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禪)의 세계를 현대적 조형감각으로 풀어내는 법관 화백(2)

최병국 기자 | 기사입력 2020/08/19 [17:17]

선(禪)의 세계를 현대적 조형감각으로 풀어내는 법관 화백(2)

최병국 기자 | 입력 : 2020/08/19 [17:17]

법관스님(이하 ‘법관 화백’)은 매우 특이한 존재다. 탐(貪)·진(瞋)·치(痴) 삼독(三毒)의 번뇌와 오온(五蘊)의 고통이 지배하는 사바세계(娑婆世界)에서 탈속, 불가에 귀의하여 40여년의 세월동안 수행 정진하는 선승(禪僧)으로서, 36년 성상에 걸쳐 치열한 예술혼을 불태우고 있는 범상치 않은 예인(藝人)이다. 우주의 원리를 자신의 물성언어로 풀어내고 있는 법관화백의 예술세계를 조명해 본다. 

 

선화(수묵담채)·유화 등을 통해 본 법관 예술의 여정(1992〜1995)

 

법관 화백 예술세계 조명 시리즈(1)에서 선(禪)수행으로부터 오는 긴 시간의 흐름을 기록해 나가는 법관 화백의 예술의 여정과, 벽산(碧山)을 향해 붉음을 토해내는 구도(求道)의 선(禪)예술인 법관 예술의 개괄적 특징 등을 살펴보았다. 일종의 총론 탐색이다. 지금부터 구체적 작품들을 통해 그의 광활한 예술세계를 음미하고자 한다.

 

작가 법관은 “...한발 내딛는 것이 은산철벽이라, 그림 속 저 차가운 물 건져 올릴 수 있다면 내 어찌 붓을 내 던지지 않으랴(2013 예술의전당 ‘선-2013’) 개인전)”라고 선문답했다. 시시각각 유동하면서도 새롭게 피어나고 있는 작품들을 형식 언어로 설명할 길이 없어 이렇게 선문답 한 것이다. 사실 벽산(碧山)을 향해 붉음을 토해내는 듯한 법관 화백의 광활한 구도(求道)의 선(禪)예술세계를 형식 언어로 세밀하게 묘사해 낸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기껏 대강을 더듬어 볼 뿐이다.

 

▲ 왼쪽부터 그림1) ‘달마’ 화선지에 수묵담채. 34×68cm(가로×세로). 1992년 / 그림2) ‘빈손으로 왔다가네’ 화선지에 수묵담채. 64×134cm(가로×세로). 1994년  © 문화저널21 DB / 자료사진


시리즈(1)에서 기술한 바와 같이 법관 화백은 1984년 경북 지역의 한 토굴에서 수행정진 중 붓을 들어 화업을 시작했다. 이때 시작된 그림들이 그림1〜2에서 보여 지는 달마 등, 각종 수묵담채 선화들이다. 이렇게 시작된 화필은 각종 토굴(사찰)을 옮겨 다니면서 날로 진화되어 갔음은 물론이다.

 

그림1)의 달마도는 1992년 경남의 한 토굴에서 수행정진 중 작화되었다. 우선 해학과 위트가 넘쳐나는 중봉의 미학이 돋보이는 기운생동의 달마도다. 특히,  일순간 툭 때리는 듯한 대담한 붓놀림이 눈길을 끌고 있다. 또한 무섭고 음침한 달마가 아니라 잡귀를 쫓는 밝은 기운이 느껴지는 해학과 위트의 달마도로서, ‘법(法)’을 ‘관(觀)’하는 노력과 진실이 담겨 있는 기운생동의 작품이다.

 

그림2)의 ‘빈손으로 왔다 가네.’란 선화(수묵담채)는 1994년 강원의 한 토굴에서 수행정진 중 작화된 작품으로서, 깨달음을 향한 수행자(작가)의 지향성과 심성을 고스란히 담아낸 수준 높은 작품이다. 쓸고 쓸어도 쌓이는 먼지와 오물 등은 끝이 없다는 작가의 메시지가 간결하게 전달되고 있다. 본질(구도)을 향한 내용(수행)에 방점을 찍고 있으며, 특히 두터운 업장을 쓸어내면서 ‘청정한 참 길’을 걸어 보려는 법관 화백의 갈망이 오롯이 담겨 있다.

 

그림과 수행이 둘이 아니라는 법관 화백의 철학과 수행에서 오는 희열이 작품너머로 풍겨 나오고 있다. 또한 휘갈긴 먹의 향기가 곳곳에서 풍겨나고 있는 등, ‘법(法)’을 ‘관(觀)’하려는 열정이 돋보인다. 이 작품과 유사한 작품이 2001년 ‘뜰을 쓸어도’란 제목으로 바꾸어 창작되어 2006년 ‘심상심류(心象心流)’ 展에 전시되기도 했다. 그만큼 작가가 이 작품에 대해 애정이 많다는 것이다.

 

▲ 왼쪽부터 그림3) ‘무제’ 캔버스에 오일. 117×91cm(가로×세로). 1994년 / 그림4) ‘무제’ 캔버스에 오일. 45×53cm(가로×세로). 1995년  © 문화저널21 DB / 자료사진


그림3)의 ‘무제’란 추상 유화는 역시 1994년 강원의 한 토굴에서 수행정진 중 작화된 작품으로서, 최초의 서양화 작품으로 보인다. 우선 마치 화산의 폭발장면을 연상시키는 듯한 확산과 응집력이 눈길을 끌고 있다. 어쩌면 깨달음을 향한 수행자(작가)의 희열이 담겨있는 듯하며, 동시에 새로운 수행을 다짐하는 자기선언서처럼 보여 지기도 한다. 어쨌든 불원간 추상회화로 나아갈 것을 예고하는 법관 화백 추상회화의 시원적(始原的) 작품으로 보여 진다.

 

그림3)의 ‘무제’는 기술적 완성도 측면 등에서는 완벽하지 못한 것은 객관적 사실이다. 일종의 실험과 연습용 작품인 것이다. 그렇지만 이 작품은 법관 추상회화의 시원적(始原的) 작품으로서 법관 예술세계 연구에 있어 중요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기에 이를 소개·평석하는 것이다.

 

그림4)의 ‘무제’란 추상 유화는 1995년 강원의 한 토굴에서 수행정진 중 작화된 작품으로서, 향후 법관 화백의 예술이 나아가는 방향을 예시해주는 의미 있는 작품이다. 보랏빛 바탕에 보름달을 연상시키는 이 작품은 색면 추상화 등장과 수많은 선과 점들을 찍고 또 찍어내는 법관 화백의 작화기법을 알리는 예광탄인 것이다. 그림4) ‘무제’ 역시 기술적 완성도 등에 있어 완벽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나 그림3)의 ‘무제’에 비해 일층 진화된 것은 객관적 사실이다.

 

법관의 예술세계는 그림1〜4)에서 보는 바와 같이, 수묵담채의 선화에서 초기 추상회화의 연습기를 거쳐 색면 추상회화세계로 급속히 진화되어 간다.

 

‘심상심류(心象心流)·비산비수(非山非水)’展을 통해 색면추상화 시대 개막

 

1984년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한 법관 화백은 전국의 토굴(사찰)에서 수행정진 와중에 예술세계를 확장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던 중, 1999년 겨울 현재의 능가사에 안거하면서 아틀리에를 마련했다. 이때부터 하루 14〜15시간에 걸쳐 밤낮을 가로질러 작품 활동에 매진했다. 제2의 예술인생 시작인 것이다. 그림과 수행은 분리할 수 없다는 철학 속에 구슬땀을 흘려가며 쉼 없이 그림 수행에 매진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눈으로 보아도 작품들은 나날이 발전되어 갔다. 

 

이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예술세계 확립을 위한 생각의 칼날을 가다듬었다. 세상을 향해 쏘아 올릴 자신의 화살(작품)이 무엇인지를 고심하면서, 수행으로 영근 자신의 (인생)철학을 밀도 있게 전할 메시지를 찾아 나선다. 새로운 예술을 향한 여정이었다. 저 멀리서 태풍이 서서히 몰려오는 직감 속에 그가 찾아낸 것은 색면 추상회화였다. 구상의 재현을 넘어선 새로운 추상예술은 이렇게 발원되어 ‘심상심류(心象心流, 2006)·비산비수(非山非水, 2007)’展 등을 통해 세상에 드러났다.

 

 ‘心象心流(2006)·非山非水(2007)’展 등에서 나타나는 색면 추상회화의 우선적 특징은 선(線)이라는 의식의 물결 아래로 화려한 원색의 물결이 물려오면서 고요와 격동을 되풀이 한다. 그러다 소리와 빛깔들은 점차 침전되어 명상과 침묵의 늪 속으로 빠져들면서 느낌으로 더듬어 보는 새로운 예술의 창을 향해 달려간다.

 

▲ 왼쪽부터 그림5) ‘심상심류’ 석채·혼합재료. 53×45.5cm(가로×세로). 2006년 / 그림6) ‘심상심류’ 석채·혼합재료. 53×45.5cm(가로×세로). 2006년  © 문화저널21 DB / 자료사진


그림 5〜6)의 작품들은 ‘心象心流(2006)’ 展에 출품되어진 색면 추상회화시대를 개막시킨 작품들이다. 우선적으로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화려하면서도 강력한 원색 사용이 돋보인다. 또한 적색, 청색 등 전통적 오방색 등을 주로 사용하여 민화나 단청에서 느낄 수 있는 전통적인 색채와 선, 문양을 소재로 한 독특한 색면 구성의 추상회화를 선보였다. 특히 빨강, 노랑, 청색 등을 대비시킨 선명한 색채의 화음으로 우리 고유의 색채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조명하였다. 이는 법관 화백의 예술세계가 본격 개막됨을 알리는 일종의 쾌거인 것이다.

 

활달한 붓놀림, 오방색 계열의 짙은 원색조의 부감법에 의한 색면 구성의 추상회화로서, 화려한 색감으로 한국미를 독자적 화풍으로 표현해낸 평가받을 만한 작품들이다. 법관 화백은 ‘心象心流’ 展 인사말을 통해, “산 속 생활 정진 중에 내 속에 있는 생각들을 화면에 그대로 옮겨 보았습니다. 내 모습을 보인 것이기에 있는 그대로 보셨으면 합니다”라며 담담히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心象心流(2006)’ 展 1년 후 개최된 ‘非山非水(2007)’ 展에 전시된 작품(그림7)들에서는 이전에 비해 좀 더 구상적 요소가 발견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된다. 2007년의 ‘非山非水’ 展에 출품된 구상적 요소가 가미된 작품들에 대해 신항섭 미술평론가는 ‘신산수화(新山水畵)’로 명명했다. “자연을 풍광으로 하는 스님의 작업이 볼 수 있는 실재의 세계가 아니라 심상이 만들어 낸 세계로 산수화를 연상케 하는 자연풍경이 눈에 들어오지만 딱 어디라고 말할 수 없다”면서 붙인 이름이다. 더하여 화려한 원색의 물결에 대해 단청에 대한 눈과 감각이 익숙해져 있음으로써 색채의 불협화음이 발생하지 않은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즉, 단청에 일상적인 접근과 이해 속에서 타고난 색감이 더해져 채색화의 완성도가 높아져 거부반응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해석이다.

 

▲ 왼쪽 위 그림7) ‘비산비수’ 석채·혼합재료. 130.5×162.2cm(가로×세로). 2007년 / 아래 그림8) ‘선(禪)으로부터’ 석채·혼합재료. 390×162cm(가로×세로). 2009년 / 오른쪽 위 그림9) ‘선(禪)’ 석채·혼합재료. 162.2×130.3cm(가로×세로). 2010년  © 문화저널21 DB / 자료사진


이러한 변환기의 과정을 거쳐 2009년의 선(禪)으로부터의 작화(그림8)에서부터 형태들이 엷어지거나 없어지기 시작하여 그림9)의 2010년 선(禪)전시회를 분기점으로 작품들은 순수(절대) 추상의 세계로 치닫게 된다. 이는 법관 화백 예술여정의 필연적인 운명의 흐름으로 판단된다.

 

이런 절대(순수) 추상을 향한 운명적 흐름에서 2006년의 ‘心象心流’ 展에 비해 도리어 구상적 요소를 강화시킨 2007년의 ‘非山非水’ 展은 법관 화백의 예술 여정 분석 등에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는 일종의 곤혹스런 상황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긴장과 이완의 조율이 필요한 시간의 흐름으로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되는 상황이다. 즉, 우주의 본원을 향한 절대 추상의 세계로 진행하기 위해 긴장과 이완을 조율해 가면서 다시 균형감각을 조여 가는 과정에서 발생되는 일종의 휴식 행위인 것이다. 우주를 향하여 끝없는 변화를 거듭해 가는 도정(道程)에서 갈등과 희망은 교차될 수밖에 없으며, 생각의 가지와 뿌리 등을 가다듬기 위한 명상과 휴식의 시간들은 필요한 것이다. 이런 상황 앞에서 새로운 예술세계 구축을 위해 일시 복고적 상황을 연출하기도 하는 것이다.

 

어쨌든 1984년부터 창작활동을 시작한 법관 화백은 초기(제1기) 선화(수묵담채) 및 유화 습작시절을 거쳐 心象心流(2006)·非山非水(2007)’展을 통해 색면추상화 시대(제2기)를 개막하면서 화려한 색감으로 한국미를 독자적 화풍으로 표현해 냄으로서 웅비의 나래를 본격적으로 펼치기 시작했다. 이런 여정에서 신산수화(新山水畵)로 명명되어지는 일시 휴지기를 거쳐 우주의 본원을 자신의 물성언어로 탐구하려는 절대추상의 새로운 시대를 향해 진화를 거듭해 나간다.(계속)

 

문화저널21 최병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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