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항준 칼럼] ‘시시비비(是是非非, 팩트체크)’의 함정

박항준 | 기사입력 2019/10/08 [11:52]

[박항준 칼럼] ‘시시비비(是是非非, 팩트체크)’의 함정

박항준 | 입력 : 2019/10/08 [11:52]

일부 정치인들은 왜 국민들을 개·돼지로 취급할까? 그것은 바로 국민들이 ‘사실’이라는 ‘팩트’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기 때문이다. 대개는 근본적인 잘잘못은 잊어버린 채 받아 쥔 당근에 족하며 금세 불만을 잠재우곤 한다. 

 

이슈로 다른 이슈를 덮어도 흥분하느라 진실이 가려지고, 가짜뉴스로 여론을 선동해도 먹힌다. 선거 전에 북한을 활용해 총풍사건을 일으키면 여론이 반전돼 선거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는 것도 먹힌다. 선거 때마다 지역감정을 유발해도 먹히고, 쓰레기 같은 삶을 살던 전과자가 영웅 코스프레를 하며 국회에 진출하는 것도 먹힌다. 

 

‘일희일비’는 시시비비(是是非非, 팩트체크)를 따지기에 일어나는 즉석 결과물이다. 팩트의 맞고 틀림을 따지다 보니 자신의 눈에 비치는 바에 따라 감정이 들쑥날쑥(일희일비)하게 된다. 

 

결과가 진실인지 아닌지는 정확하지도, 중요하지 않다. 시시비비를 따지는 과정에서 자기에게 유리하게 해석하고, 생각이 다른 이들과 패가 갈리며, 자기가 보고 듣고 경험한 내용만이 맞는다고 우기게 된다. 

 

국민이 팩트체크를 통해 시시비비를 따지면 따질수록 ‘일희일비’ 현상은 커진다. 결국 불완전한 사실(팩트)에 대한 인스턴트적인 반응이 일부 정치인이나 리더들로부터 개·돼지 취급을 받게 만드는 것이다. 

 

매주, 매일 벌어지는 지지도 조사는 ‘일희일비’하도록 국민을 선동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지지도의 변동 폭이 크면 클수록 그들은 우리 국민을 더 미개하게 볼 것이다. 지금 사회가 혼란한 것은 여야의 대립, 진보와 보수의 대립 때문만이 아니다. 

 

마치 진실인 것처럼 팩트라는 포장에 쌓인 미확인 정보들이 엄청난 수의 미디어들에 의해 양산되고, 여기에 가짜뉴스 메이커들이 불을 지르고 있다. 이에 우리들은 흥분하고, 화를 내며, 통쾌해하고 있다. 결국 본질을 잃어버리고 만다. 

 

팩트체크는 ‘판단’이라는 단어와 한 쌍을 이룬다. ‘판단’을 하는 이유는 우리가 불완전한 정보들로 어떠한 결론을 추론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몇 가지의 단서를 통한 퍼즐 맞추기식만으로 상상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다보니 ‘판단’할 수밖에 없다. 이 ‘판단’만으로 우리는 화를 내고, 칭찬하며, 흥분한다.      

 

정치인이나 유명인의 잘못, 개인적 실수, 과거 행동 하나 하나 등 모든 면에서 팩트체크를 통해 시시비비를 따지니 흠 없는 사람을 찾기 어렵게 되었다. 컴퓨터가 장관이 되고, AI가 대통령이 돼야 할 날이 머지않았다는 자조 섞인 얘기도 나온다. 향후 청문회를 조용히 통과할 수 있는 장관은 팔이 안으로 굽는 동료 국회의원밖에 없다. 

 

‘팩트체크-시시비비–일희일비’ 즉, 인스턴트적 반응으로 이어지는 이 프로세스는 아프고 배고파 우는 가축에 당근을 주면서 충성도를 높이게 훈련하는 가축조련 방식과 같은 맥락이다. 

 

성숙한 국민일수록 팩트체크보다는 본질체크가 필요하다. 그래야 정치인들이 국민을 어려워한다. 제2의 총풍, 제3의 가짜뉴스가 나오더라도 꿈쩍하지 않는 담대함이 필요하다. 클린턴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일으킨 엄청난 성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백악관 앞마당에서 수백만 명의 집회가 일어나지 않고, 불륜 대통령이 하야하지 않은 이유는 미 국민들이 팩트에 일희일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담대함을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본질체크’다. 본질체크는 추측과는 결이 다른 얘기다. 다양한 텍스트들의 본질을 찾아내는 행위다. 불완전한 퍼즐조각을 상상으로 맞추는 ‘추측’은 진실을 왜곡한다. 

 

다양한 목소리(주장, 텍스트)들을 분해하여 주요 본질을 찾아내고, 이 본질을 상호 동의하는 조건으로 만들어진 융합형 텍스트 즉, ‘하이퍼텍스트’가 만들어야져야 한다. 우리 사회 갈등 해결의 실마리가 바로 ‘하이퍼텍스트’다. 성숙한 대한민국을 위해 이제 우리가 고민해야 할 숙제이며, 과제다. 

 

박항준 세한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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