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가자미 / 조창환

서대선 | 기사입력 2020/06/15 [09:23]

[이 아침의 시] 가자미 / 조창환

서대선 | 입력 : 2020/06/15 [09:23]

가자미

 

한 세상 가자미처럼 살았노라고 그가 말했다

 

밟으면 밟히고, 누르면 눌리고

 

갖은 수모와 굴욕과 수치를 견디며

 

납작 엎드려 살았노라고

 

말하는 입 꼬리가 파르르 떨려왔다

 

가지미처럼!

 

가자미처럼?

 

신림역 출구 앞에서 붕어빵 굽던 아줌마가

 

피식 웃었다

 

배부른 소리 마라

 

 나는 평생 가자미 부러워하며 여기까지 왔다

 

가자미 욕되게 말고 편하게 엎드려라

 

가자미처럼 살 수 있어 부러울 게 없는 날 반드시 온다

 

# “파르르” 입 꼬리까지 떨어가며 “밟으면 밟히고, 누르면 눌리고//갖은 수모와 굴욕과 수치를 견디며//납작 엎드려” 살았노라고 그가 말했다. 자신이 속한 조직에 근무하는 사회적 관계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조롱이나 비난, 무시를 당하게 되면서 느끼게 되는 고통과 분노를 어떻게 다른 사람들이 알 수 있을까. 조직 속에서 부여된 역할을 수행하면 ‘인정욕구’가 발생하고, 인정욕구가 충족되길 바라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인정욕구는 자신의 ‘권리’를 느끼게 하며,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인격성’을 실현할 수 있기를 기대하게 한다. 그러나 개인에 대한 자유와 권리가 제한되고 억압되는 조직이라면, 개인의 존엄성과 인격성과 인정욕구도 무시되기 쉽다. 

 

조직 속에서 인정받기 위해 회사 발전에 도움이 되는 계획을 밤새워 작성하고, 근무 외의 시간까지 헌납해가며 작업을 수행하기도 하면서 자신은 조직에 꼭 필요한 존재라고 스스로 자부해 본다. 그러나 조직에선 개인의 헌신과 능력을 일회용 휴지처럼 사용하면서 막상 승진 때가 되면 ‘아빠 찬스’, ‘권력 찬스’ 등의 낙하산 부대들이 중요 보직은 모두 차지한다. 말하기 쉬워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된다고 하지만 조직원이 된 이상 조직의 규칙을 거부하기도 어렵고, 혼자서 조직의 문제점들을 혁신하기도 어려운 조건들로 구성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자미처럼!” “납작 엎드려 살았노라고” 말했던 그에게 “신림역 출구 앞에서 붕어빵 굽던 아줌마가” “배부른 소리 마라”며, “피식 웃는” 것이 아닌가. 인정욕구 때문에 고통스러웠다면 굶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밟으면 밟히고, 누르면 눌리”며 수치와 굴욕을 견디느라 “가자미”가 된 것 같아 분하고 힘들었어도 고단한 몸을 누일 지상의 방 한 칸은 있었다는 것이다. “붕어빵 아줌마”는 묻고 싶은 것이다. 철거 딱지가 닥지닥지 붙어있고 떨어져 나간 문짝 하나 고칠 수 없는 영하의 무허가 움막에서,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철거반의 포크레인과 삽날에 가위눌리며 선잠을 자본적은 없었다는 것 아닌가. 공중화장실 수돗물로 배를 채우고 노랗게 빙빙 도는 하늘 아래 기진해 쓰러져 본 적도 없었다는 것 아닌가. 일 년, 삼백육십오 일을 굶어도 살아남고, 영하의 날씨에도 얼어 죽지 않는 바퀴벌레가 대단해 보인 적은 없었다는 것 아닌가. “가자미”처럼 살아도 좋으니, 등 따습고 배만 불러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복지 사각지대의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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