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섭의 복싱 스토리] 영주 대한복싱전용훈련장에 모인 복서들

소백산이 병풍처럼 펼쳐진 영주시에 위치한 대한복싱전용훈련장

조영섭 기자 | 기사입력 2019/11/15 [17:18]

[조영섭의 복싱 스토리] 영주 대한복싱전용훈련장에 모인 복서들

소백산이 병풍처럼 펼쳐진 영주시에 위치한 대한복싱전용훈련장

조영섭 기자 | 입력 : 2019/11/15 [17:18]

지난6일, 경북 영주에서 문을 연 대한복싱전용훈련장 개장기념식에 영주시청 백낙춘 감독의 초청을 받고 문성길, 백인철 두 챔프를 비롯해 암사동에서 캡틴체육관과 유원대 복싱부 코치를 겸직하고 있는 이동포 관장과 함께 목적지인 영주로 향했다. 

 

소백산이 병풍처럼 펼쳐진 영주시에 위치한 대한복싱전용훈련장

 

그곳에 도착해 만난 이 고장 출신의 IBF 미니 플라이급 챔피언 이경연 관장에게 던진 기자의 첫 질문은 ‘이곳에서 영월이 어디쯤에 있나’였다. 이 관장은 손으로 산을 가리키며, “저 고개(고치령)만 넘으면 영월”이라 알려줬다. 기자는 역사에 관심이 많은데, 영월은 세조에 의해 노산군으로 강등된 단종이 유폐된 곳이고, 영주(당시 순흥)는 정권을 찬탈한 수양대군의 친동생인 금성대군이 유배된 고장이기에 관심을 갖고 던진 질문이었다. 영월에서 고립된 생활을 하는 조카 단종 생각에 고치령 고개를 바라보는 숙부 금성대군은 솟구치는 분노를 억누룰 수  없었으리라. 극악무도한 세조는 정권을 찬탈 하기위해 수백 명을 살육함도 모자라 자신의 친형제와 과 조카마저 죽였다.

 

세조의 할아버지 태종은 이복형제는 죽였어도 동복형제는 죽이지 않은 것을 상기하면 세조는 잔인한 군주라 할 것이다. 이런 세조가 권좌에 올라 51년의(50년 10개월21일) 삶도 채우지 못한체 유명을 달리했다. 재위기간도 불과 13년 2개월 27일(4838일) 권좌에 있었는데 권불십년(權不十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란 말이 맞는 말 같다. 세조의 두 아들도 20세를 넘기지 못하고 각종 우환으로 비명횡사 했고 한명회의 딸인 며느리도 원자를 출산한지 5일 만에 사망했으며, 딸(의석공주)도 37세에 명을 다하는 등 줄초상이라해도 과언이 아닐 액운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 세조는 큰 충격을 받았고 자신이 죽인 원혼들의 저주에 시달리는 등 한평생 공포의 그림자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다가 결국 황천길을 떠난걸 보면, 인과응보(因果應報), 자업자득(自業自得), 자승자박(自繩自縛)이란 문자의 교훈을 얻는다.

 

(좌로부터) 문성길, 신준섭, 백인철 챔프와 이동포 관장 (사진=조영섭 기자)

 

홍수환, 문성길, 최점환, 신준섭, 이경연, 백인철 등 대거 참석

 

소백산이 병풍처럼 펼쳐진 영주시에 위치한 대한복싱전용훈련장은 전액100억원의 국민체육 진흥기금으로 설립된 복싱 전용 훈련장으로 영주시 장윤석 국회의원(3선)이 모태가 되어 조력자 백낙춘 감독과 이주환 영주복싱 회장이 트라이앵글을 구축해 2016년에 착공 2018년 준공한 국내 최초의 복싱 전용 경기장이다. 

 

개장 기념식에는 그 의미에 걸맞게 홍수환, 문성길, 최점환, 신준섭, 이경연, 백인철, 김광선, 한순철, 고생근 등 유명 복서들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홍 회장은 인사말에서 아마복싱에서 1억 원짜리 선수가 프로에 진입하면 10억을 호가하는 선수로 도약을 해야 하는데 그런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은 국내복싱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84년 11월 16일 미국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당시 LA올림픽에 참가했던 미국의 6명의 메달리스들인 멕드릭 테일러(페더급), 퍼넬 휘테커(라이트급), 마크 브릴랜드(웰터급), 에반더 홀리필드(라이트 헤비급), 비질 힐(미들급), 티렐 빅스(슈퍼 헤비급) 등 6명이 6회전 대뷔전 경기를 펼쳤는데 이들에게 지급된 계약금만 총 80억 원을 상회했으니 홍 회장 말을 방증한다 할 것이다.

 

올해 70세인 한국 복싱에 상징적인 아이콘 홍 회장은 10년전 최요삼 사후 권투인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한국복싱의 수장으로 임명 되었지만, 그동안 잦은 파열음이 발생하며 난항을 겪으면서 순탄치 않은 행보를 거듭해 왔었다. 일본에선 3체급 석권 복서가 탄생하는 등 7~8명의 세계챔피언이 현존하는 이 시대에 그들과 견줘보면 한국복싱은 참혹함 그 자체라 말할 수 있다. 이제 한국복싱도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면서 구조조정을 해야 할 때가 임박한듯하다.   

 

WBC 스트로급 등 2체급을 석권한 최점환 챔프

 

주변을 배회하다 많은 복서들을 만날 수 있었다. 특히 반가웠던 사람은 IBF 라이트 플라이급과 WBC 스트로급 등 2체급을 석권한 최점환 챔프였다.  

 

(좌로부터) 두체급 챔피언 최점환챔프와 이경연챔프 (사진=조영섭 기자)

 

1980년 경주상고 1학년 때 코크급에서 혜성처럼 나타난 그는 4월 전국 신인선수권과 5월 김명복배를 연달아 석권했는데 특히 김명복배 결승에서 허영모(순천 금당고)를 꺽고 올라온 김종옥(성남 성일고)을 현란한 연타를 뿜어내며 제압한 경기는 압권이었다. 급기야 최점환은 그해 9월 아프리카 케냐에서 대체 올림픽의 일환으로 벌어진 국제경기에 전격 국가대표로 발탁되었고, 10월 전국체전에서도 난적 허영모를 한 템포 빠른 공격으로 판정승을 거두면서 그해 4관왕과 함께 모두 최우수 복서로 선정되며 한국복싱의 미래로 불려졌다. 

 

당시 유명우와 장정구의 강점을 혼합해 놓은 듯한 최점환의 경기를 회상해보면 활과 창으로 전쟁하던 시절 홀로 총을 들고 나타난 것처럼 일방적으로 상대를 제압하며 연승 퍼레이드를 펼쳤던 그야말로 천하무적 이었다 

 

마치 일본 전국시대 때 나가시노 전투에서, 당시 최신병기였던 조총을 활용하여 활과 창으로 무장한 다케다 가쓰요리( 武田勝賴) 군대를 물리치며 전국통일의 밑거름을 닦은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가 연상될 만큼 그는 일당백 그 자체였다.  

 

▲ (좌로부터) 이주환 영주복싱 회장, 홍수환 KBC회장, 조철제 원로회 회장 (사진=조영섭 기자)

 

하지만 81년 김명복배 결승에서 최점환은 허영모에게 패하며 꽃도 일찍 피면 일찍 시든다는 말처럼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다. 이후 오광수(전남체고) 와 박제석(웅비)은 물론 기자와도 로마 월드컵 준결승에서 맞붙은 적이 있던 최천섭(경상공고ㅡ경남대)에게 마저 대통령배에서 패하면서 정체현상이 일어난다. 역으로 허영모는 세계선수권 월드컵을 통해 세계적인 복서반열에 진입하면서 양 선수는 묘한 희비 쌍곡선을 그린다.    

 

스피드, 순발력, 유연성을 겸비한 최점환의 복싱 스킬은 박찬희에 비견될 정도로 하이테크 였지만 노력이 2% 부족한 전형적인 천재복서로 보였다. 결국 8부 능선에서 하산을 감행, 83년 프로에 데뷔하며 재도약을 시도한다. 

 

그는 임하식과 파스쿠아(필리핀)란 난적을 꺽으며 11연승을 올린 후 세계랭킹에 진입, 84년 11월 페날로사(필리핀)에게 IBF 라이트 플라이급 타이틀에 도전, 쓴잔을 들이켰지만 86년 12월, 88체육관 박조운을 한수 위의 기량으로 제압하며 페날로사가 반납한 IBF 라이트 플라이급 정상에 올라 우리나라는 WBC 라이트 플라이급(장정구), WBA 라이트 플라이급(유명우)에 이어 세계 3대 복싱기구 라이트 플라이급 챔피언을 모두 차지하는 진기록을 세운다. 

 

▲ (좌로부터) 백낙춘 영주시청 감독, 장윤석 전 대한복싱협회 회장, 이경연 챔프 (사진=조영섭 기자) 

 

4차 방어에서 벨트를 푼 최점환은 89년 11월 나파 카트완차이와 WBC 스트로급 타이틀 매치에서 12회 KO승을 거두면서 홍수환에 이어 2체급 챔피언에 올랐다. 카트완차이는 유명우와 1승 1패를 기록한 이오까와 원정 3연전에서 2승1무를 기록한 실력파였지만 최점환의 초토화 공격에 맥없이 허물어지고 말았다. 카트완차이는 당시 이경연이 89년 1월 먼저 대결을 하기로 계약을 했지만 이경연의 불의의 부상으로 결렬되면서 최점환에게 바통이 넘어와 정상에 올랐다. 

 

같이 동석한 이경연 챔프는 아마추어시절 경북대표 선발전 등에서 최점환과 자웅을 겨뤘고, 양선수 프로전적이 나란히 23전 20승(8KO승) 3패로 같은 전적에 같은 체급의 세계챔피언 이었다는 묘한 공통점이 있는 복서다. 최점환은 현재 김해시청에 근무하고 있다. 

 

한편, 한국 아마복싱계의 영웅 김광선 챔프와 오종서 대한복싱 협회 심판위원, 그리고 대선배들 옆에 다소곳한 모습의 한순철 서울시청 부감독의 모습도 보였다. 

 

김광선은 아마복싱 사상 무수히 많은 별들 중 가장 빛나는 별 중의 하나다. 그는 83년 10월 로마월드컵 결승에서 소련의 에스자노프에게 판정승하며 정부수립 후 최초의 세계대회 금메달을 획득한 국내 아마복싱계의 상징적인 복서다 에스자노프는 올림픽 월드컵 세계선수권을 차례로 정복한 무스타 포프(불가리아)를 제압한 강자였다. 김광선은 87년 유고월드컵 결승에서 쿠바의 레갈라도에 완승을 거두고 금메달을 획득했는데, 레갈라도는 83년 로마월드컵 플라이급 결승에서 허영모를 꺽고 우승한 자국의 레예스를 누르고 쿠바 대표에 발탁된 세계적인 복서였다. 

 

(좌로부터) 오종서 심판위원, 김광선 챔프, 한순철 서울시청 부감독 (사진=조영섭 기자)

 

90년 프로로 전향한 그는 92년 6월  6전만에 초고속으로 WBC라이트 플라이급 챔피언 움베르토 곤잘레스(멕시코)에게 도전했지만 최종회에서 역전 KO패로 무너지며 아쉬움을 삼켰다. 만일 정상에 올랐다면 동양최초이자 세계적으로는 18번째 아마·프로 동시석권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면서 복싱계에 신화나 전설로 남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지만 아쉽게도 거기까지였다.  

 

한순철은 2006년 카타르아시안게임부터 시작해 2008년 북경올림픽,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2012년 런던올림픽,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등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을 무려 5회 연속출전한 대기록을 보유한 스타복서다. 한번 반짝 일수는 있지만 오랫동안 빛나기는 힘든 그 긴 여정을 잘 인내하고 극복하면서 성취했는데 특히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값진 은메달(라이트급)을 획득, 국위를 선양했다. 

 

오종서(용인대) 심판위원은 83년 광주 대통령배에서 전남대표 문성길과 익사이팅한 파이팅을 펼쳐 주목을 받았던 복서였다. 기자가 현장에서 직관한 바로는 오종서의 손이 올라가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팽팽한 대접전 이었다. 경기 후 라커룸에서 분함을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던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오종서는 그 후 기자가 운동하던 88체육관에서 조종득 용인대 조교의 인솔아래 김진표, 백승영 등과 함께 스파링을 하다가 심영자 회장의 러브콜을 받고 프로 행을 타진 받았을 만큼 체력과 펀치력이 발군인 파이터였다. 

 

지나간 추억은 아름답다. 설혹 잊을 수 없는 모멸감 속에 쌓인 지난 좌절의 쓰라림도 되돌아보는 순간만큼은 감미롭다. 그들이 걸어갔던 현역시절 발자취의  흔적을 더듬으며 링 위에서 펼쳤던 활약상을 재조명해 보면서 그때 그시절 그추억을 사마천이 사기(史記)를 작성하는 심정으로 기록으로 남겨, 잊혀진 복서 들을  새롭게 부활시켜 보려한다. 한국복싱이 일어서는 그날 그 순간까지. 

 

조영섭

문화저널21 복싱전문기자

 

현) 서울복싱연맹 부회장

현) 문성길복싱클럽 관장 

 

 

전) 82년 로마월드컵 대표선발전 플라이급 우승

베냐민 19/11/15 [18:26] 수정 삭제  
  늘 멋진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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