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즐거운 식사 / 조동범

서대선 | 기사입력 2019/11/04 [08:28]

[이 아침의 시] 즐거운 식사 / 조동범

서대선 | 입력 : 2019/11/04 [08:28]

즐거운 식사

 

그녀는 능숙하게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뜨거운 물을 붓고 창 밖에 시선을 던진 채 그녀는

건조한 평일 오전을 바라보고 있다

무표정하게 즐거운 식사를 기다리는 삼 분 동안 그녀는 

서류뭉치처럼 단단하게 묶인 일상을 떠올린다

흘러내린 스타킹처럼 구름이 흘러가고

편의점에는 경쾌한 음악이 펼쳐진다

즐거운 식사가 도열해 있는 화사한 편의점

그녀는 건조한 평일 오전에 걸터앉아

즐거운 식사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그녀는 퉁퉁 불은 면발을 넘기며

하루 동안 견뎌야 할 중력을 가늠해 본다

한 컵의 뜨거움, 수증기를 만들어 그녀의 얼굴을 가린다

컵라면을 먹다 말고 그녀는

국물 위에 둥둥 떠 있는 채소를 바라본다

이제는 말라, 제대로 썩는 법조차 잃어버린 

건조한 평일 오전의 채소

그녀는 우걱우걱 즐거운 식사를 하고 있는 중이다

나무처럼 단단히 박혀

어느 곳으로도 가지 못하고

 

# ‘조물조물’이란 말을 조근조근 씹으면, 고소한 참기름과 깨소금과 파와 마늘과 생강과 집 간장이나 고추장이 알맞게 섞인 나물이 어머니 손끝에서 버무려지던 모습에 군침이 돈다. 하얀 행주치마의 끈이 살짝살짝 흔들리며 나물을 ‘조물조물’ 무치시던 어머니께서 맛보라며 입 속에 넣어주던 나물 한 입의 맛은 사랑의 다른 이름이기도 했다.

 

"즐거운 식사가 도열해 있는 화사한 편의점"에서 혼자 해결하는 식사는 편해 보이지만 즐거워 보이지는 않는다. “삼 분을” 기다린 후 무표정하게 “퉁퉁불은 면발을 넘기며/하루 동안 견뎌야 할 중력을 가늠해” 가며, “우걱우걱” 먹고 있는 기능적인 식사 속에는 인간의 일차적 욕구인 식욕마저도 시간과 노동과 저임금에 저당 잡혀 있는 것만 같다. 

 

온 가족이 둘러 앉아 엄마의 손맛 가득한 집 밥을 먹으며 ‘밥상머리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은 누구한테 빼앗긴 것일까. 허기를 때우려 편의점에 진열된 도시락들 중 하나를 고르려고 할 때마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음식들 속에 ‘조물조물’ 무쳐 알맞게 간이 밴 ‘엄마표’ 나물은 기대 할 수 없다. “삼 분만” 기다리면 되는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고 바싹 건조된 야채 몇 조각을 라면 국물 속에 떨어뜨리면, 이명과 미세먼지와 소음 속에서 어디로도 떠나지 못하는 편의점 앞 도로변 가로수에서 떨어진 낙엽들이 “제대로 썩는 법조차 잃어버린” 이방인의 외로움처럼 늦가을 도로 바닥 위에 웅크리고 있다.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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