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한국전쟁 70주년…한국의 전기통신⑧

[제2기] 대한제국의 전기통신 (1897~1910년) 바다 속으로 통신개통

이세훈 | 기사입력 2020/04/09 [17:55]

[기획] 한국전쟁 70주년…한국의 전기통신⑧

[제2기] 대한제국의 전기통신 (1897~1910년) 바다 속으로 통신개통

이세훈 | 입력 : 2020/04/09 [17:55]

[제2기] 대한제국의 전기통신 (1897~1910년) 바다 속으로 통신개통

 

일본의 부산-나가사키간 해저전신선 개통

 

우리나라 최초의 해전전선은 부산-일본 나가사키 간 선로다. 덴마크 대북부전신회사는 1870년 8월 25일, 일본 정부와 협약하여 상해-나가사키 및 나가사키-블라디보스토크 간의 해저전선 부설권을 얻어 이를 가설 운영하고 있었다.

 

나가사키로 부터 대마도를 경유해 부산에 이르는 해저전신선 신설 면허권 발급을 일본 정부에 출원했다. 부산-나가사키 간의 해저전선은 일본의 국방, 정치, 경제 등 여러 면에서 절대 필요했다.

 

1882년 구식 군대의 변란 임오군란을 전후한 조선의 정치적 급변으로 일본은 조선의 신속한 통신망이 절실했다. 1883년 3월 3일 조선과 일본 사이에 해저전선 부설에 관한 ‘부산구설해저전선조약’이 체결되어 한·일간의 해저전선은 1884년 2월 25일 개통된다.

 

이 조약에는 25년간 운영권을 보장하고 전신업무는 일본이 담당하며 제3국에 전신가설을 승인할 수 없다는 독소조항이 있다. 해외전선일 경우 반드시 부산에 있는 일본전신국과 연결해야 한다는 속박조항도 있었다. 이처럼 조선정부의 전신사업은 치명적 한계를 갖고 출발했다.

 

영국의 거문도-상해간 해저전신선 개통

 

1884년 12월 갑신정변 이후 청나라의 간섭과 압박이 심해지자 명성황후를 중심으로 한 조선의 정계는 청나라의 간섭을 싫어하게 된다. 이러한 틈을 타서 러시아는 친 러시아 세력을 키우는데 성공한다.

 

▲ (좌)해저동축케이블, (우)해저광케이블 (자료,LS전선) 


그리하여 러시아의 보호를 요청하는 비밀협정 체결을 추진하는 한편 1888년 조선과 러시아가 두만강지역의 국경무역에 관한 육로통상조약을 맺어 국경을 통한 무역이 활발해진다. 이러한 러시아 세력의 남하는 당시 러시아와 대항하고 있던 세계 각지 나라의 입장에서는 커다란 위협이 되었다.

 

영국은 동양함대를 파견하여 전라도 거문도를 불법으로 점령하여 러시아 세력의 진출에 대처했다. 거문도는 러시아 함대의 남하를 저지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영국 군함 3척이 거문도를 처음 점령한 것은 1885년 4월 23일이다. 그들은 병영을 세우고 포대를 쌓는 등 방어 요새시설을 갖추었다. 또한 중국 상해에 이르는 해저전선을 부설하여 그 군사시설을 강화했다.

 

조선정부의 거듭된 항의와 청나라의 중재 결과로 영국은 거문도를 점령한지 2년이 지난 후인 1887년 2월 27일에 철수한다. 당시 영국은 청나라의 주선으로 어떠한 나라도 조선의 영토를 점유하지 못한다는 다짐을 러시아로부터 받아낸 것이다. 영국군의 군사시설로서 2년 동안 사용된 거문도-상해간 해저전선은 영국군의 철수와 함께 없어졌다.

 

바다 속 초고속 통신망


최초의 해저전선은 1850년 영국과 프랑스 간에 놓였다. 과거 통신용에도 구리선을 사용했으나 현대는 전송량과 속도에서 이점이 큰 해저 광케이블을 사용한다. 전 세계 인터넷 해외 연결망의 약 90% 이상이 해저 광케이블을 이용한다. 과거 무선통신을 이용한 대륙 간의 통신에서 현대는 바닷 속으로 연결된 해저 케이블로 세계 초고속 통신망을 이루고 있다.

 

국내의 경우 1993년 울릉-강원호산 159Km, 1996년 제주-전남고흥 191Km, 2000년 제주-경남남해 236Km 광케이블이 시설되었다. 부산, 거제, 태안, 제주에서 세계 여러 나라로 국제 해저케이블이 개통되어 운용하고 있다.

 

이세훈 

KT 시니어 컨설턴트

한국경제문화연구원 ICT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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