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진의 달항아리,‘자연과 생명의 빛’을 향한 근원의 예술(2)

최병국 기자 | 기사입력 2020/08/04 [16:53]

문서진의 달항아리,‘자연과 생명의 빛’을 향한 근원의 예술(2)

최병국 기자 | 입력 : 2020/08/04 [16:53]

문서진의 달항아리,‘자연과 생명의 빛’을 향한 근원의 예술(2)  

 

문서진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회화과를 졸업하였으며, 1990년부터 현재까지 예술의 전당, KBS 방송국 등지에서 11회의 개인전을 개최하고, 국내외 각종 초대전 및 단체전 등에 80여회에 전시·출품했다. KBS, MBC, SBS 등의 드라마에 다수 협찬하였으며, SBS, OBS에 출연하였다. 현재 달항아리 작품으로 감동적 파문을 일으키는 등, 미래가 기억할 작가로 부상하고 있다. 

 


달항아리 작품들, 하도 자연스러워 말문 막혀…도공인가? 화가인가?


 

그림 1〜24(근원의 예술 1. 2.)의 달항아리 작품들은 하도 자연스러워 말문이 막힐 뿐인 경지의 예술이다. 용솟음치는 영감 및 놀라운 기술적 세련도(필력)에 더해 화면과의 피나는 싸움 끝에 탄생되어진 절세폭풍적인 작품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마치 조선시대 장작가마에서 갓 구워낸 달항아리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그것도 불의 소성 등에 의해 울퉁불퉁 불완전하게 튀어져 나온 각종 달항아리를 생생하게 표현함으로서 관객들을 조선시대 가마 앞으로 이끌고 간다. 도공인지, 화가인지 분간되지 않을 정도의 원상(原象)의 예술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 문서진의 작품들을 보는 순간 미래의 대화가(大畵家) 예언은 현실화 되어 감을 작품을 통해 더욱 확연히 증명되고 있는 상황이다. 어렵게 (처녀)출전한 지난 경매에서의 유례없는 평가는 흘린 땀에 대한 박수갈채로서, 필연의 결과이다. 작품마다 봇물처럼 흘러내리는 경건한 주술들과 벽산(碧山)을 향해 붉음을 토해내는 듯한 전율적 예술세계를 어떻게 짧은 문면으로 표현해 낼 수 있단 말인가. 그저 탄성을 낼 뿐이다. 언어의 빈곤을 거듭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는 오로지 작품으로만 평가된다”는 명제는 만고불변의 진리다. 또한 예술의 세계는 스승도 제자도 없으며 독창적인 작품만이 전부다. 30여년 풍상의 과정에서 문서진의 예술세계는 경지를 넘어가고 있는 중이다. 특히, 원시림의 풀밭을 헤쳐 나가는 순수(근원)를 향한 항아리 작품들에서 따뜻한 (조선)도공들의 숨결마저 느껴진다. 각종 달항아리 작품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마치 실물 도예(달항아리)로 착시되면서 형상의 오묘함과 사랑스러움, 조용함, 자연스러움, 따뜻함과 살아 움직이는 생명의 박동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더하여 원상(原象)의 예술로서 대원일의 원상(圓相)을 연상시키는 경건함마저 자리하고 있다.

 

작가는 1990년 국전 입선으로 본격 작가생활을 시작하면서 초기에는 풍경, 정물 작업 등에 천착하다, 낯 섬과 익숙함의 상반된 현상 등을 공존의 기표로 표시하는 무중력(Zero Mass)시리즈를 창작하면서 사과와 꽃 등을 바다에 내던져 장시간 허공(바다 위 및 물속)에 부유(浮游)하게 하거나, 훈민정음 자기, 주전자(자기)등을 물성(이미지) 언어로 표현했다. 이는 일상적 중력의 개념이 해체(무중력)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철학적 사유의 산물로서, 사람들의 시선을 작품 속으로 몰입시키려는 지혜이자 영감(유혹)의 메시지인 것이다.

 

이런 작업 과정에서 갖가지 자기(주전자, 청자, 백자, 달항아리)가 주요 소재로 활용되었고, 갖가지 자기 속에 일상 및 공상의 여러 형상들을 삽입시켜 복합화면을 구성, 풍성한 영감의 향연을 불러일으키면서 독보적 (도자기)그림들은 나날이 진화됐다. 이런 과정에서 작품마다 각자 다른 클릭 및 명암과 상태 등을 절묘하게 표현하기 위해 화면과의 피나는 싸움을 하였음은 물론이다.

 

일렁거리는 푸른 바다의 물결을 원형으로 갖가지 풍광 및 삶의 이야기 등을 풀어헤치는 도자기(항아리) 그림이 절정의 경지에 다다를 즈음, 작가는 원시림의 밀림 속으로 뛰어 들어간다. 근원의 예술을 향한 새로운 여정의 시작으로  오브제들이 살아 숨쉬기를 갈망하면서 자연과 생명의 길을 찾아 나선 것이다. 

 

달항아리 창작 등과 관련, 작가는 많은 작가노트를 작성했다. 작가노트를 살펴보면, “... ‘달항아리’는 구(球)에 가까우나 완벽한 원(圓)으로 이루어진 구가 아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보이며, 그것은 마치 원거리에서 보면 완전한 구처럼 보이나 가까이서 바라보면 울퉁불퉁한 지구의 표면과도 같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하나의 ‘우주’ 혹은 ‘행성’이라고 본다. 아울러 나는 이 하나의 작은 우주에 세상을 담아보기로 했다. 사각형의 캔버스에 구와 같은 공간이 다시 설정되고, 외곽에 그려진 공간은 마치 그림 속의 액자처럼 부속공간이 되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그려지는 공간이 구에 한정되게 함으로써, 긴장감을 강화하고 싶다. 그리고 좀 더 밀도와 깊이가 더해지는 회화를 이룩하고 싶다. (2019년 2월)”는 등, 질감 및 소재 등의 변환시마다 심경 등을 꼼꼼히 남기고 있다.

 

이런 변화 과정에서 작가는 문득 영감의 계시를 받아 “오로지 존재하는 ‘달항아리’ 뿐이다”며 절대(근원) 예술을 선언하면서, 오랫동안 살아남아 기억될 원상(原象)의 예술을 찾아 나선다. 이를 위해 원시림(原始林) 속으로 뛰어든 것이다. 심산유곡에서 헤맬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비바람은 멈춰지고 작가의 머리위로 따스한 햇살이 비춰지기 시작했다. 천부의 재능을 하늘도 시기하지 못했나 보다.

 


마법의 거울처럼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문서진 작품의 속살은 땀과 눈물 


 

▲ 문서진의 작품 ◇제목 : Mind Vessel 1~24 ◇크기 : (1~8) 53.0 × 45.5 cm / (9~12) 45.5 × 45.5 cm (13~14) 33.4 × 21.2 cm / (15) 53.0 × 45.5 cm / (16~17) 33.4 × 21.2 cm / (18) 45.5 × 45.5 cm / (19) 33.4 × 21.2 cm / (20~21) 40.9 × 31.8 cm / (22) 45.5 × 45.5 cm / (23~24) 33.4 × 21.2 cm ◇제작년도: (1~12) 2019년 (12~24) 2020년 ◇재료 : 재료 : mixed media


그림 1〜24(근원의 예술 1. 2.)에서 보여지는 달항아리 작품들은 마치 마법의 거울처럼 사람들에게 환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다른 형상들의 삽입이나 배치 등을 일체 배격하면서 오로지 달항아리 만을 표현함으로서 응집도를 고도로 배가시키고 있다. 더하여 달항아리 색상들과 배경화면을 유사한 색상으로 표현하면서도 음양(강도)의 톤을 달리함으로서 작품 감상의 방해요인을 제거해 주려는 작가의 친절함과 따뜻함이 물씬 풍겨 나오고 있다.

 

소성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항아리 표면의 각가지 균열의 표현력은 섬세함을 넘어 심장을 멈출 만큼 충격적 감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저절로 손으로 만져보고 싶고, 코끝으로 향기를 맡고, 혀끝으로 감칠맛을 음미하고픈 충동이   일어나게 만들고 있다. 마치 신라 솔거의 신화를 연상케 하는 상황이다.

 

더하여 갖가지 달항아리들 중 어느 하나 완전(무결)한 항아리는 없다. 실제 항아리였다면 도공은 작품 속의 달항아리들을 불량품으로 생각하여 대다수 파기하였을 것이다. 불량품을 뛰어나게 그리는 작가, 참으로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이 작품들의 신묘함과 위대성은 바로 이점에 있다. 이 작품들은 재현작품도 아니고, 상상의 나래를 펼쳐 창작한 상상도(想像畵)다. 그럼에도 마치 실물처럼 생동감과 박진감이 흘러나오고 있다. 불완전한 항아리를 통해 완전무결한 명작들을 창작한 것이다. 쉽사리 상상할 수 없는 섬광처럼 번득이는 예지의 발휘다. 일러 ‘위대한 독창성’이라 표창(表彰)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영감이 봇물처럼 흘러나오는 위대한 독창성으로 영글어 있는 명작들로서, 신의 창조품을 갈구하면서 화면과의 피나는 싸움 끝에 탄생된 땀과 눈물의 결정체로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미의 본질은 감동이며, 감동의 핵심은 위대한 독창성이다. 위대한 독창성이 영글어 있는 작품(명작)들은 일일이 표현을 요하지 않으며, 이를 표현해 낼 수 있는 형식 언어도 사실 부재한 상황이다. 감동은 본질을 벗어나거나 영혼 없는 교언영색 미사여구로 표현되어질 일은 절대 아니고, 탄성의 신음소리와 눈물의 (감동적)몸부림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감의 파노라마를 일으키는 명작들을 감상하면 저절로 영감의 눈물샘이 촉촉이 적셔지는 것이다. 단언컨대, 생명예술을 향한 달항아리 작품들은 영감의 눈물샘을 적시는 명작들이다. 

 

이제 문서진 화백은 다시 황야로 내몰리고 있다. 미의 진리를 화폭에 담아내는 예술가로서의 순명의 다하라는 (무언의) 압력의 소리들이 벌써부터 들려오고 있다. 그것이 운명이고, 사명이라면 어쩌겠는가? 

 

문서진 화백은 무궁한 예술의 광맥이 지속적으로 솟아나고 있는 천성(天成)의 예술가다. 예술의 노예로서 생의 종점까지 치열한 예술혼을 불태워 명작들을 창작하여 예술가의 진정한 삶의 가치를 실현해야 할 운명이 드리워져 있다. 명작 창작 등을 위한 땀과 눈물은 삶의 속살이고, 이는 섭리의 작용이기도 하다.   

 

명작들을 역사 속에 어떻게 남겨야 할지를 항상 고심하면서, 인간사의 상흔들을 예술의 용광로에 태워버리고, 더욱 치열한 예술혼을 불태워  융합예술의 지평을 개척하면서, 문화국가 가치창조에 기여하길 염원한다.

 

문화저널21 최병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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