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강아지. 2 / 강위석

서대선 | 기사입력 2019/12/23 [08:25]

[이 아침의 시] 강아지. 2 / 강위석

서대선 | 입력 : 2019/12/23 [08:25]

강아지. 2

 

바람이나 돌 같은 거

나는 간단한 것만 웃어요

 

마주 걸어 오다가

 

옆집은

반쯤이 담장이 넝쿨로 덮였는데

 

벽도 지붕도

바람이 불어 담장이 이파리가

일제히 나부끼는 것을 나는 웃어요

 

강아지는 내가 웃는

가장 복잡한 것이여요

 

여기 쯤에서 강아지를 만나요

마주 걸어오다가

 

나는 벽과 지붕을 웃고

벽과 지붕은 나를 웃어요

 

그러면 복잡해도

나는 강아지를 웃어요

 

우리집 강아지여요

처음 만난 듯 웃어요

 

# “처음 만난 듯" 새롭고, 반가워 웃을 수 있다면, 매일 매 시간 어느 때나 마주치는 모든 사물들이 “처음 만난”것 같다면 매일이 새로울 것이다. “바람”이 불어와도 웃음이 나고, 길가다가 작은 돌맹이를 만나도 반갑고, 벽들과 지붕들을 만나도 고마워 웃음이 나오고, “마주 걸어오는” “강아지”가 반갑다고 알은체하며 꼬리를 흔드는 모습에 기쁘고, 살아있음을 느끼는 일들이 매일 매 순간 생겨난다면 세상은 얼마나 살만할 것인가.

 

왜 처음 만난 듯 새롭고 반가워서 따스하고 정답게 웃을 수 없는 걸까?  타성(惰性) 때문이다. 여씨춘추(呂氏春秋)에 의하면 ‘유수불부(流水不腐)’라고 하여 흘러가는 물은 자연스레 정화된다. 그러나 고인 물은 고요하고 편안하고 안정적으로 보이지만 썩기 마련이라고 하였다. 타성에 젖게 되면 주변의 모든 사물이 관념화 되어 버린다. 타성이 무서운 것은 타성에 젖은 전략만 사용하게 되면 나라도 잃을 수 있다는 것이다. 100년간 성공했던 ‘사선 전투대형’ 만을 고집했던 프로이센 군대는 여기저기 흩어진 채 지형지물을 이용해 매복전과 기습작전과 같은 변칙적인 전술 펼쳤던 나폴레옹 군대에게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한 채 무너져버렸던 것이다.

 

“바람이나 돌 같은 거”. “바람이 불어 담장이 이파리가/일제히 나부끼는 것”, “벽도 지붕도”, “강아지”를 보아도 타성에 젖어 그냥 지나쳐 버리진 않았을까. 어쩌면 관념화 되어버린 그런 사물들이 주변에 존재한다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사는 것은 아닐까. 벽이 없다면 우리는 자신만의 사적인 광장을 가질 수 없고, 벽을 넘으려는 자유의지를 불태울 수 없으리라. 지붕이 없다면 비바람을 어찌 막을 것이며, 눈 내린 밤 지붕 위에서 눈물처럼 반짝이는 별들을 어찌 가슴으로 품을 수 있을까. 늦가을 들판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흰 억새를 보면 어느새 반백이 된 자신의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쓸쓸해지리라. 고단하게 집으로 돌아오는 골목길을 마중 나온 “강아지”가 전신으로 반겨줄 때, 타성에 젖은 우리는 정작 눈을 맞추고 웃으며 마주 보아야할 가족들조차 건성건성 지나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odae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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