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약에게 / 김윤희

서대선 | 기사입력 2020/02/24 [10:29]

[이 아침의 시] 약에게 / 김윤희

서대선 | 입력 : 2020/02/24 [10:29]

약에게

 

비상처럼 고고한 약들도 어찌

 

밥이 필요치 않으리

 

집의 약장 속에서 도둑고양이처럼

 

두 눈 빛내며 숨죽이고 배고파하고 있는 암흑의 약들

 

너의 친절한 밥이 되어 주겠다

 

이미 늙어버려 효능이 어떨지 모르지만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허리디스크

 

최근 관절염까지

 

나는 그리 싱싱한 먹이가 되지 않는 줄은 알지만

 

약 너에게 나를 바친다

 

뼈는 뼈대로 피는 피대로 

 

내 모든 불량(不良)을 오늘은

 

통째로 너에게 먹인다

 

내가 앓고 있는 가장 나쁜

 

생각을 너에게 바친다

 

너의 끝없는 욕망 앞에 백기를 든다

 

# “약”도 밥이 필요하구나. ‘식 후 복용’이라고 적힌 약 봉투 속에서 줄줄이 사탕처럼 따라 올라오는 ‘아침, 점심, 저녁’용 약봉지를 들여다보면 약이 필요한 것이 나인지 약이 나를 필요로 하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약봉지 속 다양한 모양과 색깔의 약들이 “두 눈 빛내며 숨죽이고 배고파하고” 있는 것만 같아서 억지로 밥을 먹고, 입을 크게 벌리고 고개를 약간 뒤로 젖히고 약을 털어 넣는다. “나는 그리 싱싱한 먹이가 되지 않는 줄은 알지만//약 너에게 나를 바친다”는 심정으로...

 

‘병으로 죽기 보다는 약으로 죽을 수도 있다’는 역설은 오늘날 처방되는 의약품의 순기능뿐만이 아니라 역기능도 살펴야 한다는 것이리라. 약물 복용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약물 의존성의 문제이다. 약물에 대한 의존성은 습관성 약품이나 마약류만이 아니다. 개인이 구입하여 복용하는 진통제나 두통약, 제산제 등도 포함된다. 장기적으로 약을 복용하게 되면 위장, 신장, 간장, 조혈(造血)등의 기능을 손상시킬 수 있다는 위험성이 있음에도 “너의 끝없는 욕망 앞에 백기를 든” 사람처럼 외출 시나 여행 중에 약을 지니고 다니지 않으면 불안해지기도 한다. 

 

‘나랏님이 약이 없어 죽었나’,  ‘무슨 보(補) 무슨 보(補) 하여도 식보(食補)가 제일 이니라’라는 옛말들은 쓸데없는 약물남용을 경계하는 말이다. ‘그렇게 해서 병이 났으면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약이다.’ 박제가의 <북학의北學議> 서문에서 전언하는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본다.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seodae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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