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섭의 복싱 스토리] 국가대표 출신 면도날 복서 고생근과 그의 후배들

조영섭 기자 | 기사입력 2020/07/19 [13:08]

[조영섭의 복싱 스토리] 국가대표 출신 면도날 복서 고생근과 그의 후배들

조영섭 기자 | 입력 : 2020/07/19 [13:08]

지난 주말 기자의 체육관에 귀한 손님이 찾아왔다. 72년 뮌헨올림픽 복싱(밴텀급) 국가대표 출신의 고생근 이었다. 그는 홍수환, 염동균과 함께 50년 범띠 3총사로 전광석화처럼 터지는 스트레이트가 당대 최고의 명품이었다. 잠시 후 이화성·이화경 형제복서, 고생근, 최충일과 함께 명품 스트레이트 트로이카로  불리는 박인규도 각각 합류해 추억여행을 떠났다.  

 

▲ (왼쪽부터) 이화경 박인규 고생근 이화성  © 조영섭 기자


고생근은 1964년 대한체육회장에 선임된 민관식 선생이 65년 설립한 중산체육관 소속으로 한창덕, 이화성, 정영근, 이석운, 강흥원, 백인철, 유장호 등 다수의 명 복서들이 이곳에서 탄생했다. 67년부터 채용석 관장의 지도로 복싱을 시작한 그는 6년 동안 아마추어 복서생활을 하면서 전매특허인 스트레이트란 단골 메뉴 하나로 2체급에서 국가대표로 활약하면서 100승(11패)을 뽑아올린 복서였다. 

 

그의 위대함은 우선 기록면에서 확연히 나타난다. 손영찬(당시 한미약품)을 위시해 김태호(경희대). 김영식. 서상영(전매청), 김창석. 정재룡(남산공전), 백종우, 이상덕(원주대), 최영철(제일체), 이거성(경희대) 등 역대급 복서들이 그와 맞대결에서 고개를 숙였다. 68년 멕시코 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인 지용주(원주)를 제외하면 딱히 그의 그림자를 밟을 경쟁자가 없었던 셈이다. 

 

면도날 복서라는 닉네임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고생근은 68년 일본에서 개최된 제1회 아시아 주니어 선수권대회에서 플라이급 우승과 함께 베스트 복서에 뽑히며 한국이 종합 2위를 하는데 견인차 역할을 했고 69년 12월 제23회 전국선수권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이번엔 성인 무대도 접수한다. 당시 밴텀급으로 출전한 염동균(한밭체)은 결승에서 백종우(대구)에 석패, 준우승을 차지한다. 

 

▲ 뮌헨 올림픽 1회전에서 이디오피아 선수에게 선전하고 있는 고생근 (우측) 

그해 고생근은 대한체육회에서 선정한 최우수선수에 발탁된 농구의 신동파(기업은행)에 이어 우수선수로 뽑혔고, 70년 국가대표로 발탁, 제4회 아시아 선수권대회(필리핀)에 참가해 동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그해 방콕 아시안게임 플라이급 선발전 결승에서 멕시코 올림픽 은메달 지용주(원주)에 석패하며 제동이 걸린다. 

 

하지만 그는 71년 3월 제1회 대통령배 대회에서 우승과 함께 최우수복서로 선정되며 다시금 도약을 시도한다. 그해 6월 제22회 학생선수권 대회에서 명지대 소속으로 참가해 밴텀급에서 우승을 차지한다. 당시 라이트급에서도 명지대의 남영웅이 우승을 차지했는데, 그는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동메달 리스트인 남승룡 선생의 아들이었다. 여담이지만 전남 순천 출신인 남승룡도 최초의 세계랭커인 서정권과 동향으로 일본으로 함께 건너가 32년 LA 올림픽에 한국인 최초로 참가한 황을수 선생의 지도로 복싱을 수학한 인물이었다.

 

한편, 이 대회 미들급에서 우승한 조원민과 라이트플라이급에서 준우승한 이화성이 각각 서울대 농대와 홍익대 전기공학과에 재학중인 평범한 일반 학생으로 참가해 돌풍을 일으켰다. 이화성은 이화경과 같은 중산체육관 출신의 형제복서로 현재 JK엔지니어링 전무로 재직 하고 있는데 70년엔 전국학생선수권대회에서 난적 유종만을 꺽을 정도로 빼어난 기량을 보유한 복서였고 71년엔 청소년 대표로 제2회 아시아 주니어대회 라이트 플라이급에서 국가대표로 출전한 복서였다. 또한 74. 75년 2년연속 킹스컵 은메달리스트(밴텀급)이자 90년 ‘흙수선화’란 곡을 발표한 노래하는 복서 박인규와 함께 음악에도 탁월한 재능을 보유한 복서이기도 하다. 

 

▲ (왼쪽부터) 킹스컵 은메달 리스트 인 노래하는 가수 박인규와 수준급 노래 실력을 보유한 kj엔지니어링 이화성 전무   ©조영섭 기자


고생근은 71년에도 2년 연속 아시아선수권 대회(테헤란)에 참가해 라이트 플라이급의 이석운, 웰터급의 정영근과 함께 밴텀급에서 우승을 차지했는데 이들 모두 중산체육관 출신이었다. 71년 9월 이듬해 뮌헨 올림픽을 앞두고 돌연 고생근은 프로전향을 시도한다. 한국권투위원회에 선수등록까지 마친 그를 당시 민관식 문교부 장관이 프로 관계자들에게 “올림픽이라는 큰 대사를 앞두고 이게 무슨짓들이냐”며 크게 호통을 치면서 그의 프로행은 무산되었다. 

 

72년 제20회 뮌헨올림픽에 출전한 고생근은 8강에서 스페인의 로드리게스에게 판정패 한다. 로드리게스는 고생근을 이긴 후 다음 경기에서 알폰소 자모라(멕시코)에게 패해 동메달에 머물렀고, 자모라는 결승에서 쿠바의 마르티네스에게 판정패하며 은메달에 머물렀다.  

 

73년 7월15일 고생근은 프로에 데뷔하여 대뜸 4연속 KO승을 거뒀지만 74년 2월 17일 5전째 필립 와루잉게와 대결에서 2회 한차례 다운을 당하는 등 시종 고전 끝에 개운찮은 판정승을 거둔다. 12연승(8KO승)을 기록한 75년 9월 21일 WBC 밴텀급 4위인 베니세 보코솔과 중요한 일전을 펼친다. 사실 고생근에겐 보코솔은 험준하고 높은 산 이었다. 태국의 별로 불리던 보코솔은 72년 9월29일 베툴리오 곤잘레스를 10회 TKO로 꺽고 WBC 플라이급 챔피언에 오른후 밴텀급으로 월장해 42전 39승(30KO승) 3패를 기록한 하드펀처였다. 

 

▲ 77년 1월8일 불도저 박에게 ko승을 거두고 국내챔피언에 등극하는 고생근 


이 경기에서 고생근은 2회 한차례 다운이 치명타가 되어 홈링에서 첫 패배를 당한다. 두 달 만에 홍수환과 자모라에게 연속KO패 당한 수코타이를 불러들여 4회 KO승을 거두며 전열을 정비한 고생근은 3연승을 거둔 후 76년 4월 26일 일본에써 첫 원정경기를 치른다. 상대는 다나카 후타로 였다. 이 선수는 75년 11월 7일 도쿄에서 한국의 염동균이 보유한 동양Jr페더급 타이틀 5차방어 상대로 판정패한 터프가이였는데 고생근은 접전 끝에 패하며 프로의 높은벽을 실감한다.  

 

운명의 77년 7월 23일, 청주에서 벌어진 국내 jr페더급 타이틀전을 놓고 24전22승(14KO승)2패의 챔피언 고생근과 9전7승2패의 정순현이 맞대결한 경기는 전형적인 화초복서와 잡초복서의 대결이었다. 82년 4월18일 벌어진 동양 웰터급 타이틀전에서 22전 22승 19KO승의 챔피언 황충재와 15전 15승 6KO를 기록한 도전자 황준석 전 과 함께 복싱역사상 대이변을 연출한 손꼽히는 경기 중 하나인데 공통점이 또 하나 있었다. 황충재가 호세 피피노 쿠에바스와 웰터급 타이틀 도전자 결정전 경기가 연속적으로 무산되면서 김빠진 상태에서 황준석과 경기를 치렀듯이 고생근도 후앙 안토니오 로페즈 와의 세계랭킹전이 무산되는 바람에 역시 맥이 빠진 상태에서 정순현과 일전을 치렀던 것이다.   

 

체중조절은  복서들에겐 알파와 오메가 이다. 당일 고생근은  체중조절 실패로 중반부터 체력저하로 인해 균형이 깨진 상태로 경기를 치렀다. 이 경기는 7회부터 정순현이 특유의 헤드웍과 보디웍으로 고생근의 예봉을 무산시킨 후 일방적인 페이스로 진행하며 결국 마의 9회에 3차례 다운을 탈취하면서 생애 첫 KO승을 거두며 스타탄생의 서곡을 알렸다. 정순현은 학창시절 헨드볼 선수출신 답게 순발력과 민첩성이 뛰어난 복서였다.

 

단지 정순현은 계절마다 피는 꽃이 제각기 다르듯이 가을에 피는 국화처럼 좀 늦게 개화했을 뿐이다. 모든 것에는 순서가 있고 기다림은 헛됨이 아닌 과정이었다. 시인 서정주가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리 울었나보다’ 라고 노래했듯이 15살에 복싱에 입문한 정순현은 11년 이란 긴긴 무명생활을 벗어나 고생근을 제압하며 그의 시대가 도래함을 알린다. 고생근이 원정경기에서 패한 다나카 후타로를 2회 KO로 꺽는 등 일취월장, 8연승(6KO승)을 거두며 세계타이틀 도전을 향한 진군나팔을 분 반면. 고생근은 무미건조한  5승 1무를 기록한 79년 4월 1일 소리 소문 없이 링을 떠났다. 화려했던 아마추어경력 만큼이나 반비례로 프로세계에선 상대적으로 어둠의 그림자도 짙었다. 한마디로 그의 복싱궤적은 우리나라 복싱 현대사의 빛과 그림자를 관통한 대표적인 복서란 생각이든다.  

 

23전 째에야 겨우 국내 챔피언에 등극한 고생근은 꽃사슴처럼 깔끔하고 정직한 권투를 펼쳤다. 프로는 야생마 같은 터프한 기질과 거친 잡초근성이 필수적인데 이 부분에서 그는 2% 부족했다. 프로복싱 챔피언이 43명이나 탄생한 지난 반세기 동안 아마추어 세계에서 속칭 ‘난다 긴다’하는 손영찬, 이금택, 강춘원, 정영근, 장규철, 황철순, 이창길, 이석운, 김현치, 김태호, 오영세, 최충일, 김정철, 전칠성, 김광선, 오광수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아마추어 대표급 복서들이 대거 프로로 전향 했지만 정상에 올라선 복서는 김기수, 박찬희, 문성길, 변정일, 조인주 등 불과 5명이다. 낙타가 바늘을 통과해야 하는 만큼이나 등극하기 어려운 세계챔피언은 누구나 인정해 줘야한다. 설령 운이 좋아 정상에 올랐다 치더라도 그 운을 잡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는것 또한 간과해선 안된다. 

 

▲ 대한체육회가 선정한 우수선수 출신 복서 고생근  © 조영섭 기자


아마와 프로는 갭(Gap)이 엄연히 존재한다. 아마전적 1승3패의 유명우나 2전 전패의 홍수환이 도합 4차례나 프로복싱 세계정상에 등극한 것은 레슬링의 자유형과 그레코로만형 차이만큼이나 아마복싱과 프로복싱의 편차가 존재한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할 것이다. 

 

고생근은 복서로써 정상에 오르진 못했지만 자식농사를 가장 성공적으로 일군 대표적인 자랑스런 복서다. 인생을 길게보면 하나를 잃게 되면 하나는 얻게 돼있다. 이대를 나온 큰딸은 영국에 유학중이며 서울대를 졸업한 둘째는 오하이오 주립대학 교수로 사위와 함께 재직 중인데 이들의 여고시절 대학진학을 위해 매달 투자한 금액이 당시 월 천만원을 상회할  정도로 ‘맹모 삼천지교’의 헌신적인 전형을 보여준 부정(父情)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명문대를 나온 막내아들도 현재 대기업에 근무 중이니 자식 농사만큼은 대풍년 이다.  

 

인생이나 복싱을 종합해 경험해보면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고 폭우가 쏟아질때도 있고 구름한 점 없이 맑은 날도 있다. 그러기에 인생의 참된 즐거움과 역경과 고난을 만나도 일희일비 할 필요가 없을듯하다. 왜냐하면 어차피 인생은 신의 시나리오대로 연출되는 연극이니까. 

 

  조영섭

문화저널21 복싱전문기자

 

현) 서울복싱연맹 부회장

현) 문성길복싱클럽 관장 

 

 

전) 82년 로마월드컵 대표선발전 플라이급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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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수 2020/07/20 [12:47] 수정 | 삭제
  • 심도있는 취재 수고하셨습니다
  • 복싱초보 2020/07/20 [01:12] 수정 | 삭제
  • 선후배 함께 모여 찍은 사진 보기 좋습니다. 오늘도 좋은글 감사합니다.
  • 김태민 2020/07/19 [19:46] 수정 | 삭제
  • 기자님께서 쓰신글 항상 잘 읽어보고 있습니다
  • 봉복이 2020/07/19 [19:11] 수정 | 삭제
  • 항상 좋은글 감사합니다. 더위 조심하세요.^^:
  • 민준 2020/07/19 [17:39] 수정 | 삭제
  • 오르막이있으면 내리막이있다 는 말이 와닿네요 좋은글감사합니다
  • 이상기 2020/07/19 [14:54] 수정 | 삭제
  • 좋은 기사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 이재영 2020/07/19 [14:30] 수정 | 삭제
  • 멋지고 아름다운 복싱 이야기 늘 감사히 읽고있습니다!!
  • 이혁종 2020/07/19 [14:26] 수정 | 삭제
  • 대한민국 봉싱계의 백과사전 조기자님 복싱 명예전당 설립을 추천합니다
  • 박성우 2020/07/19 [14:19] 수정 | 삭제
  • 복싱히스토리 오늘도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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