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따뜻한 편지 / 이영춘

서대선 | 기사입력 2019/12/30 [08:38]

[이 아침의 시] 따뜻한 편지 / 이영춘

서대선 | 입력 : 2019/12/30 [08:38]

따뜻한 편지

 

 은행 창가에서 아들에게 편지를 쓴다

 “춘천 우체국에 가면 실장이 직접 나와 고객들 포장박

스도 묶어 주고

  노모 같은 분들의 입. 출금 전표도 대신 써 주더라“고

쓴다

  아들아 이 시간 너는 어느 자리에서 어느 누구에게 무

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돌아보라고 쓴다

  나도 내 발자국을 수시로 돌아보겠지만

  너도 우체국 실장처럼 그렇게 하라고 일러 주고 싶은

시간이다

 

  겨울 날 창틈으로 스며드는 햇살 받아 안 듯

  “비오는 날 문턱까지 손수 우산을 받쳐 주는 그런 상사

도 있더라.“고 덧붙여 쓴다

 

  살다보면 한쪽 옆구리 뻥 뚫린 듯 휑한 날도 많지만

  마음 따뜻한 날은 따뜻한 사람 때문이란 걸 알아야 한다

 

 빗줄기 속에서, 혹은 땡볕 속에서

 절뚝이며 걸어가는 촌노를 볼 때가 있을 것이다

 네 엄마, 네 외할머니를 만난 듯

 그들 발밑에 채이고 걸리는 것이 무엇인가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

  마음 속 눈에 옷을 입혀야 한다

 

 공부라는 것, 성현의 말씀이란 것,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사람 위에 사람을 보지 말고

 사람 아래 사람을 보는 눈을 키워라, 그러면

 터널처럼 휑한 그들 가슴 한복판 가득 채우는 햇살이

무엇인가를 알게 될 것이다

 아들아,

 비오는 날 은행 창가에서 순번 기다리다 지쳐 이 편지

를 쓴다 

    

# 우리 동네 마장 우체국 소장님도 올라운드 플레이어(all-round player)다. 마을 주민들이 택배상자를 들고 우체국에 들어서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카운터로 다가온다. 계량기 위에 올려 진 상자의 무게를 확인하고, 주소가 정확하게 입력 되도록 상자를 돌려 놔주거나, 우체국 소인이 찍힌 스티커를 붙여 주고, 계산이 끝난 상자를 번쩍 들어 다른 택배 상자들이 쌓인 곳에 가지런히 쌓아 준다. 그리곤 “노인들 입. 출금 전표 쓰는” 것도 살핀다. 농협 마트 카운터 직원은 한쪽 지팡이에 의지해 절룩거리며 장을 보는 나에게 사유를 물으며 따스한 위로의 말을 건넨다. 면사무소 사회복지과 젊은 공무원은 어쩌다 점심시간에 찾아온 할아버지도 기다리게 하지 않는다. 점심 도시락을 닫아 놓고 재빨리 자리로 돌아와 할아버지의 사정을 들어주고, 자세히 설명도 해주면서 해결방안을 함께 모색하려 열심이다.

 

“어떻게 밥을 굶을 수가 있어요?” ‘우유 장발장부자’를 처벌하는 대신 병든 아버지와 아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며 눈시울을 붉혔던 순경의 모습에, 벌벌 떨며 눈물짓는 부자를 뒤따라가 조용히 돈 봉투를 건넨 이웃의 선행에 “나도 내 발자국을 수시로 돌아보겠”다는 마음을 다잡고, 우리 자녀에게 “이 시간 너는 어느 자리에서 어느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따뜻한” 안부 문자라도 보내고 싶어진다.

 

“공부라는 것, 성현의 말씀이란 것,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사람 위에 사람을 보지 말고/ 사람 아래 사람을 보는 눈을 키”운다면, “터널처럼 휑한 그들 가슴 한복판 가득 채우는 햇살이/무엇인가를 알게 될 것이다”. “살다보면 한쪽 옆구리 뻥 뚫린 듯 휑한 날도 많지만/ 마음 따뜻한 날은 따뜻한 사람 때문이란 걸 알아야 한다”는 “따뜻한 편지” 속 전언처럼, 새해에도 ‘사람이 먼저’인 마음과 행동들이 따뜻한 햇살이 되어 춥고 어두운 곳까지 찾아가는 세상을 만들어 가길 소망해 본다.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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