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사월의 노래 / 박목월

서대선 | 기사입력 2020/04/13 [08:31]

[이 아침의 시] 사월의 노래 / 박목월

서대선 | 입력 : 2020/04/13 [08:31]

사월의 노래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목련꽃 그늘 아래서 긴 사연의 편질 쓰노라

클로버 피는 언덕에서 휘파람을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깊은 산골 나무 아래서 별을 보노라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 어린 무지개 계절아

 

# 인간 세상은 먹구름 가득하여도 자연은 제시간을 어기지 않고 찾아온다. 눈발 흩날리던 이월, 영하의 날씨에도 뒷산 둔덕에는 복수초가 노랗게 꽃 문을 열더니, 경칩 무렵엔 양지꽃들이 하루 종일 아기처럼 종알종알 옹알이를 하였다. 춘분 무렵에는 쪽동백 생강나무가 여윈 가지를 들어 올리며 해바라기를 하고, 발끝에선 냉이, 꽃다지, 민들레가 푸른 이파리를 흔들며, 지나는 바람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사람들에게는 힘든 삼월 이었어도 버드나무는 우듬지 까지 물이 올라 연두, 연두하며 흔들린다. 겨우내 연못을 덮었던 두꺼운 부직포를 걷어 내니, 연못 바닥 흙속에 잠들어 있던 붕어들이 꼼지락 거리며 기지개를 켠다. 연못 속에 푸른 하늘이 들고 뭉게구름이 들리니 새들도 이 작은 연못에 들려 목을 축이고, 도롱뇽도 반투명 튜브 속에서 깜빡이는 알들을 키우고 있다. 남쪽에선 매화소식이 들려오고 자연의 삼월이 지나가고 있다.

 

사월이 오면, 사람 세상 뒤덮은 먹장구름 걷히고 ‘학교 교정에 꽃등 불을 켠 목련꽃 피고, 꽃 그늘 아래로 바이올린 케이스를 든 소녀가 다가서고(이 풍경 묘사는 필자가 박목월 선생에게 직접들은 ‘4월의 노래’ 창작 동기이기도 하다.), 꽃그늘 아래로 무너져 내리듯 주저앉아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목련꽃 그늘 아래서 긴 사연의 편지를 쓰는 풋풋한 소년을 볼 수 있을 까. “아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고 떠나며, “눈물 어린 무지개 계절”을 노래할 수 있을까. 목련꽃의 계절, 4월이 오고 있다.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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