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희망 / 신현정

서대선 | 기사입력 2020/04/20 [08:27]

[이 아침의 시] 희망 / 신현정

서대선 | 입력 : 2020/04/20 [08:27]

희망

 

앞이 있고 그 앞에 또 앞이라 하는 것 앞에 또 앞이 

있다

어느 날 길을 가는 달팽이가 느닷없이 제 등에 진 

집을

큰소리 나게 벼락 치듯 벼락같이 내려놓고 갈 것이

라는 데에

일말의 기대감을 가져보는 것이다

그래 우리가 말하는 앞이라는 것에는 분명 무엇

이 있긴 있을 것이다

달팽이가 전속력으로 길을 가는 것을 보면 

 

# 어디로 가는 것일까? “달팽이가 전속력으로 길을 가는 것을 보면” 궁금해진다. 어디쯤이 “달팽이”가 도달하고 싶은 곳일까. 그곳엔 달팽이가 목표로 하던 것이 이루어지는 곳일까. 달팽이가 소망하는 것은 무엇일까.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달팽이처럼 “앞”으로 나아가면, “느닷없이 제 등에 진/집을//큰소리 나게 벼락 치듯 벼락같이 내려놓고 갈” 수 있을까.

 

“앞”이라는 말 속엔 방향이 들어 있고, 목표가 들어 있고, 속도가 들어 있고, 순서가 들어 있고, “희망”이라는 말이 들어 있다. “앞”으로 간다는 방향 속에는 동서남북의 방향뿐만 아니라 지구는 둥그니까 360도 원의 방향 모두가 “앞”이 될 수 있고, 땅속과 하늘 위의     광대한 우주까지도 “앞”이 될 수 있다. “앞”을 목표로 본다면 우리가 의미를 부여하는 모든 분야가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앞”을 속도로 본다면 중력 하에서 직선운동, 포물선 운동, 원운동으로 “앞”을 선택할 수 있다. “앞”을 순서로 본다면 우리는 ‘앞선’ 사람들, ‘앞선’ 역사, ‘앞선’ 사건들에서부터 “앞”으로 일어날 미래의 모든 것까지를 포함할 수 있으리라. 그러기에 “앞”이란 말은 “일말의 기대감”을 갖게 한다.

    

달팽이도 자기 앞의 생을 위해 “전속력으로 길을” 간다. 우리도 ‘왜 살아야 하지’라고 질문하기보다,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내 삶에게 ‘답을 해 주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때론 “희망”이 ‘고문’처럼 우리를 주저앉고 싶게 만들지라도 “희망”이란 말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한 “앞”이란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앞이 있고 그 앞에 또 앞이라 하는 것 앞에 또 앞이/있다”고 믿으며 “앞”을 향해 나간다면 ‘앞선 사람’, ‘앞선 세상’, ‘앞선 역사’를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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