나라당 의원 삭발

사학법인 운영자들 위한 재개정안…한나라당 뜻대로 추진돼

 

이규택 의원이 삭발을 한지 한달이 막 지난 2월26일 같은 당의 김충환‧이군현‧신상진 한나라당 의원은 국회 로텐더홀에서 사학법 재개정안의 신속한 처리를 요구하며 삭발을 했다. 당시 삭발을 지지한 이들은 철저한 이해관계에 놓인 사학법인 운영자들과 종교계 뿐이었다. 

 

2005년 노무현 정부는 사학법인의 투명성을 보장하고 비리를 막기 위해 ‘개방형 이사제’를 도입하고 배우자나 직계 존비속 등 가족이 교장으로 임명되는 것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은 사학법 개정을 추진한 바 있다. 개방형 이사제는 교내에서 이사를 선임할때 이사장이 전권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외부인사를 일부 임명해 중립성을 꾀하고자 한 제도였다. 

 

하지만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는 53일간 장외투쟁을 벌이며 반대에 나섰고, 나경원 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도 적극적으로 사학법 개정 저지에 뛰어들었다. 끝내 2007년 들어 사학법은 한나라당 입맛대로 재개정 됐는데, 2/3의 동의를 얻고 교육부 승인을 받으면 이사장의 가족이나 친인척도 총장에 임명될 수 있다는 내용을 담는 등 사실상 사학법인 내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긴 커녕 정당성이라는 절대반지를 쥐어주는 법안으로 재탄생하고 말았다.  

 

2007년 김충환‧이군현‧신상진 한나라당 의원의 삭발은 ‘한나라당표 사학법 재개정안’을 하루빨리 통과시켜 달라는 요구를 담은 삭발이었다. 당시 학생들보다는 사학법인 운영자들을 우선했던 이들의 삭발에 씁쓸한 시선이 쏟아진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2010년 류근찬·이상민 외 민주당 양승조 의원 대거 삭발

세종시를 둘러싼 논란…이명박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 반대하며 삭발 진행

 

2010년에 이뤄진 삭발은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세종시 수정안에 맞서 원안 관철을 위해 이뤄진 것으로, 류근찬·이상민·김낙성·임영호·김창수 의원과 민주당 양승조 의원 등 충청권 의원들이 대거 참여했다. 

 

당초 새로운 행정수도 건설을 위해 2006년 세종시를 제시한 이는 노무현 대통령이었다. 하지만 2010년 들어 이명박 정부는 세종시를 행정중심복합도시로 만들려던 노무현 정부의 원안을 거부하고 '경제도시'로 만들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이것이 세종시 수정안이었다. 

 

이에 야권의원들은 세종시와 관련해서는 원안대로 추진해야 한다며 이명박 정부의 수정안에 반대하고 나섰고, 여당을 상대로 가열찬 투쟁에 나섰다. 삭발을 시작으로 불붙은 반발은 10개월 상당 이어졌고 끝내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되면서 마무리됐다. 

 

#2013년 통합진보당 의원들 전원 삭발

‘정당해산 심판 청구’ 항의하며 삭발했지만 해산 못 피해

 

이처럼 특정 사안이나 정책 등을 둘러싸고 삭발이 이뤄진 것과 달리 정당이 아예 없어져서 반발하는 삭발도 있었다. 2013년 통합진보당 해산이 그것이다. 

 

2013년11월 정부는 헌법재판소에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심판을 청구했고, 이에 반발하면서 통합진보당 김선동·김재연·오병윤·김미희·이상규 의원 5명이 단체삭발을 감행했다. 하지만 이미 여론은 완전히 돌아선 상태였고, 해산을 막기는 역부족이었다. 의원들의 삭발에도 아무런 소득 없이 통진당은 해산 수순을 맞았다. 

 

아이러니하게도 통진당 해산 당시 법무부장관은 최근 삭발을 진행했던 황교안 대표였다. 삭발의 정치학이 돌고돌아 지금에까지 이른 양상이다. 

 

▲ 지난 16일 오후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삭발식을 진행하고 지지자들로부터 박수를 받고 있다. (사진=문화저널21 DB)

 

삭발에 담긴 뜻이 대의가 됐건, 개인의 이익이 됐건 바리캉으로 머리털을 잘라낸다는 행위는 시각적인 효과가 확실히 뛰어나다. 이 때문에 주로 노동계에서는 일반 국민들의 관심을 환기시키면서 동시에 갑에 대한 을의 저항을 보여주고자 삭발을 주도해왔다. 

 

노동계의 목소리를 많이 대변해주는 정의당에서도 “자신의 신체를 담보로 투쟁하는 것은 약자들이 최후에 하는 방법”이라며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삭발에 대해 ‘약자 코스프레가 가소롭다’고 맹비난한 바 있다.

 

하지만 2019년을 넘어선 지금, 삭발이라는 행위에 대해 대다수 국민들은 ‘쇼’ 그이상 그이하로도 보지 않고 있다. 어차피 머리카락은 잘라도 새로 자라나는데 그것이 보여주기 이상의 무슨 의미를 가지냐는 것이 다수 국민들의 여론이다. 더욱이 정치인들의 삭발에 ‘대의’가 보이지 않는다면 그 의미는 퇴색되기 마련이다. 

 

현재 자유한국당에서는 조국 법무부장관의 임명에 반발하며 릴레이 삭발을 예고했다. 그 덕분에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시작으로 이뤄져야하는 국회일정은 올스톱 됐고 당장 이번달 말로 예정된 ‘국정감사’ 역시도 원활한 운영에 적신호가 켜졌다. 그뿐만이 아니다. 현재 1만5000여건의 계류법안이 국회에서 잠자고 있으며, 의안처리율은 30% 정도 밖에 되지 않아 역대 최악의 상황을 면치 못하고 있다. 

 

최근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빗발치는 삭발요구에 대해 “투쟁이 갖고 있는 의미를 극대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종합적으로 판단할 것”이라며 유보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미 정치인들의 삭발이 희화화되고 진정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삭발을 한다는 것이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는 판단이 자리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치인들의 삭발이 희화화된 이유는 다른 곳에 있지 않고 의원들 스스로에게 있다. 본회의장에서 민생을 위해 발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국회가 해야할 일을 전부 내팽개친 채 삭발하겠다고 청와대 분수대로 앞다퉈 달려가는 모습이 투쟁의 수단인 삭발을 한낱 ‘블랙코미디’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지금 삭발의 정치학 속에서는 ‘투쟁’도 ‘저항정신’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문화저널21 박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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