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서민생존헌장 / 하린

서대선 | 기사입력 2019/10/28 [09:25]

[이 아침의 시] 서민생존헌장 / 하린

서대선 | 입력 : 2019/10/28 [09:25]

서민생존헌장

 

나는 자본주의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띄고

서민으로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가난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신용불량자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약소국 공영에 이바지할 때다.

이에, 우리의 나아갈 바를 밝혀 생존의 지표로 삼는다.

성실한 출근과 육체로

저임금 기술을 배우고 익히며,

타고난 저마다의 출신을 계산하여,

우리의 처지를 약진의 발판으로 삼아,

기초수급자의 힘과 월세의 정신을 기른다.

번영과 질서를 앞세우며 일당과 시급을 숭상하고,

비정규직과 아르바이트에 뿌리박은 상부상조의 전

통을 이어받아,

명랑하고 따뜻한 헝그리 정신을 북돋운다.

우리의 창의와 협력을 바탕으로 대기업이 발전하며,

부유층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지름길임을 깨달아,

하청에 하청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여

스스로 잔업전선에 참여하고 월차를 반납하는 정

신을 드높인다.

부자를 위한 투철한 시다바리 따까리가 우리의 삶

의 방식이며,

신념과 긍지를 지닌 근면한 서민으로서,

조상의 궁핍을 모아 줄기찬 노력으로,

새 빈민을 창조하자.

 

           *1968년에 선포된「국민교육헌장」패러디 

 

# 그 분들은 모두 어디에 있을까? 선거철만 되면 점퍼차림에 운동화로 서민 코스프레를 하고 “서민들의 생존” 현장에 모습을 드러내고는 웃음을 흘리고,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고, 겸손을 다한 목소리로 서민들의 눈이 되고, 귀가 되고, 입이 되고, 손과 발이 되겠다며 머리를 조아렸었다. 서민들은 잠간 아주 잠간 무지개라도 본 듯, 두 손을 맞잡고 고개를 주억이며, 가슴 벅차게 희망 같은 것에 자신의 소중한 l한 표를 걸었었다.   

 

그 분들은 지금 “서민 생존” 현장에서 그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서민들의 눈과 귀와 입과 손과 발이 되겠다던 분들은 금배지 차고 떠나서는 다음 선거철까지 서민들을 까맣게 잊고 지내는 것은 아닐까? 왜 여전히 서민들은 점점 치솟기만 하는 전세와 월세를 전전하고, “비정규직과 아르바이트”의 삶에서 허덕이고 있는 것일까? “하청에 하청”으로 따낸 산업현장에서 생계를 유지하기도 버거운 임금이라도 벌려고 “스스로 잔업전선에 참여하고 월차를 반납” 하면서 까지 일하다 쓰러져도 누구도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 걸까?

 

서민들은 “자본주의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띄고” 태어나”, “조상의 빛난 가난을 오늘에 되살려” 더더욱 고착화된 계층화 속에서 “부자를 위한 투철한 시다바리 따까리가” 되어 “새 빈민”으로 추락하고 있는 것만 같은데, 서민을 위하겠다던 그 분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