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진 화백의 달항아리를 통해 들여다보는 마음 속 노스텔지어

박준아 | 기사입력 2020/10/05 [11:37]

문서진 화백의 달항아리를 통해 들여다보는 마음 속 노스텔지어

박준아 | 입력 : 2020/10/05 [11:37]

문서진 화백의 달항아리를 통해 들여다보는 마음 속 노스텔지어

 

대표적인 문화유산으로서 달항아리가 지닌 우리 민족의 아름다움, 역사적 가치 등에 대해 굳이 설명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런 만큼 달항아리는 꽤나 오랫동안 매체를 불문하고 많은 작가들의 뮤즈로서 다뤄져 왔다.

     

▲ 그림1 문서진 Mind Vessel 18 2020 혼합매체 455×455mm  © 문화저널21 DB / 자료사진


여기에 또 하나의 달항아리가 있다. 단색의 배경 위로 사실적으로 표현한 달항아리가 오롯이 존재한다. 사실적이지만 그래서 더 비현실적으로도 느껴지는 이 달항아리는 따뜻하게 바닷가 같은 어떤 풍경을 비춘다. 

 

위 작품은 문서진작가의 달항아리를 그린 신작 'Mind Vessel'연작 중 하나이다. 작가가 직접 ‘전통’이라고까지 말한 달항아리를 담은 여타 많은 작품들 속에서도 그녀의 마음속 항아리를 들여다보려 한다. 그전에 앞서, 작품을 보자니 몇몇 작은 의문점이 생긴다. 우리는 이미 만들어진 물건을 다시 회화화하는 형식의 작품들이 낯설지 않다. 아니, 오히려 어떤 작품들보다도 친근할 정도다. 미술에 관심이 없는 많은 사람들조차 ‘앤디워홀’과 ‘팝아트’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1960년대의 팝아트와 2020년 달항아리를 그리는 행위는 어떻게 다른 걸까? 달항아리를 작품의 오브제로서 등장시키는 많은 작가들 중 상당수의 작가들이 달항아리를 사실적으로 표현한다. 이러한 작품들은 어떤 의미를 갖는 걸까? 두 질문은 어느 정도 연결이 지어지기도 한다. 그 이유는 사실적인 표현이라는 형식에서 출발한 이 질문들은 회화와 대상의 본질에 대한 고찰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순차적으로 생각해보자.

 

팝아트( pop art)는 1960년대 초엽에 뉴욕을 중심으로 출현한 미술의 한 장르이다. 리히텐슈타인, 워홀, 올덴버그 등이 그 대표적인 작가다. 

 

▲ 그림2 앤디워홀 캠벨수프:치킨누들  © 문화저널21 DB / 자료사진


애초에 ‘팝아트’는 숭고한 예술을 표방하는 기존의 예술품들을 조롱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럼으로써 모더니즘에 반대하고, 안티테제로서 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적인 예술이 된다. 이러한 ‘팝아트’의 반예술을 지향하는 조롱은 당시 주류였던 추상표현주의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서구권의 ‘전통적 미의식’ 역사 그 자체를 전복한다. 그러기 위해 회화의 대상은 신화를 전달하는 신성한 매개에서 보잘것없는 일상품으로, 특별한 소수인 천재적 기술들의 집약에서 누구나 찍어낼 수 있는 공장의 기성품으로 변모한다. ‘팝아트’ 작품들은 이름처럼 pop한 가벼움 위로 묵직한 담론을 수반한다.

   

이렇듯 가벼움으로 묵직함을 뒤집어 의미를 생성하는 것이 팝아트의 본질이라면 2020의 예술가들이 달항아리를 그리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을수 있을까? 많은 작가들이 달항아리(대상)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형태가 나타내는 민족성, 역사적 가치와 아름다움을 가장 잘 담아내기 위해 사실적으로 표현한다.

 

이는 어찌 보면 ‘팝아트’에서 집어 던지고자 했던 아우라를 찾아 ‘예술의 전통적인 역할, 권위’를 회복시킨 정반대의 행위로 볼 수 있다. 단순히 생각했을 때 비구상-구상, 무거움-가벼움 등 형식의 전복으로 이뤄지는 예술의 전위적 자전이 무거움의 차례로 돌아온 것일까? 일단 이에 대한 답은 뒤로 미루고자 한다. 

 

한국회화 작품에서 달항아리가 오브제로 등장했을 때 그들은 단지 하나의 정물이었다.

  

▲ 그림3 김환기 항아리 1955-56 캔버스에유채 650×800mm  © 문화저널21 DB / 자료사진


위 그림은 한국 근·현대미술의 효시, 김환기화백의 '항아리'라는 작품이다. 중앙에 달항아리와 나란히 있는 백자 주위로 수평 수직으로 단순화된 나무와 자연물들이 균형을 이루고, 푸른달과 함께 김환기화백 특유의 파란색으로 채워 절제되면서도 소박한 화면을 담는다. 배경보다 어두운 푸른색의 달은 맞닿은 흰 달항아리를 부각시킨다. 그럼으로써 흰 달항아리가 달의 영롱함을 머금은 듯 한 착각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 옆 백자는 달항아리와 함께 화면을 양분하며 상반된 형태에서 오는 오브제들의 관계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한다. 김환기화백의 달항아리작품은 한국적 감성을 담은 풍경화 혹은 정물화 그 중간쯤 어디에 위치해있는 걸로 보인다. 그러나 최근의 달항아리를 주제로 한 작품들은 독립적이며 위에서 언급했듯 사실적 표현을 특징으로 한다. 그 중 대표적인 예로 구본창작가의 ‘Vessel’연작과 문서진 작가의 ‘Mind Vessel’연작을 짚어보고자 한다.  

 

▲ 그림4 구본창 Vessel MG08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1000×800mm  © 문화저널21 DB / 자료사진


흰색의 배경위로 흰 달항아리가 화면 중앙에 위치해 있다. 이는 달항아리의 초상화이다. 달항아리는 비워진 공간 안에 독립되게 존재하면서도 배경 안으로 스며들어 있어 묘한 느낌을 자아낸다. 마치 배경과 대상이 하나로 이루어진 도자기 부조같이 느껴지기도 하다. 구본창작가의 사진의 특징이라면 사진스럽지 않다는 게 가장 크다. 그는 사진에 사물들의 개성에 따라 대상마다 다른 초상사진을 만든다. 달항아리 사진에서는 유물로서 갖는 아우라를 장엄하게, 그렇지만 그 단순한 형태가 갖은 담백함을 소담하게 표현한다.

 

▲ 그림5 문서진 Mind Vessel 8 2019 혼합매체 530×455mm  © 문화저널21 DB / 자료사진


다음은 문서진작가의 'Mind Vessel'시리즈 작품 중 하나다. 구본창작가와 같은 중앙집중형의 구도로 달항아리가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마치 사진과도 같이 정교하게 사실적이면서도 작품 특유의 색감과 표현으로 허공에 오롯한 달항아리는 오히려 비현실적으로도 느껴진다. 그리고 달항아리 빙렬들의 표현은 퍼져있는 뭉게구름 같기도, 혹은 멀리 보이는 설산, 망망대해 넘실대는 바다의 파도들 같기도 하다.

 

이렇듯 두 작가의 작품을 보면 같은 달항아리라는 대상을 매체는 다르지만 같은 구도와 사실적 표현으로서 담아낸다. 이러한 행위는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에, ‘행위에 대한 의미’에 대해서 프랑스의 대표적 사상가 ‘장 보드리야르’의 저서 '시뮬라시옹 SIMULACRES et SIMULATION'의 ‘시뮬라시옹’개념을 빌려 말 할 수 있다.

 

‘시뮬라시옹’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시뮬라크르’를 알아야 한다. ‘시뮬라시옹’은 ‘시뮬라크르’의 동사적 의미로, ‘시뮬라크르를 하기’이기 때문이다. ‘시뮬라크르’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존재하는 것처럼 만들어놓은 인공물을 지칭하며 흉내 낸 대상이 없는 이미지다. 이 원본 없는 이미지가 그 자체로서 현실을 대체하고 현실은 이 이미지에 의해서 지배 받게 되므로 오히려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다. ‘보드리야르’는 가장먼저 지도와 영토를 실재와 ‘시뮬라크르’의 예로 든다. 쉽게 풀어 생각하자면, 네비게이션을 통해가는 초행길을 들 수 있다. 우리는 실재하는 길;영토를 지나가지만 그 실재의 길 자체보다는 ‘네비게이션;지도를 통해 본 길’을 사유한다. 세계지도를 봐도 그렇다. 우리는 우리가 경험하지 못 한 수많은 나라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지만 그것은 지도로 인식하고 있을 뿐 그 실재(實在)의 영토;길은 실제(實際)하지 않고 때로는 가치도 지니지 않는다.

 

보드리야르가 말하는 ‘시뮬라크르’는 반드시 원본이 선행되는 단순한 복제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뮬라시옹’은 원본도 사실성도 없는 실재, 즉 ‘파생실재’를 모델들을 가지고 산출하는 작업이다. 여기서 말하는 ‘파생실재(하이퍼리얼Hyperréel)’는 시뮬라시옹에 의해 새로 만들어진 실재로서 전통적인 실재와 그 성격이 판이하다. ‘파생실재’는 전통적 실재가 가지고 있는 사실성에 의해 규제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예전의 실재 이상으로 우리의 곁에 있으며 과거 실재가 담당했던 역할을 갈취하고 있기에 실재로서, 실재가 아닌 다른 실재로서 취급해야 한다. 실재하는 현실과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지만 전혀 다른 현실인 것이다. 

 

언뜻 보아 이 생경한 프랑스어 개념어인 ‘시뮬라크르’는 어렵고, ‘시뮬라시옹’은 우리와 동떨어진 듯 보이지만 그 어느 때보다 우리를 강하게 지배하고 있다. 미디어의 힘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강력하고, 더 나아가 영화로만 상상하던 ‘매트릭스’의 가상세계는 ‘현실증강’이란 단어로 어느 정도 피부에 와 닿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두 작가의 예술 활동은 보드리야르가 말한 ‘시뮬라시옹’이라 일컬을 수 있다. 실제로도 우리들은 박물관에서 경험한 실재의 달항아리가 아닌 작가들이 그려놓은 ‘이미지’를 통해서 달항아리를 사유한다. 

 

구본창작가의 ‘vessel’연작이 사진이란 매체를 회화적으로 표현하며 유물을 기록하기 위한 사진이 아닌 달항아리를 표현한 그 자체로써 예술작품으로 분류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서 온다. 문서진작가의 ‘Mind Vessel’연작 또한 사실적인 표현으로 달항아리를 그대로 드러내지만 작가가 담아내고자 하는 풍경의 매개로서 새로운 ‘파생실재(하이퍼리얼)’라고 보는 것이 더욱 정확할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혹자가 문서진작가의 작품들을 단편적으로나마 초현실주의(하이퍼리얼리즘)작품이라 칭한 것에 수긍이 가기도 한다.    

 

두 달항아리 작품 모두 달항아리의 특징인 형태와 용도가 갖는 ‘비워짐과 채워짐’의 상대적인 개념이 함께 공존하면서도 상충되며 만들어내는 재미있는 모순을 담아낸다. 이러한 아이러니는 달항아리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가장 큰 요소 중 하나이다. 구본창작가는 오롯이 존재감 있으면서도 어느 장소에서도 융화되며 조화로운 달항아리의 형태가 갖는 특징을 사진으로 잘 녹여내며 기록사진 이상의 그 대상의 정체성을 담아낸다. 문서진작가 또한 이러한 특징들과 더불어 도자기가 갖는 용도적 특성인 ‘담아냄과 비워짐’ 순백의 백자의 특징인 ‘비워짐과 비쳐짐’을 통해 풍경을 담아낸다.    

 

팝아트의 의미를 생각하며 들었던 “형식의 전복으로 이뤄지는 예술의 전위적 자전이 무거움의 차례로 돌아온 것일까?” 하는 이 질문은 어떤 의미를 갖고 대답할 수 있을까?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 질문은 사실, 상반된 두 개념의 시소놀이만큼 흥미롭게도 ‘중요하기도, 중요하지 않기도 하다.’ 예술작품의 본질과 가치에 대한 생각은 관객입장에서도 작가입장에서도 각각 다르고 그 어느 쪽도 중요하다.(또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작품의 형식에 대한 의미의 유무는 그 각자의 입장만큼이나 다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예술의 절대적인 불문율이 있다면 작품은 작가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 후 관객과의 상호작용에서 의미;가치가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문서진작가는 무엇을 우리와 함께 하고 싶은 걸까?

 

먼저, 문서진작가의 현재 작품이 나오기까지 과정을 훑어보고자 한다.  오래전부터 그녀에게 ‘오브제와 공간’의 관계는 큰 관심사였다. 그 가장 대표적인 오브제가 도자기였다. 그리고 달항아리에 매료 되었다. 공간은 다양한 공간이 등장했지만 주로 신화적 상징을 차용하며 태고의 생명을 상징하는 바다가 등장한다. 

 

▲ 그림6 문서진 정적 Mixed media 909×651mm  © 문화저널21 DB / 자료사진


90년대 중후반 '정적'시리즈에서 그녀는 도자기 오브제를 주제로 작업을 시작한다. 그리고 배경의 대조적인 마띠에르 등 표현을 위한 기법연구에 몰두한다. 

 

▲ 그림7 문서진 Zero Mass Mixed media 727×606mm  © 문화저널21 DB / 자료사진


2000년대 초반, 'Zero Mass'시리즈에서 바다와 함께 부유하는 오브제를 등장시키며 철학적으로 대상을 사유하고자 시도한다.

  

▲ 그림8 문서진 Intimate but Odd Mixed media  © 문화저널21 DB / 자료사진


그리고 2010년 후반까지 자연과 인공물이라는 주제로 달항아리와 바다가 실루엣으로 대조되며 오브제와 공간이 융합된다. 

 

▲ 그림9 문서진 Mind Vessel 19 2020 혼합매체 334×212mm  © 문화저널21 DB / 자료사진


문서진 작가의 지난 30년간의 작품들을 보면 뚜렷한 시각의 변화가 참 흥미롭다. 정리하자면, 오브제에 대한 연구에서 시작되어 ‘오브제와 공간’ 두 주제의 관계에 대한 시각적인 연구를 통해 일치되는 과정이 고스란히 보인다. 작품 안에서 ‘오브제와 공간’은 첫째로는 병치되었다가 공간이 단편적으로 오브제 안에 담기기도 하고, 때로는 경계를 갖고 융합되었다. 마지막에는 융합되는 과정에서 보였던 풍경을 오브제가 갖는 대상의 특징 안에서 자연스럽게 담아낸다. 

 

위에서도 언급했던 달항아리의 특징인 ‘비워짐과 채워짐’ ‘비어짐과 비쳐짐’들이 풍경과 더불어 대상의 본질적 탐구와 연구로서 작가만의 독자적인 균형을 찾은 것을 알 수 있다. 언 뜻, 사실적으로 잘 그려진 달항아리 그림 같지만 그녀의 달항아리 작품은 독자적인 그녀만의 풍경화라 할 수 있다. 

 

작품을 보며, 달항아리에 담긴 풍경 속에서 어릴 적 가족과 함께 갔던 해변이 추억으로 떠오른다. 덩달아 그때 그곳의 공기, 바다색, 가족들의 웃던 얼굴, 사소하지만 즐겁게 주고받던 농담들이 풍경 속 파도처럼 밀려든다. 누구에게나 추억은 문서진작가의 달항아리의 색채처럼 다채롭고 따뜻하게 어렴풋하면서도 영롱하다. 

 

마음속의 도자기 안에 담아내는 아련한 풍경은 연상 작용을 일으킨 심상으로 그 너머 관객마다 지녔을 노스텔지어로, 그 앞에 드리워진 문발을 가르고 찾게끔 한다. 공기가 깨끗한 밤, 달무리가 껴있는 달처럼. 그녀의 달항아리가 주는 심상들이 감각을 통해 감정으로 소통한다. ‘서정적 심상과 공감’ 이는 문서진 작가가 'Mind Vessel'연작 작품들로 하여금 관객과 소통하는 주된 방법이다.

 

내가 미술전공자라고 밝혔을 때 이따금 사람들이 미술관에서 어떻게 작품을 봐야하는지 물어볼 때가 있다. 미술작품을 일정한 도식이나 방법론이 있다고 막연히 어렵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내가 가장 먼저 하는 대답은 “작품을 본 그대로 느끼라”는 것이다. 제각각 사람마다 작품을 보는 자기만의 방식이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작품을 보는 가장 첫 걸음은 일단 느끼는 거다. 

 

그리고 그 ‘느낌’의 출처를 바라보고 필요하다면 작가가 던지는 질문을 호기롭게 풀어본다. 별 감흥이 없는 작품은 가볍게 보고 넘어가도 좋다. 그 후에 작품의 정보를 읽는 거다. 작가의 의도와 다르다면 다른 대로, 비슷하다면 비슷한 대로 틀린 답도, 방법도 없다. 

 

그 과정 속의 작품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질문을 푸는 일은 관객만이 누리는 가장 큰 재미 중 하나다. 다양한 작품에 따라 문제를 풀어내는 접근방법도 제각각이다. 그런 면에서 문서진작가의 작품은 명쾌하다. 그 작품 안으로 들어가서 느끼는 것. 누구나 지니고 있는 마음속 한 켠에 있는 그 풍경을 함께 나누는 거다. 

 

2020. 10.  미술평론가 박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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