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그 사람을 가졌는가 / 함석헌

서대선 | 기사입력 2020/03/02 [10:00]

[이 아침의 시] 그 사람을 가졌는가 / 함석헌

서대선 | 입력 : 2020/03/02 [10:00]

그 사람을 가졌는가

 

만리 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여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두거라“ 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 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마음이 외로울 때에도/“저 맘이야”하고 믿어지는” 그런 사람이 곁에 있다면 얼마나 마음이 든든할까. ‘태초에 관계가 있었다’라는 마틴 부버(Martin Buber, 1878-1965)는 인간 존재의 근본적 사실은 ‘인간과 함께하는 인간이다.’라고 하였다. 우리가 ‘나’라고 말할 때, 그것은 ‘나-너’의 관계 속에서 ‘나’이거나 ‘나-그것’의 관계 속에서 ‘나’의 존재가 의미를 갖는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나-너’와 ‘나-그것’의 근원적인 차이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나-너’ 사이에서 ‘나’는 주체성으로서의 자기를 의식한다. 주체성을 깊이 인식하고 있는 ‘나'는 어떤 인과율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존재로서 자신의 전인격을 걸고 타자와 관계를 맺으려한다. 그러므로 ‘나-너’ 사이에서 ‘너’는 참다운 대화가 이루어지는 인격 공동체이다. ‘나-너’의 관계는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현존의 ‘너’를 만날 뿐만 아니라, ‘영원한 너’의 참 모습을 보게 되고 ‘너’의 나부낌을 듣게 되어 참다운 인격적 존재의 심층까지 도달 할 수 있게 된다고 보았다. 

 

‘나-그것’의 관계란 서로 참된 인격적 존재로 만나지 못하고 타자를 집착이나 소유의 대상으로 삼으려 하거나, 특정한 이해관계나 억압의 대상으로 여기게 되어 상대의 세계를 파괴하고 자기도 무너지면서 스스로 분열된 세계로 떨어져 버리는 관계이다. 이런 세계 속에서는 독백이나 방백과 같은 일방적인 언어와 공격적이고 잔인하며 공허한 언어의 배설들이 난무하게 된다는 것이다.

 

힘들고 어려운 때 일수록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아니” 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런 사람,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저 하나 있으니” 하며/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곁에 있다면 정말 든든하리라.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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