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섭의 복싱 스토리] 68년 멕시코 올림픽의 유일한 생존복서 서상영

조영섭 기자 | 기사입력 2019/12/13 [15:57]

[조영섭의 복싱 스토리] 68년 멕시코 올림픽의 유일한 생존복서 서상영

조영섭 기자 | 입력 : 2019/12/13 [15:57]

달력을 보니 12월 13일 금요일이다. 일명 검은 금요일이라( BIack Friday)이라 불리는 날이다. 34년 전인 1985년 12월 13일, 그날도 검은 금요일이었다. 당시 8승 1패의 전적을 기록한 기자는 대구실내체육관에서 벌어진 챔피언 와타나베 지로와 도전자 윤석환의 WBC 수퍼플라이급 타이틀전 오픈게임에 출전, 5승 3패를 기록한 김사영(당시 신라체육관)에게 다운을 두 번 탈취하고 종료 1초를 남기고 역전 KO패 당하며 만22세에 링을 떠난 치욕스런 날이기도 하다. 그 상흔을 딛고 군복무 후 89년 4월 지도자로 컴백했다. 당시는 하늘이 무너져 내리고 모든 게 끝난 것 같은 비참한 심정이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그 아픔은 네게 전화위복의 발판을 제공한 영양제였다. 

 

▲ 65년 제2회 아시아선수권 금메달리스트 서상영 (사진=조영섭 기자)

 

오늘 복싱 스토리의 주인공은 68년 멕시코 올림픽에 출전한 복싱팀 12명 중 유일한 생존자 서상영이다. 전북 군산 출신으로 중앙대를 거쳐 전매청에서 선수생활을 한 그를 만나기 위해 지난 주말 군산으로 향했다. 

 

군산은 1380년 8월 고려 우왕 때 왜선 500여척을 최무선의 화포를 이용해 대승을 거둬 교과서에도 등재된 그 유명한 진포대첩이 벌어진 역사의 현장이다. 내륙으로 흩어진  왜구 잔당들은 그해 9월 이성계에 의해 남원 운봉면의 황산에서 전멸당하고 말았다. 

 

그런 역사를 지닌 군산에서 정대산 군산복싱 협회 회장과 함께 서상영을 만났다. 경기인 출신 정대산 회장은 교회 담임목사를 하면서 서울신문 총국장을 겸직하고 있는 멀티 사업가이며, 서상영은 현재 고향 군산에서 새싹학원 3개를 운영하는 이사장을 맡고 있다.

 

서상영은 군산고 2학년이던 64년 제2회 성의경배 대회 라이트플라이급에서 사우스포 특유의 발군의 카운터 펀치로 상대를 압도하며 우승을 차지하면서, 정상급 복서로 급부상했다. 65년도에는 세계 군인선수권 메달리스인 손영찬(동아대)마져 누르고 고교생 국가대표에 발탁되면서 입지를 굳힌다. 

 

그해 9월 제2회 아시아 선수권대회(서울)에 출전해 결승에서 태국의 프리만을 압도적인 기량으로 제압하며 금메달을 따내자 관중들은 수준 높은 그의 경기에 매료됐다. 

 

▲ 멕시코 올림픽 현지에서 케냐 선수들과 의 서상영(가운데) (사진=조영섭 기자)


당시 한국은 △서상영(라이트플라이급) △장규철(플라이급) △황영일(밴텀급) △김성은(페더급) △박구일(라이트웰터급) △이홍만(웰터급) △이금택(라이트미들급) △김덕팔(미들급) 등 8체급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국제대회에서 사상 최다 금메달을 휩쓸었는데, 이 중 서상영을 비롯해 황영일, 박구일 등 3명의 복서는 모두 군산체육관 소속으로 인구 10만도 채 되지 않는 소도시에서 탄생한 복서였다.

 

특히 서상영, 황영일 두 복서를 발탁해 육성시킨 사람이 군산 복싱의 선구자 손용(작고) 사범 이었는데 이분은 일제 강점기 복싱을 배운 프로복서로 일본의 권성(拳聖)이자 186전 145승(88KO) 25패 16무를 기록한 피스톤 호리구치와 대결에서 난타전 끝에 청각기능을 상실해 군산으로 낙향, 체육관을 설립하면서 핸디캡을 극복하고 감각적인 지도력으로 후진양성에 심혈을 기울여 걸출한 두 복서를 조련했던 숨은 공로자라고 서상영은 회고했다. 

 

피스톤 호리구치에 대해 부연하면 1950년 10월 어느 날, 술에 취해 철로변을 걷다가 피스톤이란 이란 별명 그대로 열차의 피스톤 아래에 깔려 만 36세에 짧은 생을 마감했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일본 최초의 챔피언은 시라이 요시오 지만 일본 최초의 복싱영웅으로 호리구치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을 정도다. 그가 기록한 88KO승은 일본 최다 KO승 기록이다.  

 

▲ (왼쪽부터) 정대산 군산복싱 회장과 서상영 대표 (사진=조영섭 기자)


한편, 그 해 대한민국 체육상 시상식에서 서상영은 역도의 이춘식, 배구의 서희숙과 함께 최우수 신인상을 받으며 주목받는다. 66년 중앙대에 진학한 그는 그해 제5회 방콕아시안게임 선발전에 출전, 극강의 파이터 박인성을 꺽으면서 1인자임을 재확인 시키며 본선에 진출한다. 당시 방콕의 키티카 초론 체육관에는 ‘방콕의 하리마우’라는 영화를 찍던 당대의 톱스타들인 문오장, 신영균, 박노식, 김혜정 등이 응원차 참관하고 있었다. 

 

서상영은 준결승에서 다크호스인 난적 필리핀의 R 디아즈와 열띤 공방전을 펼쳐 판정으로 승리했다. R 디아즈는 후에 프로로 전향해 72년 6월 홍수환과 동양 밴텀급 타이틀전을 치렀던 바로 그복서였다. 서상영은 한차례 격돌, 승리를 거둔 바 있는 태국의 프리만과 재격돌해 우세한 경기를 펼쳤지만 지독한 홈 텃세에 밀려 1ㅡ4 판정에 고개를 숙여야 했다. 

 

당시 한국은 △손영찬(플라이급) △김성은(페더급) △박구일(웰터급) △이홍만(라이트미들급) △김덕팔(라이트헤비급) 등이 5개의 금메달을 따냈고, 서상영은 라이트급의 이문용, 미들급의 이금택 등과 함께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채로운 사실은 당시 방콕아시안 게임에서 1·2회전에 탈락한 복서가 엄규환. 엄복삼 두 명의 엄(嚴)씨 였는데, 육상의 한명희, 한동시 두 한(韓)씨는 나란히 은과 동을 따내며 대조를 이뤘다.

 

경기가 끝나고 여배우이자 후에 동아건설 최원석 회장의 아내가 된 톱스타 김혜정이 서상영에게 다가와 손수건으로 그의 눈물을 닦아주며 위로해 줬던 일화가 생각난다. 서상영은 67년 제3회 아시아선수권과 멕시코 프레올림픽에 이어 68년 멕시코 올림픽 선발전에서도 손영찬(양지팀)을 누르고 올라온 이거성(이리 남성고)을 한수 위의 기량으로 꺽고 출전권을 획득한다. 

 

당시 체급별 출전 명단은 △라이트플라이급 지용주 △플라이급 서상영 △벤텀급 장규철 △페더급 김성은 △라이트급 이창길 △라이트웰터급 김사용 △웰터급 박구일 △라이트미들급 이홍만 △미들급 김승미 △라이트헤비급 박형춘 △헤비급 김상만 이었다. 

 

▲ 현역시절 서상영의 날카로운 포즈 (사진=조영섭 기자)


임원진으론 대한 아마복싱 김택수 회장을 비롯해 감독 강준호, 국제심판 박인양·주상점·김명곤 등이 참가했고, 당시 대한체육회 민관식 회장의 지시에 의해 웰터급까지만 출전하기로 방침을 정해 이홍만, 김승미, 박형춘, 김상만 등 4명은 아쉽게 자동 탈락되면서 총12명이 현지로 출발했다. 

 

서상영은 당시 김성은과 함께 메달 유망주였지만 10월 15일 아레나 경기장에서 벌어진 1회전에서 우간다의 로보고에 판정패하며 눈물을 삼켰다. 이 대회에서는 지용주와 장규철이 은메달과 동메달을 획득하며 기염을 토했다. 

 

중요한 사실은 이후 멕시코 올림픽에 참가한 복싱인들이 이런 저런 사연 속에 서상영을 제외한 전원이 대부분 짧은 생을 살다가 삶을 등졌다는 점이다. 81년 주상점이 뉴욕 자택에서 55세로 삶을 마감하면서 시작된 비운의 역사는 83년 57세의 김택수 회장, 84년 65세인 박인양과 40세의 박구일, 85년 37세의 지용주가 유명을 달리했고, 90년에는 68세의 강준호가, 2000년에는 54세의 장규철, 2004년에는 59세의 김사용이 차례차례 하늘의 별이 되었다. 

 

2005년 어느 날, 김성은 대한아마복싱연맹 회장이 군산에 기거하는 그를 찾아와 “야 상영아 이제 멕시코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들 중 너와 나 단 둘만 남았다. 항시 건강에 유의하라”고 덕담을 건냈지만, 그 역시 2년 후인 2007년 64세의 나이에 삶을 등졌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멕시코 올림픽에 선발되고서도 중량급 이라는 이유로 출전하지 못한 선수들은 모두 생존하여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홍만(78세), 김승미(75세), 박형춘(80세), 김상만(79세) 등 네 분이 주인공이다.   

 

故하일성 야구해설위원이 “야구 몰라요”라 말했듯이 인생이란 수레바퀴도 럭비공처럼 언제 어떻게 굴러가면서 튈지 전혀 예측할수 없는 각본 없는 드라마인 것 같다. 

 

조영섭

문화저널21 복싱전문기자

 

현) 서울복싱연맹 부회장

현) 문성길복싱클럽 관장 

 

 

전) 82년 로마월드컵 대표선발전 플라이급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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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냐민 2019/12/14 [08:36] 수정 | 삭제
  • 늘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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