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인아웃-10] 호남 출정 무대 김무성의 정치史

최병국 기자 | 기사입력 2020/02/13 [09:15]

[총선 인아웃-10] 호남 출정 무대 김무성의 정치史

최병국 기자 | 입력 : 2020/02/13 [09:15]

전북 장수에 선대의 묘소를 두고 있는 파란과 비운의 정치인 김무성 의원이 지난해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으나, 4월 총선을 앞두고 (박근혜) 탄핵의 대연죄인을 자책하면서 호남출마 용의를 밝혔고, 호남선대위원장으로 거론되고 있다. 실현될 경우 막판 지역구도로 회귀될 수 있는 민감한 상황이다. 김무성 의원의 호남출마 용의 배경 및 파장 등을 살핀다.

 

YS의 재정국장으로 출발해 친박 좌장, 탄핵 죄인으로 전락

김무성 의원의 회환, 호남 출마 배경과 노림수

 

김무성 의원은 애국과 친일의 평가가 공존하는 전남방직의 창업주이자 식민지시대 및 해방정국에서 민의원(민주당) 의원을 역임한 기업가이자 정치인인 고 海村 김용주 옹의 4남 1녀 중 막내아들이다. 

 

조부 때까지 전라도 장수 등지에서 생활하다 부친(김용주)이 경남 함양으로 도주한 후, 다시 포항으로 건너가 정착했고, 김무성은 1976년 포항 동해제강 상무로 근무하면서 1978년 제10대 총선에 신민당 후보 공천을 신청했으나 당시 당수였던 素石 이철승 계열의 인사에게 밀려 뜻을 접었고, 1985년 김영삼 민추협 공동의장의 재정국장으로 정계 입문했다(정확하게는 1984년 10월).

 

  © 문화저널21 DB

 

정계입문 당시는 전두환 철권통치시대였고, 김영삼 민추협 공동의장의 재정을 부담하였기에 YS의 총애를 받으면서 최동영, 우형우의 맥을 잇는 상도동계 정치막내로 안착했다. YS 집권과 동시에 민정비서관, 내무차관을 역임한 후 제15대 총선(1996)에 당선(부산 남구을)되어 파란의 정치인생을 시작했다.

 

YS 퇴임 후 이회창 총재의 비서실장을 역임했으며, 박근혜 대표시절(2004~2006) 사무총장으로 발탁되었고, 이런 인연으로 2007년 박근혜-이명박의 치열한 당내 대권후보 경선국면에서 박근혜 캠프의 조직을 책임지는 친박 좌장역할을 했다. 이런 이유로 이명박 정부 출범 후 공천이 탈락되어 친박 무소속연대로 당선됐다. 이명박 정부시절 원내총무 수락 및 세종시 행정수도 반대 입장으로 박근혜의 분노를 일으켜 공천 탈락해 19대 총선에 불출마했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의 박근혜 후보 선거 대책총괄본부장을 맡아 선거를 승리로 이끌었으며, 박근혜 정부 출범 후 2014년 4월 24일 재․보궐 선거에 부산 영도구에서 당선되어 다시 국회로 돌아왔다.

 

국회로 돌아온 김무성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 및 친박 핵심들의 견제는 극심했다. 그럼에도 2014년 7월의 대표최고위원 선출 전당대회에서 친박 세력들의 총려거 지원을 받은 서청원 의원을 가볍게 물리치고 김무성 시대를 개막했다.

 

김무성 시대 개막과 더불어 각 여론조사 기관들은 경남중학교 동창들인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의 문재인 대표의 차기 대권 양강 지지율이 발표되기 시작했으며, 상당기간 이런 흐름이 지속됐다. 상황전개에 따라 김무성 대표가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 및 친박핵심들은 민감하게 반응했고, ‘정권을 넘겨주는 있는 한이 있더라도 김무성은 절대 줄 수 없다’는 결기가 곳곳에 감지되었다. 더불어 대안모색의 기류가 감지되면서 향후의 파란이 예고됐다.

 

김무성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 및 친박핵심들의 극렬 비토기류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띄우기로 연결되었고, 연이어 옥새 나르샤∼ 통칭되는 김무성 죽이기 공천파동으로 발전한다. 이런 과정에서 상당기간 유력한 대선후보로 거론되던 김무성 당대표는 이한구의 공관위에 출석하여 공천심사까지 받는 수모를 겪게 되었고, 유승민은 무소속으로 당선되어 탄핵을 주도한다(김무성과 유승민은 2007년 박근혜 캠프의 좌장 및 비서실장으로 박근혜를 지탱한 핵심적인 인물)

 

박근혜 대통령 및 친박핵심들의 독선적이고 패악적인 공천파동의 영향으로 선거 한 달 전까지 160석을 예상하던 새누리당은 무서운 민심의 심판을 받아 겨우 122석을 확보하면서 2당으로 주저앉았고, 선거패배의 책임을 지고 김무성 대표가 퇴진하고, 비정치인이자 법조인인 김희옥 비대위원장 체제가 구성됐다.

 

이후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가 TV조선을 통해 거론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었고, 급기야 박근혜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를 연거푸 하면서 헌법 개정이란 국면 돌파용 비상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러나 이미 사태는 걷잡을 수 없었기에 모든 처방은 아무런 효과를 발휘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당대표를 역임한 김무성 의원은 박근혜대통령의 책임론을 거론하면서도 탄핵에 부정적 입장을 밝혔으나, 들불처럼 번져 오르는 탄핵 열풍을 넘지 못해 급기야 탄핵을 주장하면서 탄핵찬성 입장표명과 함께 유승민 의원 등과 탈당 대열에 동참한다. 김무성 의원의 탄핵 찬성입장이 국회의 탄핵가결에 결정적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다. 이로서 탄핵주동자로 낙인찍힌 것이다.

 

▲ 2017년 바른정당 탈당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김무성 의원 (사진=문화저널21 DB)

 

탄핵주도란 멍에

정계은퇴(불출마) 선언했으나 업보 씻어내기 위해 호남 고심

아름다운 퇴장으로 명예 남겨야

 

1985년 김영삼 민추협 공동의장의 재정국장으로 정계 입문한 김무성 의원은 보기드문 정치력을 갖춘 감각과 직관의 정치인이다. 정치명인 3김(YS-DJ-JP) 및 조정과 타협의 명수 허주 김윤환 의원의 대를 잇는 파란과 회한의 정치인으로 그의 정치역정은 필설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다.

 

무대(무성대장)로 애칭되는 김무성 의원은 2014년 대권후보로 부상되는 순간부터 박근혜 대통령 및 친박핵심으로부터 혹독한 견제와 푸대접을 받았다. 당 대표인 김무성 견제 및 제거를 위해 공천파동이란 정치폭거를 일으키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방기 및 공천파동은 선거 참패로 나타나면서 탄핵 결의 (가결)의 동력으로 작용했다. 물론 이의 중심에 김무성 의원이 존재하고 있다.

 

탄핵 가결 및 현재에 이르는 과정에서 김무성 의원은 탄핵을 찬성하면서 새누리당을 탈당했고, 이후 다시 복당하여 보수단합을 주장하면서도 정치적 활동을 실질적으로 중단했고, 급기야 지난 해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정계은퇴를 예고했다. 정치 거목의 아름다운 퇴장으로 비춰 질수도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근간 보수대통합을 전제로 호남(여수, 광주 등)출마용의를 밝혔고, 더하여 한국당은 호남선대위원장설을 흘리고 있는 상황이다. 모두 선거공학적 발상으로 당선가능성 없는 상황에서 지역구도 출현의 불상사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1987년 11월 제12대 대선 진행과정에서 당시 민주정의당 노태우 후보가 전북 익산 등지에서 돌팔매 등을 당해 유세 등을 하지 못하는 불상사가 발생하는 바람에 직전까지 민주통일당 김영삼 후보에게 호의적이던 대구 경북 및 온건 보수충의 여론이 일거에 노태우 후보 지지로 돌아서 선거구도가 급변함으로서 노태우 후보의 당선에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는 것은 생생한 역사적 현실이다.

 

더하여 1992년 12월 제13대 대선 직전 부산 대연동의 초원복국집에서 지역감정을 부추킨 김기춘 등의 회합파동은 또 다른 역사의 상처로 기록되어 있다.

 

조국 사태로 출발되어진 이념의 격화로 우리 사회는 거의 내전의 상황이며, 그 결정판은 이번 총선이다. 이념 및 정쟁 격화로 호남 전역은 60% 이상 민주당 초강세로 넘어가 버렸고, 이에 대응하여 영남권은 대구·경북을 넘어 부산·울산·경남까지 한국당이 잠식해 들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을 모를 리 없는 달관의 정치인 김무성 의원이 당선 가능성이 전혀 없는 호남 출마용의를 흘리는 배경이 무엇인지... 보도를 접하고 있는 많은 국민들은 한 시대를 풍미한 대정치인 김무성 의원이 아름다운 불출마 선언을 뒤집으면서 도대체 무엇을 위하여? 무엇을 유도하려고? 겨우 겨우 봉합 해가려는 지역구도(갈등) 소환 목적이 아닌지 의구심을 증폭시키고 있다. 

 

우려와 같이 김 의원이 계란세례 등 지역 구도를 유발시켜 막판 선거판세를 변경시키려 한다면 이는 분명 잘못된 일이고, 역사에도 주홍글씨가 아로새겨질 것이다.

 

김 의원이 매년 호남에 있는 선대들의 묘소를 참배하고 평소 실질 호남인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또한 극부유층인 김 의원이 월남한 극빈층인 경남중학교 동기동창생 문재인 현 대통령을 상당기간 마음 다치지 않게 살뜰히 챙겨왔다는 사실을 기자는 현장에서 수없이 들었다.

 

그러나 현재는 차기 대권까지 염두에 둔 전쟁과 같은 총선국면이다. 물론 이와 같은 현재 상황은 문재인 대통령 및 집권 주류층의 지나친 진영논리에 기인한 측면이 크다. 그런 상황은 많은 국민이 이미 알고 있기에 총선에서 자연스럽게 심판되어질 것이다. 김 의원 같은 대정치인이 정치적 연고 없는 호남지역 출마나 호남지역 선대위원장을 맡으면서 이를 선동할 일을 절대 아니다.

 

사실 탄핵은 박근혜대통령의 국정방기 및 욕심이 빚어낸 자업자득의 결과이지 김무성 의원의 책임은 아니다. 대역죄인이란 자책 또한 합당치 않다. 국민들은 풍운아 김무성 의원의 고요하고 명예로운 퇴장을 기대하고 있는 중이다.

 

문화저널21 최병국 기자

  • 반역무셍이숭민 20/02/13 [11:48] 수정 | 삭제
  • 1950년 한국전쟁, 수많은 국내외 젊은 피가, 추위와 극한의 두려움속에, 고향을 그리면서, 눈을 감았을것이다. 그들이 지겨낸것이, 무엇인가, 대한민국 정체인, 헌법이 아닌가. 지켜내기 위해, 수만은 목숨을, 바친 반면에, 헌법을 농단하고, 국민을 기만하는, 무리들이 있어서, 분노를 금할 수가 없다. 2016년 12월 9일, 국민다수결 대통령과 정권을, 법판결 근거 전무한 상태에서, 정지 퇴진시킬 권한을, 누가, 300놈 다수결에, 주었는가? 누구맘대로, 헌법과 법을 무시하고, 300놈 다수결이,국민을 처벌할 수 있는가? 반헌법 국민주권 침탈범, 20대국해 무리들은, 즉시 자진해산하고, 처벌을 받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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