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5·18, 광주민중항쟁의 발포명령자 규명…현대사 마지막 숙제

전두환만이 5·18 당시 발포명령 내릴 수 있었던 당시의 권력 구도

최병국 기자 | 기사입력 2019/10/16 [23:09]

[시선] 5·18, 광주민중항쟁의 발포명령자 규명…현대사 마지막 숙제

전두환만이 5·18 당시 발포명령 내릴 수 있었던 당시의 권력 구도

최병국 기자 | 입력 : 2019/10/16 [23:09]

1945년 8월 15일 해방이후 제주 4. 3 사건, 여순반란사건(여순항쟁, 여수·순천사전, 이하 여순사건), 대구 10월 폭동, 거창 양민학살 사건 등이 발생했으나 대부분 진상규명되어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유독 1980. 5. 18. 광주민중항쟁 발표명령권자 규명만이 미궁에 빠져 있다. 광주지검은 이를 지속 수사하여 발표명령자를 밝혀내야하며, 전두환 전 대통령은 사실을 자백하여 현대사의 마지막 응어리를 풀어야 한다. 

 

5. 17. 비상계엄확대조치로 정권을 완전 장악한 전두환만이 5. 18. 광주민중항쟁에 대해 발포명령을 내릴 수 있었던 당시의 권력 구도 

 

1945년 8월 해방이후 1946년 10월 좌익 폭동의 대구 10.1 사태, 1948년 4월 3일에 발생한 제주 4.3 사태, 1948년 10월 19일 발생한 여순사건, 1951년 2월 발생한 거창양만학살 사태 등은 해방정국의 좌·우익 대립과정에서 양민들이 대량으로 희생(살상)된 빚어진 비극적 사태였다. 그러나 현재 모두 상황이 정리되어 국가 또는 관련단체에서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 위치한 전두환 씨 자택    (사진 = 문화저널21 DB / 자료사진)

 

이해 반해, 1980년 광주에서 벌어진 민중항쟁은 오랫동안 ‘광주사태’ 등으로 지칭되다가, 김영삼 정부 출범 후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공식 정리되었고, 나아가 12. 12. 군사반란을 일으킨 전두환, 노태우 등을 역사적으로 단죄하기는 했으나, 시민을 사살케 한 발표자는 규명하지 못해 현대사의 마지막 숙제로 남아 있다.

 

1979년 10·26. 사태 후, 12·12. 군사반란으로 군권을 장악한 전두환의 신군부 세력들은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 전국 확대' '국회 해산' '비상기구 설치' 등이  핵심인 시국수습방안을 통과시켜 전두환 집권시대를 개막시켰다. 더하여 위 비상시국에서 전두환은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상임위원장에 취임함으로서 초법적인 존재로 등장했다. 헌장중단을 통한 전두환의 (불법)집권이 완성된 것이다. 

 

이런 폭압적인 헌정중단 조치에 저항하는 자발적인 민중항쟁이 다음날(18일) 광주에서 발생했고, 27일 새벽 ‘상무충정작전’이 하달되어, 25,000명의 계엄군이 투입되어 시민군들을 무력 진압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생명이 희생됐다.

 

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 상황이 연출되었다. 과연 선량한 시민을 무차별 살상케 한 5.18 민중항쟁에 대한 진압명령을 대체 누가 내렸단 말인가. 이에 대해 아직도 명쾌하게 규명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현대사의 마지막 응어리다.

 

솔직히, 당시의 정권을 완전 장악한 전두환 만이 광주민중항쟁에 대해 발포명령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이 명백하다. 그러나 당시 상황을 알고 있을 최규하 대통령의 침묵 및 전두환의 광주행에 대한 완강한 부인과 관련자료 확보실패, 관련자(정호용, 이학봉 등)들의 강변 등으로 발포명령자 진상규명은 실패했다. 

 

광주민중항쟁 40년을 바라보는 지금에서야 관련자들의 증언 등으로 전두환의 광주행과 발포(사살)명령을 입증시킬 증거들이 나오고 있는 중이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당시 전두환의 광주행을 목격한 김용장, 허장환씨, 오원기 및 기타 관련자들의 증언 및 진술이 쏟아지고 있다. 역사의 숙제로 넘겨진 5. 18  발포명령자 규명이란 기대가 피어오르고 있다.

 

내년 40주기에는 5월 영령들에게 진상규명 헌사 해야

관련자들의 용기 있는 증언과, 전두환의 발포명령 고백이 마땅

 

5·18. 광주민주항쟁 사살명령자 규명은 광주지검에서 현재까지 지칠 줄 모르고 진행하고 있다. 광주지검은 역사적 사명감에 입각하여 김용장, 허장환, 오원기 씨의 진술청취는 물론 증언과 광주 5. 18. 기념문화센터의 협조로 수많은 참고인들로부터 진술을 청취하면서 전두환의 발포를 입증시킬 자료수집에 노력을 다하고 있다.

 

더하여 5. 18. 광주민주항쟁 제압을 위한 헬기사격 목격자 10여명에 대해서는 이미 조사하여 전두환의 발표명령을 입체적으로 중명하기 위해 노력하는 상황이다. 헬기사격에 대해서는 이미 관련자 증언 등을 기초로 전두환을 기소한 상황이다. 

 

중대한 역사의 변곡점이 다시 도래하고 있다. 1980년 5월 21일 오전 용산 헬기장서 서울 공군 706보안부대장의 배웅을 받은 후, 진청색 귀빈용 특별 헬기를 타고 12:55경 광주 제1전투비행단(K-57)에 도착한 전두환은 도착하자마자 정호용 특전사령관과 회합한 사실이 이미 증언되어 있다. 전두환의 광주행 입증할 수 있는 결정적 증거다.

 

이제 전두환의 명암(明暗)은 종결해야…역사는 물결 따라 도도히 흘러

 

5·18 광주민주화 항쟁 진압과 관련, 이제 관련자들은 용기 있게 증언하고, 전두환은 역사 앞에 고백해야 한다. 5·18. 민주항쟁의 역사적 정리를 위해 서울 공군 706보안부대장과 전두환이 탑승한 진청색 귀빈용 헬기를 운행한 조종사 등은 전두환의 광주행을 용기 있게 증언해야한다.

 

모든 것은 끝난 상황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순 없다. 무력진압 목적이 아니었다면 합수본부장 겸 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이 왜 극비리에 광주에 갔단 말인가. 그리고 5·21. 광주현장 방문 후 일사천리로 작전 지시가 하달되었고, 1만 여발의 총탄을 발사하여 항쟁을 무력으로 진압(상무충정작전)하지 않았는가. 당시 유일 실력자였던 전두환 보안사령관 외 누가 발포명령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전두환이 발포명령자임은 구체적으로 이미 밝혀진 상황이다. 이제라도 한 시대 대통령까지 역임한 전두환 전 대통령은 광주행과 발포(사살)명령 등을 고백하여 국민들로부터 진정한 용서를 받아야 한다. 국민들은 관련자들의 증언과 고백을 통한 진상규명만을 갈구할 뿐이다.

 

모든 상황은 정리되어 가고 있다. 이제 전두환 전 대통령이 5. 18 광주민중항쟁에 대한 발표명령자임을 겸허히 인정하여 굴곡의 얼룩진 시대를 종결해야 한다. 

 

시대는 역사는 물결 따라 모든 것을 집어 삼키면서 도도히 흐른다. 모두가 역사 앞에 겸손하면서 시대의 난제에 소명을 다할 때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5. 18 발포 명령자임을 고백하여 시대의 마지막 갈등과 아픔을 풀어야 한다. 광주 민중 항쟁 40주년을 바라보는 역사의 전환점에 국민들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자기고백을 지켜보고 있다.

 

문화저널21 최병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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