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낙화시절 / 서정춘

서대선 | 기사입력 2020/04/13 [08:29]

[이 아침의 시] 낙화시절 / 서정춘

서대선 | 입력 : 2020/04/13 [08:29]

낙화시절

 

누군가가

<이 강산 낙화유수 흐르는 봄에>

문밖 세상 나온 기념으로

사진이나 한 방 찍고 가자 해

사진을 찍다가 끽다거를 생각했다

 

그 순간의 빈틈에

카메라의 셔터가 터지고

나도 터진다

빈몸 터진다

 

<이 강산 낙화유수 흐르는 봄에> 

 

# 봄에 피는 꽃들에 더 유정(有情)한 마음이 들고 눈길이 가는 이유는, 봄에 피는 꽃들이 견딘 인내의 시간과 추운 계절을 꿋꿋하게 이겨낸 지구력 때문이리라. 봄에 피는 꽃들의 꽃눈은 이미 지난 가을에 맺힌 것이다. 가을에 맺힌 꽃눈들은 낮은 온도에서 겨울이라는 한철을 견디고 온도가 오르는 봄이 와야 피어날 수 있다. 이른 봄에 꽃이 먼저 피는 것은 많은 벌과 나비와 곤충들이 아직 지상으로 돌아오지 않은 때이기에 혹여 무성한 이파리에 가려진 꽃이 제 할 일을 온전히 완수할 수 없게 되는 것을 피하게 해주는 유전자의 전략이다. 새나 바람에 의해 결실을 맺는 조매화(鳥媒花)나 풍매화(風媒花)가 많은 봄꽃들이기에 '꽃이 진다고 바람을 탓’하는 투정을 부릴 수만은 없으리라. 

 

자신의 할 일을 끝낸 꽃들은 지는 것이 마땅하다. 꽃 시절이 아무리 좋아도 일 년 삼백육십오일 꽃만 피어있게 된다면, 그 나무는 오래 살지 못할 것이다. 꽃이 져야 연초록 이파리가 돋아나 햇빛과 물과 공기를 버무려 씨앗들을 먹이고, 가지들의 힘을 기르고, 나무둥치에 나이테를 새겨 넣어 나무의 역사를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이다.

 

“<이 강산 낙화유수 흐르는 봄에>”, 머리 반백인 친구들이 안부를 물어 온다. 겨우내 아프지는 않았는지, 가내 두루 무탈한지, 서로서로 도닥여주며 “문밖 세상 나온 기념으로/사진이나 한 방 찍고 가자”한다. 흰 머리칼, 굽어진 등, 조금 더 줄어든 키, 주름진 손, 지나온 삶의 춥고도 지난했던 시간들이 눈주름 사이에서 눈웃음 꽃으로 피어나고 있다. 내년에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꽃 멀미처럼 회오리치는 생각 접고 따스한 차나 한 잔 하자고 말하려는데, “그 순간의 빈틈에/카메라의 셔터가 터지고/나도 터진다/빈몸 터진다”. 지금 여기가 ‘화양연화(花樣年華)’로구나.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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