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섭의 복싱 스토리] 최초의 세계선수권 메달리스트 김정철

조영섭 기자 | 기사입력 2020/03/23 [12:00]

[조영섭의 복싱 스토리] 최초의 세계선수권 메달리스트 김정철

조영섭 기자 | 입력 : 2020/03/23 [12:00]

해마다 이맘때면 상춘객들로 분주한데 반해 요즘은 전 국민이 바이러스19가 속히 마침표를 찍을 날만을 기다리는 가운데 자영업자들의 고충은 일각이 여삼추 같다. 누구나 살다보면 의지와 무관하게 감당하기 힘들고 괴로운 순간이 불청객처럼 찾아온다. 하지만 어떠한 경우라도 인내하며 맞서 이겨 내야 한다. 지금의 고통은 잠시 지나가는 먹구름에 불과하며 조금 시간이 흐른 후에 눈부신 태양을 보게 될 것이란 의연함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 파주출신의 복서 박윤수 와 김정철(우측)    ©조영섭 기자

 

며칠 전 정부수립 후 최초의 세계 선수권대회 동메달을 획득한 김정철이 오랜 미국생활을 정리하고 동향의 복싱후배이자 역술인 박윤수와 동행, 기자의 체육관을 찾아 다과를 함께하며 지난날을 회고하는 유익한 시간을 가졌다. 

 

복서 김정철은 1978년 유고 베오그라드에서 벌어진 제2회 세계선수권 밴텀급에서 대한민국 복싱사상 최초로 동메달을 목에 건 한국 아마복싱의 상징적인 복서다. 1957년 3월20일 경기도 파주 출신의 김정철은 1959년 6월, 파주에 보육원을 설립한 이사장인 김경일의 5남 2녀 중 4남으로 파주 율곡중  재학시절부터 축구, 배구 등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여준, 선천적으로 기초체력이 탄탄한 소년이었다. 

 

1973년 상경해 동양공고에 입학한 그는, 그해 신한 복싱체육관에 입관해 이한성 사범의 조련을 받으며  박찬희, 박인규, 임병진 등 기존의 스타급 복서들이 포진된 그곳에서 선배들과 어울려 복싱을 수학 하면서 급성장세를 보인다. 특히 마치 바위를 폭파시키는 다이너마이트처럼 메카톤급 파워를 자랑하는 그의  카운터에는 강한 드라이브(탁구 경기에서 강력한 회전을 주는 타법)가 걸려있어 상대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 공포의 사우스포 강타자 김정철     ©조영섭 기자

 

이 주무기로 그는 선수층이 두터운 라이트 플라이급에서 74년 제10회 서울 신인대회와 제24회 학생선수권 대회를 석권, 발판을 마련한 후 각종 대회에서 홍진호(수경사), 마수년(독립문체), 장인수(이리체), 이재훈(영등포체), 임승룡(한국체대)과 후에 IBF 플라이급  세계정상에 오르는 권순천(안산체) 등 난적들을 차례로 꺽으며 도약을 한다.  

 

당시 대한체육회에서 선정한 우수선수 장학생에 선발돼 주목을 받은 김정철은 졸업반인 75년 3월 제3회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  선발전 결승에서 이리 남성고의 천적 김운석과 다운을 주고받는 치열한 타격전 끝에 판정으로 패하면서 지독한 성장통을 겪기도 했다. 김운석은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 본선(필리피)에서 최우수상 받은 복서였다.  

 

당시 플라이급에서 강희용이 유옥균을 누르고 최우수선수상을 받았고, 코크급의 한창덕(중산체), 라이트급의 고려권투 체육관의 이이다노(본명.이정식), 라이트 미들급의 박일규(충남체)도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주목을 받은 대회 였다.

 

▲ 동국대 출신의 밴텀급 듀오인 김정철(왼쪽과)과 황철순     ©조영섭 기자

 

김정철은 76년 2월 창단된 동국대에 동기생인 황철순과 함께 진학한다. 명장 김진영(44년 김제) 감독이 사령탑으로 임명되면서 지휘봉을 잡은 동국대는 이후 김정철, 황철순을 시발로 황충재, 정용범, 김광선, 박진선, 유장현, 변정일, 조인주, 이훈, 김재경, 박종심 등 우수 선수를 지속적으로 대거 배출한 복싱명문 으로 성장한다. 

 

한편, 김정철과 황철순, 이 둘은 같은 학번에 같은 체급에 같은 경찰 행정학과로 묘한 공통점을 가졌는데, 이후 대립각을 세우며 필생의 라이벌 관계로 발전한다. 김정철은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최종선발전에 한 체급 올린 플라이급으로 진출, 김광수(광주체), 유옥균(광주체), 강희용(대구 구일체)과 펼친 맞대결 첫판에서 강희용을 제압한 후 본인에게 RSC 패를 안긴 바 있으며, 김광수를 꺽고 올라온 유옥균 과의 설욕전에서 판정승하면서 몬트리올 올림픽호에 승선한다. 

 

당시 올림픽 출전 대표팀 명단은 라이트 플라이급 박찬희, 플라이급 김정철, 밴텀급 황철순, 페더급 최충일, 라이트 웰터급 박태식,  웰터급 김주석 등 6명 이었다 올림픽 출전은 선수들에겐 어느 경기보다 자긍심이 묻어난 성스러운 대회다.    

 

근대 올림픽 창시자 피에르 드 쿠베르탱은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승리가 아니라 투쟁의 과정’이라 설파하면서 ‘본질적인 것은 이기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훌륭하게 싸우는데 있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현대 올림픽은 ‘스테이트 아마추어리즘’이라는 사조 때문에 마치 국력의 전시장으로 변형되어 올림픽은 총소리 나지 않는 전쟁터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출전선수들은 싸워서 이기는 자만이 존재한다는 강한 신념으로 무장해 한국체육의 사활을 걸고 올림픽에 출전한다.  

 

해방이후 당시 7차례 올림픽에 출전한 한국스포츠가 획득한 메달은 모두 12개. 이중 절반인 6개(은3, 동3)가 복싱종목에서 나온 수확이기에 큰 기대를 걸었지만 결론적으로 말하면 6명 전원 노메달에 그쳤다. 김정철은 올림픽 본선 1회전에서 태국의 솜차이를 판정으로 꺽었지만, 2차전에서 불가리아의 게오르규에게 판정패하며 탈락하는 등 전원이 고배를 마셨다. 이후 그는 부상으로 1년 4개월의 공백 기간을 딛고 78년 3월, 제2회 세계선수권 선발대회에 한 체급 올린 밴텀급으로 출전, 7경기 중 6경기를 KO로 승리하며 부활에 성공한다.

 

▲ 78년도 세계선수권대회 선발전 경기에서의 김정철     ©조영섭 기자

 

이때 황철순(한국화약)이 복병 곽동성(원광대)과의 준결승에서 섬광같이 터지는 라이트 카운터에 한차례 다운을 당하는 고전 끝에 판정패하면서 이들의 맞대결은 이뤄지지 않았다. 김정철은  곽동성과의 결승에서 2회 주심이 주의를 주려고 양 선수에게 스톱을 외치는 순간 ‘콜’ 을 듣지 못한 상태로 무의식중에 내뻗은 일격에 무방비 상태의 곽동성이 RSC로 패한 경기로 기억된다. 

 

수년전 기자는 그의 사범인 이한성 옹에게 그때 김정철의 타격은 명백한 반칙타가 아니었냐고 추궁(?)하자, 실어증(失語症)때문에 대화를 전혀 나눌 수 없는 그분은 기자의 손을 꼭 잡으며 무언으로 인정을 했다. 기자는 옆에 계시는 신한체육관 후견인 역할을 한 당시 아마복싱의 실세인 조철제 전무 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지자 ‘그 때가 언제인데 자네가 그걸 기억하느냐’고 반문 후 진위를 떠나, 그래도 우리 정철이가 세계대회 나가서 메달을 획득했으니 더 이상 확대해석은 하지 말라며 웃으며 말했다.

 

이한성과 조철제 전무는 1935년 청량리 태생의 죽마고우로 이한성의 외삼촌이 1936년 일장기를 달고 베를린 올림픽에 출전한 복싱 라이트급의 이규환 선생이었고, 조철제 전무는 70년대  아마복싱을 쥐락펴락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김택수 대한체육회장의 신망이 두터운 체육인 이었다. 

 

▲ 김정철의 후견인 역활을 했던 이한성코치와 조철제 전무     ©조영섭 기자

 

김정철은 본선에서 일본선수에 2회 RSC 승, 2차전에서 소련 선수에 판정승, 8강에서 아프리카 선수권자인 케냐의 모데스티 다프니에 3ㅡ2 승리를 거두고 준결승에 진출했지만, 손가락 부상과 버팅으로 안면에 심한 부상을 입어, 다음 경기에 불참하면서 동메달에 만족했다. 그 동메달은 김광섭, 오인석, 임병진, 오영세, 장영길 등 출전한 6명의 대표선수 중 유일한 메달이었다. 

 

1978년 10월30일, 김정철은 방콕아시안게임 선발전에서 황철순과 일전을 치른다. 문성길, 허영모전  최충일, 오영세 전에 필적할 만한 역대 3대 라이벌전으로 주목을 받은 이 경기는, 별다른 타격전 없이 소문난 잔치 먹을 것 없는 완승도 완패도 아닌 황철순의 싱거운 판정승 이었고, 황철순은 본선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아시안게임이 종료된 이듬해 2월 태능선수촌은 난리가 났다 황충재, 최충일에 이어 김정철마저 프로로 전향하기위해 강화 훈련 중인 태능선수촌에서 퇴촌을 한 것이다. 당시 김정철은 국제아마추어복싱연맹(AIBA) 밴텀급 랭킹 9위였다. 

 

79년 1월 프로로 전향한 김정철은 WBA 주니어 페더급 세계랭킹 6위에 랭크되면서 82년 2월, 3년 1개월 동안 9전 6승 (5KO) 3패의 전적을 기록한 후 가족이 있는 LA에 정착, 사업을하다가 33년간의 이국 생활을 청산하고 작년에 귀국, 고향 파주에 머무르며 잠시 숨고르기를 하면서 인생 3회전을 준비하고 있다. 그의 건승을 바란다. 

 

조영섭

문화저널21 복싱전문기자

 

현) 서울복싱연맹 부회장

현) 문성길복싱클럽 관장 

 

 

전) 82년 로마월드컵 대표선발전 플라이급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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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교덕 2020/03/27 [23:39] 수정 | 삭제
  • 김정철 선수를 잊지못하는 권투팬입니다 프로데뷔후 백종호선수와 두차례 라이벌전 KBS권투에서 중계했는데
  • 끈아 2020/03/25 [07:25] 수정 | 삭제
  • 유익한 기사 잘 보았습니다. ㅎㅎ 최초라니 정말 멋있습니다.
  • 하늘2 2020/03/24 [08:36] 수정 | 삭제
  • 지금도 기억합니다 로프에 기댄체 들어오는 상대의 힘을 이용해 펀치를 툭 갔다 대는 카운터블로가 뛰어났던 복서였죠
  • 하늘2 2020/03/24 [08:29] 수정 | 삭제
  • 내용이 디테일 하네요^^
  • 하늘2 2020/03/24 [08:28] 수정 | 삭제
  • 디테일하게 잘 쓰셨네요
  • 하늘2 2020/03/24 [08:27] 수정 | 삭제
  • 기사 디테일하게 잘 쓰셨네요
  • 폴민준 2020/03/23 [17:03] 수정 | 삭제
  • 잊혀져가는 영웅들의 이야기를 꺼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랜 책장 속에서 좋은 책을 발견한 느낌입니다
  • 폴복 2020/03/23 [17:02] 수정 | 삭제
  • 잊어버릴수 있었던 우리의 영웅들의 이야기를 꺼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폴복싱 2020/03/23 [17:00] 수정 | 삭제
  • 항상 잊혀져가는 영웅들의 이야기를 꺼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랜책장속에서 잊혀진 책을 꺼내 읽는 기분이네요
  • 꿀오소리 2020/03/23 [14:03] 수정 | 삭제
  • 잘 읽었습니다 ~^^ 감사합니다
  • Bear71 2020/03/23 [13:53] 수정 | 삭제
  • 먹구름 아래 고통의 시간이지만 기자님의 좋은 기사로 유익하게 보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클린 2020/03/23 [13:39] 수정 | 삭제
  • 유익한 기사 즐감했습니다.
  • 단지 2020/03/23 [13:37] 수정 | 삭제
  • 잘 읽고 갑니다.옛날을 회상한 유익한 기사에 즐감했습니다.
  • 2020/03/23 [13:23] 수정 | 삭제
  • 잘 읽었습니다~
  • 베냐민 2020/03/23 [13:22] 수정 | 삭제
  • 근대 올림픽 창시자 피에르 드 쿠베르탱은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승리가 아니라 투쟁의 과정’이라 설파하면서 ‘본질적인 것은 이기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훌륭하게 싸우는데 있다’고 역설했다 멋집니다!!
  • 복싱 2020/03/23 [12:56] 수정 | 삭제
  • 유익한 기사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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