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을 든 수월관음의 ‘고암아틀리에’서 피어오르는 예술의 향기

최병국 기자 | 기사입력 2020/09/18 [21:24]

붓을 든 수월관음의 ‘고암아틀리에’서 피어오르는 예술의 향기

최병국 기자 | 입력 : 2020/09/18 [21:24]

최근 강원도 강릉시에 위치해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능가사의 울타리 속에서 숨 쉬고 있는 법관 화백(스님)의 ‘고암아틀리에(화실)’를 탐방했다. 도심에서 한참 떨어진 울창한 수풀림이 우거진 산자수명(山紫水明)한 아틀리에에는 새소리와 물소리가 들리고 흘러내리는 등, 정말 속세를 등진 도원의 세계처럼 보였다. 아담한 법당(대웅전) 및 전용 전시관(고암갤러리)과 거소(居所) 등이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앙증스럽게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면서 내방객을 맞이했다.

 

법관 화백(스님)은 1999년 연말경부터 능가사의 주지로 주석(主席)하면서 ‘수행=그림(창작)’이란 ‘선(禪)철학’에 입각하여 창작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탐(貪)·진(瞋)·치(痴) 삼독(三毒)의 번뇌와 오온(五蘊)의 고통이 지배하는 사바세계(娑婆世界)에서 탈속, 불가에 귀의하여 40여년의 세월동안 수행 정진하면서 자신의 물성언어로 우주의 원리를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 시대에 보기 드문 참으로 특이한 선승(禪僧)이자 예승(藝僧)이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 왼쪽 고암갤러리와 능가사 대웅전  © 박명섭 기자


능가사는 어느 사찰과 다름없이 대웅전의 본존(석가)불상을 중심으로 각종 불상 및  탱화들로 장엄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이런 법당보다는 전용전시장인 사찰입구의 ‘고암갤러리’와 맞은편 작업장인 ‘고암아틀리에’가 우선 눈길을 끌었다. 화백(스님)의 안내에 따라 고암갤러리의 문을 여는 순간 이곳은 ‘법관 예술의 향연장’이란 말 외에는 표현할 말이 없을 정도로 정결하게 디스플레이 되어 있어 숙연함에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약 37평 내외의 전용 갤러리 벽면에는 법관 화백의 크고 작은 대표작 20여점이 걸려 있었고, 더하여 각종 반닫이와 달항아리 등 도자작품들이 깔끔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전통적인 조선의 미를 근원으로 우주를 향하는 자신의 예술 철학을 보여주는 듯 했다.

 

‘고암갤러리’을 나서 ‘고암아틀리에’를 나서는 순간 법관 화백은 “고암아틀리에는 20년간 허름한 상태로 있다가 작년 대보수를 하여 비로소 갤러리다운 면모를 갖추었다”고 친절히 설명하기도 했다. 고암아틀리에의 문을 여는 순간 수 백점의 각종 작품들과 화구(畵具)들 앞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그림이 수행’이라며 붓을 든 수월관음의 향기가 피어오르는 예술의 현장 자체였다.

 


작화과정(作畵過程), 작품들의 속살은‘땀방울의 결정체이자 영혼의 숨결’


 

약 40평 내외의 ‘고암아틀리에’는 법관 화백(스님)의 삶의 현장이자 창작의 산실이었다. ‘고암아틀리에’는 내방객을 맞이하여 담소를 나누는 다실(茶室)과 작업장(창작 공간) 및 (그림보관)수장고로 분리되어 있었다. 이 공간에서 수많은 명작들이 탄생되고 있다는 생각이 미치자 형언할 수 없는 묘한 느낌이 피어올랐다. ‘붓을 든 수월관음 법관 화백(스님) 명작창작 산실’이라는 생각에서 말이다.

 

아틀리에 벽면은 각종 그림들로 겹겹이 쌓여져 있었고, 바닥에는 각종 그리다만 그림들로 즐비했다. 자유롭게 그림을 그릴 수 공간은 몇 평 되지않아 약간  비좁다는 느낌마저 지울 수 없었다.

 

작품들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창작과정은 구체적으로 어떠하며, 어려움 등에 대해 질의 한 바,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궁극적 메시지는 감동의 전달이며, 관람자들은 자유로운 감상 속에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길 바란다. 나는 우주의 펼쳐짐을 나타내기 위해 나의 조형(물성)언어로 이를 표현했다.”

 

▲ 고암갤러리에 전시된 법관 화백의 작품들  © 박명섭 기자


또한 “창작과정은 화면위에 수없이 덧칠을 하면서 무언의 형상을 표현해 나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힘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수년전까지 하루 15〜16시간 작업하다 건강이 상당히 약화되어 현재는 10〜11시간내외로 조절하여 작업하는 상황이다. 한 작품을 탄생시키기 위해 정말 힘든 노력을 해야 한다. 그야말로 중노동이다. 이런 의미에서 창작은 수행인 것이다”라고 설파했다.   

 

연이어 “수행=(작품)창작 일체(一體)론은 오랜 수행과 작품 활동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나름의 철학이다. 도를 깨치기 위한 수행(修行)이나, 감동을 전하기 위한 창작(創作)은 모두 사색(명상)과 성찰(자성)을 근간으로 한다. 이러한 사실과 성찰을 통해 수행과 창작의 경지가 더욱 심오해 나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창작이 수행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수행이 예술 창작의 영감에 제약을 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도리어 구슬땀을 흘려가는 창작의 과정 등에서 우주의 원리와 불국정토의 세계가 어른거리고 있다” 는 등, 자신의 (예술)철학을 명쾌하게 설명했다.

 

이어 다실(茶室)로 안내한 후, 차 한 잔을 가져와 앉으면서, “질감 표현을 위해 작품마다 여러 번에 걸쳐 덧칠을 해야 하기 때문에 힘이 드는 것은 사실입니다. 덧칠 과정에서 처음의 색감들은 바닥으로 가라앉고, 다시 앉는 과정에서 층들이 생겨나면서 자연스럽게 형상들이 탄생되는 것이지요. 때론 여백들도 생겨나면서... 특히, 오묘한 질감을 표현해 내기 위해 보통 작품마다 5〜6회 또는 7〜8회에 걸쳐 덧칠을 하면서 찍고 그려나가는 것입니다. 특히, 물감을 세필에 묻혀 듯 수회에 걸쳐 끝이 보일 듯 말 듯, 뾰족하며 휘어지고, 굽이치는 듯한 갖가지 미세한 형상 등을 표현해 냅니다. 아니 저절로 표현되는 것이지요. 이것이 제 작업의 作畵過程입니다.” 

 

“질감표현을 위해 보통 작품 당 7〜8회에 걸쳐 덧칠을 하는 고된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한 달에 몇 점밖에 작업할 수가 없어요. 솔직히 화면과의 피나는 싸움 없이는 불가능한 작품입니다. 그러므로 작품들의 속살은 땀방울의 결정체이자, 영혼의 숨결입니다.”

 


운명(運命), 밤이 깊어갈수록 붓놀림은 격렬…무심(無心)의 붓끝으로 우주(宇宙)를 조형


 

“손바닥에 피가 맺힐 정도의 화면과의 피나는 싸움 끝에 탄생된 작품들의 속살은 땀방울의 결정체이자, 영혼의 숨결”이라는 작가의 고백(설명)은 충격으로 다가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동시에 시상과 운율이 울려 퍼지는 법관 작품 창작의 베일을 벗겨져 막힌 가슴이 뚫리는 듯한 희열을 체험했다.

 

▲ 법관 화백의 아틀리에에 놓여있는 색면추상회화 작품  © 박명섭 기자


이런 충격적인 시간들을 뒤로 하고 다시 화실을 곳곳을 돌아보니 법관 화백의 ‘고암아틀리에’는 붓을 든 수월관음 예술의 향연장처럼 비춰졌다. 명작창작의 향기가 피어오르는 예술의 산실 말이다. 어쨌든 ‘고암아틀리에’ 탐방은 예술가들이 걸어 가야하는 길을 실증적으로 체험시킨 뜻 결실을 안겨 주었다. 

 

우주를 향하여 멈춰진 숨결 속에 껍질을 벗어던지고 속살마저 태우고 있는 영원한 藝人 법관 화백의 모습은 붓을 든 수월관음의 출현이 아닐 수 없다. 땀방울이 흘러내리는 그의 손놀림에 의해 찰 라의 순간에 우주가 창조된다. 그의 붓은 그리는 도구가 아니라 우주를 향한 명상의 비행선인 것이다.

 

침묵의 힘 같은 미세한 (영혼의)숨결로부터 그의 우주(작품)가 창조되는 것이다. 그의 작품들은 수행과 성찰의 미학으로서 탄생된 ‘생명의 결’로서 생과 사의 순환 고리가 머무르는 우주의 신비를 연상시키고 있으며, 생명의 불꽃을 태우다가 한줌의 먼지로 돌아 가야하는 피안을 연상케 하기도 한다. 또한 순간과 영원을 함께 호흡하면서 멈춰진 시간 속에서 살며시 귀를 기울이면 창공의 바람소리까지 들릴 것 같다. 선과 점들의 향연은 맑은 영혼의 옹달샘인 것이다.

 

어쨌든 그는 이제 새로운 시험대에 올라서 제3의 예술인생을 본격 전개해야할 운명으로 보여 진다. ‘超然獨步萬古眞(만고의 진리를 향해 초연히 나 홀로 걸어가노라)’해야 할 상황으로서, 미래가 기억할 작가를 위해 밤이 깊어갈수록 붓놀림은 점점 격렬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 이를 운명(섭리)이라 하였던가! 

 

“(중략)..마음을 뚫고 투과해서 그리는 사람과 그려진 그림이 하나가 되어 보는 이도 그리는 이도 그려진 것도 없어야 비로소 우주의 펼쳐짐을 눈앞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제작노트에 있는 말이다. 無心의 붓끝으로 宇宙를 조형(창조)하겠다는 의지다. 향후의 위업이 더욱 기대되는 상황이라 아니할 수 없다.

 

문화저널21 최병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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