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항준 칼럼] 사상(思想)에 대한 정명(正名)

박항준 | 기사입력 2019/11/19 [14:40]

[박항준 칼럼] 사상(思想)에 대한 정명(正名)

박항준 | 입력 : 2019/11/19 [14:40]

역사와 전통이 깊고 표현이 다양한 한글(말)은 그래서인지 국어사전에 각 단어가 다소 무책임하게 풀이되어 있다. 특히 개념적 정의에 치우쳐있어 실천적 정의를 간과하고 있다. 

 

예를 들어 사전에서 ‘사상(思想)’이라는 단어를 살펴보자. ‘어떠한 사물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구체적인 사고나 생각을 사상’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인간들이 생활하면서 지니게 되는 세계관을 총칭해서 부르는 역동적인 개념이 사상이다. 사상의 한자를 살펴보면 생각 ‘사(思)’, 생각 ‘상(想)’이 결합된 말이다. 뜬금없는 생각과 생각의 연속이다. 사전적으로 보면 ‘사상’은 멋진 것이고, 신념과 연결되어 절대 양보와 타협이 없어야 하는 내 세계관으로 느껴진다. 

 

그런데 사상의 한자 개념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금 다른 개념이 도출된다. 생각 '사(思)'자는 뇌(田)에서 나오는 내 마음(心) 즉 내 Text다. 내 생각인 것이다. 이 내 생각(text)과 타자의 생각(text) 간 서로(相)의 마음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마음이 생각 ‘상(想)’이다. 서로 간의 담론(談論)을 거쳐 하나의 생각으로 정리하는 방식이 생각 ‘상(想)’이란 의미다.     

 

결국 사상(思想)이란 자신의 텍스트(語, 생각)를 여러 사람들의 텍스트와의 본질적 담론(談論, 콘텍스팅)을 거쳐 질서 있게 이론(論, 하이퍼텍스트)을 만드는 것이 ‘사상(思想)’이어야 한다는 말로 재해석된다. 

 

내가 읽은 책으로, 내가 본 영화로, 내 경험을 거쳐 만들어진 개인적인 신념이 그대로 ‘사상(思想)’이 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접근이다. 아무리 멋져 보여도, 아무리 옳아 보여도 검증되지 않은 ‘사상(思想)’은 위험한 폭탄이 된다. 한국의 역대 대통령들이 그랬고, 히틀러가 그랬다. 일본의 동북아공정론이라는 ‘사상(思想)’이 세계를 잿더미로 만들었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사상(思想)’을 만든다는 말은 내 텍스트를 남의 텍스트와 결합하여 질서 있는 이론을 만드는 것이다. 또한 사상(思想)이 바꾸어지려면 내 생각에 대한 혁신을 이루어야 한다. 어느 누구와도 자신과 의견이 다른 이들과의 담론(談論)을 거쳐 갈고닦아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사상(思想)이다. 

 

공자는 ‘유붕이 자원방래 불역락호’라 하여 나와 생각이 다른 이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게 가장 기쁜 일이라고 하지 않았는가?(아마도 생각이 다른 야당을 설득해야 하는 대통령이나 여당이 가장 바라는 일일 것이다.) 국어사전에는 없는 이 담론(談論)의 알고리즘을 우리는 ‘실천철학’이라고 한다. 한글에 실천철학을 담자고 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리하면 ‘사상(思想)’의 개념적 정의는 ‘어떠한 사물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구체적인 사고나 생각’으로 정의되나, 실천적 정의는 ‘자신의 생각(語, text)을 여러 사람들의 텍스트와의 본질적 담(談, 콘텍스팅)을 거쳐 질서 있는 론(論, 하이퍼텍스트)을 만드는 것’이다. 이를 가장 중요시했던 이가 바로 공자다. 논어의 모든 문장 구조가 학이편 1장부터 이렇게 구성되어 있다. 

 

이 스승의 뜻을 이어받아 제자가 공자의 어록을 편집한 책이 바로 ‘논(論)어(語)’다. 다만, 논어에서 ‘담(談)’자가 생략되었기에 우매한 후손들은 자신들의 텍스트(생각, 사상, 원칙)가 곧 이론(사회정의, 상식, 신념)이 되어야 한다고 고집 피우는 오해가 있었을 뿐이다. 

 

공자 사후 2500년이 지난 지금이라도 공자가 말한 실천 알고리즘을 명확히 해야 한다. 아니 필요하다면 ‘논어(論語)’라는 책 제목을 감히 ‘논담어(論談語)’로 바꿔서라도 텍스트 간 사회적 합의과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 노력이 텍스트 간 갈등으로 혼탁해진 우리 사회를 발전시키기 위한 우리들의 숙제임을 명심하자.

 

박항준 세한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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