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소릉조(小陵調) / 천상병

서대선 | 기사입력 2020/01/20 [09:21]

[이 아침의 시]소릉조(小陵調) / 천상병

서대선 | 입력 : 2020/01/20 [09:21]

소릉조(小陵調)

   -1970년 추석에

 

아버지 어머니는

고향 산소에 있고

 

외톨배기 나는

서울에 있고

 

형과 누이들은

부산에 있는데,

 

여비가 없으니

가지 못한다.

 

저승 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

 

나는 영영

가지도 못하나?

 

생각느니, 아,

인생은 얼마나 깊은 것인가.

 

# 명절 때만이라도 찾아뵙고, 두 팔을 쫘악 벌려 부모님 잠들어 계신 봉분을 끌어안고 응석부리듯 뜨거운 눈물 한 점 올리고 싶건만... “여비가 없으니/가지 못한다.” 명절이 돌아오니 “외톨배기”로 떠도는 신세가 더더욱 처량하고 서럽고 외롭다. 돈이 뭐길래. 

 

천 시인은 “소릉조(小陵調)”라는 시에 “1970년 추석에” 라는 부제를 달았다. 친구도 지인들도 곁에서 멀어진 시절, 외롭게 서울거리를 헤매며 문득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를 떠올린다. “소릉(小陵)”은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의 호다. “소릉조(小陵調)” 란 두보 시의 형식을 빌려 천 시인 자신의 마음을 드러낸 시다. 

 

시인 두보가  세상으로 나가고 싶었던 시기는 현종 후반기로 나라는 부패로 찌들대로 찌든 시기였다. 과거에 응시했으나 당을 쇠퇴의 길로 이끈 간신 이임보(李林甫)의 농간으로 시험 참가자 모두가 낙방했고 과거의 길은 막혔다. 천 시인도 1967년 동백림 사건에 연루 되면서 고문과 옥살이로 삶은 산산 조각이 났고, 1971년에는 행려병자로 떠돌다가 정신병원에 실려 가기도 했다.

 

천 시인이 “저승 가는 데도/여비가 든다면//나는 영영/가지도 못하나?” 라고 묻는 대목에선 가슴 한 켠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설 명절이 와도 고향도 형제자매도 찾아보지 못하는 분들도 있고, 홀로 병상에 누운 분들도 있으리라. 명절 때 일수록 소외되고 방치된 이웃이 없는 가 살펴볼 일이다.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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