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무능, 기업의 버티기에 버려진 ‘주52시간’

“시간 더 달라” 아우성만 치다 또 허송세월 보낼 판

성상영 기자 | 기사입력 2019/11/25 [14:46]

정부의 무능, 기업의 버티기에 버려진 ‘주52시간’

“시간 더 달라” 아우성만 치다 또 허송세월 보낼 판

성상영 기자 | 입력 : 2019/11/25 [14:46]

정부가 지난 18일 주52시간제 보완대책을 발표했다. 탄력근로제 확대 등 보완 입법이 이뤄지지 않으면 계도기간을 둬서 단속을 유예하겠다는 게 정부 대책의 골자다. 노동계를 비롯한 일각에서는 노동시간 단축 공약을 사실상 폐기했다는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지난해 7월 공공기관과 300인 이상 기업에 시행된 주52시간 상한제가 내년 11일부터는 50인 이상 300인 미만 기업에까지 확대된다. 주당 노동시간이 52시간으로 제한되면 특례업종을 제외한 사업장에서는 1주일(7) 동안 휴일·연장근로를 12시간만 시킬 수 있다.

 

© 이미지스톡(Image Stock), 신광식 기자

 

◇ 단속 늦추고 특별연장근로 허용… 노동계 반발

 

정부의 보완대책은 크게 세 가지 정도로 요약된다. 우선 내년 1월부터 법이 적용되더라도 계도기간을 둔다. 지난해 300인 이상 기업의 사례를 생각했을 때 9개월 정도 단속을 유예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리고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구인난 완화를 위해 외국인 고용 한도를 완화하고, 신규채용 기업 지원과 컨설팅 지원을 늘린다.

 

특별연장근로 요건도 완화키로 했다. 특별연장근로는 일주일에 12시간을 초과하는 연장근로를 예외적으로 가능케 한 제도다. 현행 근로기준법 시행규칙은 특별연장근로를 재난 및 이에 준하는 사고가 발생한 때에만 고용노동부 장관 인가를 받아 허용토록 한다. 여기에 경영상 사유를 추가해 일시적인 업무량 급증에 대응하게끔 한다는 것이다.

 

노동계는 즉각 반발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18일 성명을 내고 시행 한 달을 앞두고 정부가 계도기간을 꺼내 든 것은 스스로 제 역할을 하지 못했음을 시인하는 것이라며 정부가 스스로 무능함을 인정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도 같은 날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래 노동기본권 개선을 위해 즉각적인 행정조치를 취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최저임금 1만원 포기에 이어 노동시간 단축마저 포기한 문재인 정부의 노동 절망 정책에 분노한다고 성토했다.

 

이번 보완대책의 배경에 대해 정부는 중소기업의 여력이 부족하고 불확실성과 불안감이 크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설문조사와 현장 간담회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한 결과라고 했다. 고용노동부가 50~299인 기업 130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으로 주52시간제 시행 준비를 마친 곳은 61%였다. 31.8%는 준비 중이라고 답했고, 7.2%는 준비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어렵다고 하면 다 된다? 기업의 못된 버릇

 

비슷한 시기에 진행된 설문 역시 다수의 기업이 주52시간제 시행을 준비 중이거나 그렇지 못하다는 결론을 냈다. 지난달 24일 중소기업중앙회(중기중앙회) 설문 결과 내년에 법을 적용받는 중소기업 500곳 중 58.4%는 준비 중, 7.4%는 준비할 여건이 안 된다고 응답했다. 특히 준비 중인 업체의 51.7%는 연말까지 시간이 충분하지 못하다고 말했다. 조사대상 기업의 58.4%는 주52시간제 시행을 유예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보다 앞선 지난 6월 한국경제신문이 내년 법 적용 대상 기업 118곳을 상대로 자체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에 따르면 77(65.2%)손도 못 대고 있다고 말했다. 준비가 잘 된다는 기업은 11.9%(14)에 불과했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보완책이 필요한지와 관련해서는 75(63.6%)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주52시간제를 적용하기 어렵다고 했다.

 

준비가 안 됐다’, ‘어렵다는 기업의 단골 레퍼토리다. 지난해 7월 취업포털 인크루트 설문 결과에서도 조사대상(351) 39.2%가 주52시간제 준비가 미흡하다고 했고, 22.9%는 전혀 준비가 안 돼 있다고 했다. 그해 3월 조선경제는 기업 연구소를 가진 국내 기업 157곳의 최고기술책임자(CTO)에게 비슷한 질문을 했는데, 응답자의 77.7%근로시간 단축으로 경영이 차질을 빚을 것이라고 했다. 훨씬 앞선 20144월에는 인건비 증가(28.7%)와 공장 가동률 저하(21.8%), 구인난 심화(16.2%) 등이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기업의 애로사항이라는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와 중기중앙회의 설문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10년째 준비만 하고 있다는 얘기다.

 

◇ 정부도 헷갈리는 1800시간 목표, 학습된 변명

 

정부는 명확한 전망을 내놓지 못한 채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당시 임기 내(2022)에 연간 노동시간을 1800시간대로 단축하겠다고 약속했다. 올해 2월 발표한 2차 사회보장 기본계획에서는 그 시점이 2023년까지로 슬쩍 바뀌었다. 고용노동부 측에 문의한 결과 나중에 나온 것으로(2023년이 맞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국정과제에는 1800시간대 단축 연도를 명시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연간 노동시간 1800시간대 진입 목표는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6월 노사정위원회에서 합의한 사안이다. 2013년 출범한 박근혜 정부는 노동시간 상한을 주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여 고용률 70%를 달성한다고 약속했다. 20159월 소위 노사정 대타협에는 2020년까지로 그 시기를 정해놨다. 52시간제는 연 1800시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기업의 변명 아닌 변명은 10년 가까이 정부가 시간만 끌어오면서 학습된 결과다. 매번 정책이 흐지부지되니 준비가 안 됐다고만 둘러대면 통하는 식이다. 정부도 기업도 손을 놓고 있다가 법이 바뀌자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는 태도를 보인다.

 

이 같은 지적은 노동계에서도 나온다. 한국노총은 노동시간 단축을 단계적으로 시행한 것은 (규모가) 작은 사업장에 충분한 준비 기간을 주기 위함이었다정부는 강력한 정책 추진 의지보다는 보완이라는 이름으로 애매한 시그널(신호)을 기업에 보내왔으니 어떤 기업이 최선을 다하겠는가라고 꼬집었다. 민주노총도 계도기간 설정의 근거 없음과 부당함에 대해 질릴 정도로 역설해왔지만, 정부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시행 준비를 않고 있는 사업장을 핑계로 충분한 유예 요구를 수용해버렸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 대세는 노동시간 단축, 아직은 머나먼 길

 

그나마 평가할 만한 대목은 지난해 노동시간이 연 2000시간 미만으로 진입한 점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연간 노동시간은 1978시간으로 집계됐다. 19902677시간, 20102111시간에 비하면 괄목할 만한 성과다. 법정 노동시간이 주 484440시간으로 점차 줄었고, 5일제가 도입된 덕분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평균인 1770시간(2014)까지는 이제 200시간 남았다.

 

문화저널21 성상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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