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1세대 경영인, 신격호 롯데 명예회장 별세

일본서 시작해 국내 제과·관광산업 기틀 마련…재계 5위 그룹 일궈

박명섭 기자 | 기사입력 2020/01/19 [21:14]

마지막 1세대 경영인, 신격호 롯데 명예회장 별세

일본서 시작해 국내 제과·관광산업 기틀 마련…재계 5위 그룹 일궈

박명섭 기자 | 입력 : 2020/01/19 [21:14]

일본서 시작해 국내 제과·관광산업 기틀 마련…재계 5위 그룹 일궈

아들간 경영권 분쟁 등으로 순탄치 않은 말년 보내

장례는 롯데그룹장, 22일 오전 7시 롯데콘서트홀에서 영결식

 

생존하던 마지막 1세대 경영인 롯데그룹 창업주 신격호(辛格浩) 명예회장이 19일 오후 별세했다. 향년 99세.

 

신 명예회장은 서울 아산병원에 입원 중 전날 병세가 급격히 악화했으며 이날 오후 4시 29분께 신동빈 롯데 회장 등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면에 들었다. 신 명예회장의 별세로 우리나라 창업 1세대 경영인' 시대는 완전히 막을 내리게 됐다.

 

▲ 故 롯데 신격호 명예회장   ©사진제공=롯데지주

 

신 명예회장은 식민지시대에 일본 유학중 소규모 식품업으로 출발헤 한·일 양국에 걸쳐 식품·유통·관광·석유화학 분야의 대기업을 일궈낸 자수성가형 기업가다. 

 

일본에서 기업가로 성공한 신 명예회장은 1967년 롯데제과를 시작으로 호텔롯데, 롯데쇼핑, 호남석유화학(現 롯데케미칼) 등을 잇달아 창업·인수하면서 롯데그룹을 재계 5위의 대기업으로 만들었다. 

 

신 명예회장은 1921년 경남 울산 삼남면 둔기리에서 5남5녀의 맏이로 태어났다. 1942년 일본으로 건너가 신문과 우유배달 등으로 고학생활을 시작했다. 

 

청년 신격호는 첫 사업이 폭격으로 공장이 전소되는 시련을 겪지만 허물어진 군수공장에서 비누를 만들어내면서 진정한 사업가의 길에 들어선다. 워낙 물자가 부족한 시절이라 1년도 채 안돼 적지 않은 돈이 들어온다. 사업가 신격호의 타고난 재능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미군이 일본에 주둔하자 껌은 일본에서 갑자기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된다. 청년 사업가 신격호도 타고난 사업 감각을 발휘해 껌 사업에 뛰어든다. 워낙 껌이라면 없어서 못 팔던 시절이라 신격호는 큰돈을 번다. 그는 드디어 자본금 100만 엔, 종업원 10명의 법인사업체를 만들게 된다. 

 

이때 회사 이름 ‘롯데’가 탄생한다. 문학에 심취했던 청년 신격호는 괴테의‘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여주인공 ‘로테’에서 ‘롯데’라는 이름을 따온다. 

 

천재적 마케팅 감각을 가진 신격호 회장

 

서구문명의 상징인 껌에 일본 성인들은 비난을 퍼부었지만 신격호의 생각은 달랐다. 당시 일본에서 껌의 핵심 타깃은 바로 어린이라는 점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롯데는 풍선껌 사업을 강화해 아예 풍선껌을 작은 대나무 대롱 끝에 대고 불 수 있도록 풍선껌과 대나무 대롱을 함께 포장했다. 

 

당시에는 변변한 장난감이 없던 터라 롯데의 풍선껌은 그야말로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 껌이라는 상품자체가 식품이라기보다는 심심한 입을 즐겁게 해주는 장난감이라는 제품의 핵심가치를 간파한 것이다.

 

▲ 롯데 신격호 명예회장 젋은시절 (사진제공=롯데지주)

 

이벤트와 미디어로 소비자의 눈길을 끌어당긴 점도 빼놓을 수 없다. 껌 포장 안에 추첨권을 놓고 당첨된 사람에게 1천만 엔을 준다는 광고를 내놓기도 했다. 결과는 롯데 껌을 사기 위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상점 앞에 길게 줄을 서게 만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기발한 마케팅 기법을 고안해내고 자신 있게 밀어붙인 사람은 바로 신격호였다. 신 명예회장의 천재적 마케팅 감각은 경영학 강의와 교재에서 도움을 받았다기보다는 그의 감수성과 창의성에서 나온 것이다. 

 

초콜릿 시장을 제패하며 종합 메이커로 성장

 

1961년 신격호는 일본가정에서 손님 접대용 센베이가 초콜릿으로 대체될 기미가 보이자 초콜릿 생산을 결단한다. 초콜릿 산업은 과자 사업 중에서는 중공업이라고 일컬어진다. 그만큼 제조방법이 까다롭다는 얘기다. 

 

신 명예회장은 유럽에서 최고의 기술자와 시설을 들여오면서 초콜릿 시장을 장악하고 이것이 롯데가 종합메이커로 부상하는 밑거름이 된다. 이후 롯데는 캔디, 비스킷, 아이스크림, 청량음료 부문에도 진출해 성공을 거듭한다.

 

고국투자 - 현해탄 경영 시작

 

“새롭게 한국 롯데 사장직을 맡게 되었사오나 조국을 장시일 떠나 있었던 관계로 서투른 점도 허다할 줄 생각되지만 소생은 성심성의, 가진 역량을 경주하겠습니다. 소생의 기업 이념은 품질본위와 노사협조로 기업을 통하여 사회와 국가에 봉사하는 것입니다." 1967년 한국 롯데제과 설립 당시 신격호 롯데회장의 인사말이다.

 

일본에서 사업을 일으킨 신 명예회장의 꿈은 조국 대한민국에 기업을 설립하는 것이었다. 신 명예회장은 기업보국(企業報國) 이라는 기치아래 폐허의 조국 어린이들에게 풍요로운 꿈을 심어주기 위한 계획에 착수해 한·일 수교 이후 한국에 대한 투자의 길이 열리자, 1967년 롯데제과를 설립해 모국투자를 시작했다. 

 

롯데제과에 이어 롯데그룹은 1970년대에 롯데칠성음료와 롯데삼강(現 롯데푸드)으로 국내 최대 식품기업으로 발전했으며 롯데호텔과 롯데쇼핑을 설립해 당시에 불모지나 다름없던 국내 유통·관광 산업의 현대화 토대를 구축했다. 또, 호남석유화학(現 롯데케미칼)과 롯데건설 등으로 국가 기간산업에도 본격 진출했다. 

 

관광 불모지에 대규모 호텔업 투자

 

'한국의 마천루!' 1973년 당시 동양 최대의 초특급 호텔로 장장 6년간의 공사 끝에 문을 연 롯데호텔에 붙여진 찬사였다. 지하 3층, 지상 38층의 고층 빌딩으로 1천여 객실을 갖춘 롯데호텔 건설에는 6년여 기간 동안 경부고속도로 건설비에 버금가는 1억 5천만 달러가 투자됐다.

 

호텔 사업 구상은 신 명예회장과 롯데그룹에 대단한 모험이었다. 당시에는 산업기반이 취약한데다 국내에 외국손님을 불러올 국제 수준의 관광 상품도 개발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관광업 자체의 민간투자가 저조한데다 산업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려 거의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부존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는 기필코 관광입국을 이뤄야 한다는 것이 신 명예회장의 신념이었다. 이러한 신념으로 탄생한 롯데호텔은 2010년 러시아 모스크바에 한국 호텔로는 처음으로 해외 체인을 오픈할 만큼 성장했다.

 

롯데쇼핑의 탄생…1위 백화점 유지

 

1970년대 우리나라 백화점은 대부분 영세하고 운영방식이 근대화 되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 명예회장은 국가 경제의 발전과 유통업 근대화에 앞장서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백화점 사업에 도전하게 된다. 

 

롯데쇼핑센터(現 롯데백화점 본점) 건립공사는 1976년 시작해 1979년 12월에 완료됐다. 규모는 연면적 2만 7,438㎡, 영업면적 1만 9,835㎡에 지하1층, 지상 7층에 이르렀다. 이는 기존 백화점에 비해 2~3배에 해당하는 규모였다. 롯데쇼핑센터는 개점 당시부터 고객의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으며 이후 우리나라 1위 백화점의 위치를 지금까지 지키고 있다.

 

호남석유화학 인수하며 석유화학 산업 진출

 

이후 호남석유화학을 인수하면서 비로소 신 명예회장은 중화학 기업에의 꿈을 이루게 된다. 호남석유화학은 정부가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의 일환으로 여천석유화학단지를 조성하면서 설립한 국영기업이었다. 단지조성 후 정부는 호남석유화학을 민영화한다고 발표했고, 롯데는 공개입찰을 거쳐 1979년 이를 인수하는데 성공했다. 

 

그해 호남석유화학은 여천단지 내 3개의 공장을 완공하고 고밀도 폴리에틸렌(HDPE), 폴리프로필렌(PP), 에틸렌옥사이드(EO)와 에틸렌글리콜(EG)의 상업생산을 시작하며 우리나라 석유화학산업을 이끌어 나가게 됐다.

 

호남석유화학은 케이피케미칼 등 국내 유화사와 말레이시아의 타이탄케미칼 등을 인수하며 롯데그룹 성장의 한 축으로 성장했고, 2012년 '롯데케미칼'로 사명을 바꾸고 글로벌 화학기업으로 도약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랜드마크, 롯데월드타워 건립

 

서울 잠실에 테마파크를 포함한 대규모 관광위락시설 ‘롯데월드’를 건설하는 동안, 신 명예회장은 또 하나의 원대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석촌호수 서호를 중심으로 건설되는 롯데월드와 함께, 석촌 동호를 중심으로 종합관광단지(당시 명칭 ‘제2롯데월드’)를 건설해 잠실 지구를 한국의 랜드마크로서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복합 관광명소로 키워내겠다는 것이었다.

 

▲ 롯데백화점 영등포점 개점 기념식에 참석한 신격호 명예회장 내외 신동빈회장(뒤) 1991.05.04 (사진제공=롯데지주)

 

2011년 지상 123층 높이 555m의 초고층빌딩을 포함해 80만 5782㎡에 이르는 ‘롯데월드타워’ 전체 단지의 건축 허가가 최종 승인됐다. 2014년 10월 롯데월드몰과 아쿠아리움을 시작으로 시설들이 순차적으로 오픈했으며, 2017년 4월 3일 롯데 창립 50주년을 축하하며 초고층빌딩을 포함한 롯데월드타워가 그랜드 오픈했다. 30여 년에 걸친 신 명예회장의 집념이 결실을 맺은 순간이었다.

 

우리나라 최고층 건물이자 최대 규모의 쇼핑몰로 탄생한 롯데월드타워는 고용 창출 및 지역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하는 한편, 서울의 랜드마크로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며 국내 관광산업 활성화에 앞장서고 있다.

 

신격호의 기업철학, 정직, 봉사, 정열

 

신격호 명예회장의 경영철학은 정직과 봉사, 그리고 정열로 압축된다. 기업의 존재이유는 생산 활동을 통해 인간의 행복에 기여하는데 있으며, 이로써 사회와 국가에 봉사하는 것이므로 무엇보다 정직한 기업정신이 요구된다. 정직한 기업정신을 바탕으로 한 정열적인 활동 즉, 온 힘을 기울여 매진하는 정성스러운 기업인의 자세가 뒷받침 되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 시작한 사업이 최고의 경쟁력을 갖출 때까지 다른 부분을 엿보지 않는 신격호 명예회장의 경영소신은 유명한데 이는 그동안 손을 댄 사업이 대부분 우리나라에서 최고를 차지하고 있는 것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롯데제과, 롯데칠성음료, 호텔롯데, 롯데쇼핑, 롯데월드 등이 모두 동 업계에서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고 업계를 선도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관광보국(觀光報國)

 

지난 84년 신격호 명예회장은 서울 잠실 롯데월드 사업을 지시한다. 당시 롯데 임직원들의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일부 아파트를 제외하고는 허허벌판이었던 잠실벌에 대형 호텔과 백화점, 놀이시설을 짓는 것이 과연 사업성이 있겠느냐는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신격호 명예회장은 소신이 있었다. 물론 롯데월드는 성공했다. 1989년 문을 연 롯데월드는 현재 세계 최대 규모의 실내 테마파크로 기네스북에 등재돼 있다. 

 

신격호 명예회장은 95년 관광산업 분야에서는 최초로 금탑산업훈장을 수훈했다. 산업훈장은 그때까지 수출기업이나 제조업종에 집중 수여되었으나, 신 명예회장이 관광산업을 국가전략 산업으로 끌어올린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잘할 수 있는 일에서 최고의 경쟁력을 발휘

 

“잘하지도 못하는 분야에 빚을 얻어 사업을 방만하게 해서는 안 된다. 잘 알고, 잘 할 수 있는 분야에서 미래 사업 계획을 강구해 신규 사업 기회를 선점해야 한다.”

 

신격호 명예회장이 계열사 사장들에게 자주 강조하는 이 말은 롯데그룹의 경영특징을 잘 대변해 준다. 제품에 대한 철저한 연구와 애정은 신격호 명예회장에게 ‘실패를 모르는 기업인’이라는 애칭을 붙게 할 정도다. 

 

자신 있는 업종을 선택해 이를 전문화·집중화해 일단 사업이 시작되면 동종업계에서 최고의 경쟁력을 갖출 때까지 다른 분야를 넘보지 않는 경영철학도 빚 없는 경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화재 등 안전사고 예방에 최우선…현장 불시점검

 

신격호 명예회장은 화재 등 안전사고 예방에는 철저하게 신경을 쓴다. 롯데는 백화점과 롯데월드 등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시설들이 많아 유사시 큰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 명예회장은 틈만 나면 현장을 불시 점검하고 사고의 사전예방을 강조한다.

 

순탄치 않았던 말년을 보낸 신 명예회장

 

2015년 장남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차남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간의 경영권 분쟁이 터지면서 신동주 전 부회장과 한 편에 선 신 명예회장은 한일 롯데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직에서 물러났고 정신건강 문제가 부각되는 한편 90대 고령에 수감 위기에 처하는 등 수난을 겪기도 했다.

 

신 명예회장은 두 아들과 함께 경영비리 혐의로 징역 4년 및 벌금 35억원을 선고받았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법정 구속은 면했다.이후 건강이 악화되며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시게미쓰 하츠코(重光初子) 여사와 장녀 신영자 이사장, 장남 신동주 전 부회장, 차남 신동빈 회장, 사실혼 관계인 서미경 씨와 딸 신유미 씨 등이 있으며, 신춘호 농심 회장, 신준호 푸르밀 회장, 신정희 동화면세점 부회장 등이 동생이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2일 오전 6시다. 발인 후 22일 오전 7시 서울 롯데월드몰 8층 롯데콘서트홀에서 영결식이 열린다.

 

문화저널21 박명섭 기자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