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항준 칼럼] ‘크로스 텍스트 메이커’ 시대의 종료

박항준 | 기사입력 2019/12/24 [14:01]

[박항준 칼럼] ‘크로스 텍스트 메이커’ 시대의 종료

박항준 | 입력 : 2019/12/24 [14:01]

‘크로스 텍스트 메이커(cross-text maker)란 고전, 이론 등 기존의 다양한 텍스트들을 모으고, 이를 분석하여 정리하는 탁월한 편집 능력의 소유자들을 말한다. 

 

그들의 특징은 찾아내고 편집하는 능력이 있다는 점이다. 학원 강사, 교수, 기자들은 다양한 취재와 데이터 수집능력과 더불어 편집하는 능력을 보유한 사람들로 대표적인 ‘크로스 텍스트 메이커’다. 다만, 이들은 찾아낸 데이터들의 역학관계에 대한 원리(알고리즘)를 갖고 있지 않다. 때문에 창조적이며 창의적인 ‘하이퍼텍스트(論)’를 제안하지는 못한다. 한마디로 앵무새 능력은 탁월하나 창조능력은 없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들을 ‘전문가’라고 부른다. 

 

2500년간 공자 안에 갇힌 우리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크로스 텍스트 메이커’의 한계를 느낄 수 있다. 알고리즘을 이해하지 못하고 가끔은 창조자 흉내를 내다보니 다른 분야에서는 바보 취급을 당하기도 한다. 

 

하버드에서 동양학 박사를 이수한 후 중용을 비롯해 다양한 고전을 서양의 철학과 결합해 재미있게 강의하는 모 교수가 있다. 그런데 이 분은 정치 얘기만 하면 비판을 받는다. 그 이유에 대해 명지대 김정운 교수는 그의 저서 ‘에디톨로지’에서 ‘자신의 정치적 견해가 자신이 고전을 통해 주장한 텍스트와 매칭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비판한다. 이러한 행태가 ‘크로스 텍스트 메이커’의 한계라며 우리나라 철학과 교수들마저 싸잡아 비판한다. 수천 수백 년 전 철학자들의 뒤꽁무니만 쫓아가고 있다고 말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텍스트가 아닌 남의 텍스트를 가져오기 때문에 탄생의 고통을 맛보지 못하고, 글자로만 텍스트를 익히게 된다. 남의 텍스트를 순서와 맥락에 따라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편집은 가능하나 텍스트의 출산 경험이 없으니 알고리즘(원리)을 통해 창조적인 ‘하이퍼텍스트’를 만들지 못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크로스 텍스트 메이커’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 논어의 저자이다. 공자가 남긴 말을 정리한 논어의 저자는 편집의 대왕으로 불린다. 그러나 2500년간 내려온 동양의 바이블인 논어의 저자는 세상에 그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만다. 논어가 자신의 ‘하이퍼 텍스트’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제 전문가(크로스 텍스트 메이커스)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새로운 게임에서 새로운 룰을 만드는 이들은 멀티태스킹 능력이 출중한 인물이어야 한다. 이제 아리스토텔레스, 탈레스, 피타고라스, 아르키메데스, 데카르트, 파스칼과 같은 ‘하이퍼 텍스트 메이커’가 필요한 시대가 도래했다. 수백 수천 년 전 그들이 철학을 기반으로 수학, 공학, 인문학을 동시에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Core(핵심축)가 바뀌는 시대적인 요구 때문이었을 것이다. 

 

최근 정보공학적(프로그래밍) 뿌리가 깊은 블록체인 비즈니스 백서(white paper)에 ‘사회철학’과 ‘금융공학’이 항상 앞서 명시되고 있는 점을 주시해야 한다. 고대와 중세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게임의 ‘룰(rule)’이 필요한 시대에 철학과 수학, 공학을 겸하는 아리스토텔레스 형 멀티태스킹 인재들이 필요했듯이 21세기 들어 바로 지금 우리 사회에도 제2의 멀티태스킹 형 융복합 인재들에 대한 시대적 요구가 있다. 이들이 앞으로 21세기를 주도할 국가와 민족을 만들어갈 것이며, 이들이 만든 세상의 새로운 알고리즘이 향후 수백 수천 년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 

 

박항준 세한대학교 교수

  • 도배방지 이미지

관련기사목록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