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J영상] 붓을 든 수월관음, 법관 화백과 고암갤러리

최병국 기자 | 기사입력 2020/10/07 [17:29]

[MJ영상] 붓을 든 수월관음, 법관 화백과 고암갤러리

최병국 기자 | 입력 : 2020/10/07 [17:29]

지난 9월 강원도 강릉시 외곽의 능가사에 위치한 법관 화백의 ‘고암아틀리에’를 찾았습니다. 법관 화백은 선승(禪僧)이자 예승(藝僧)으로서 풍부한 영감과 활달한 필력뿐만 아니라 ‘수행은 곧 창작’이라는 신념으로 생의 종점까지 예술에의 정진을 다짐하고 있는 운명적 작가입니다. 

 

 

19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그의 예술인생은 1999년 연말 강릉 능가사의 주지로 부임하면서부터 본격화되었습니다. 특히, 그의 작품세계는 초기 선화 및 색채의 향연으로 불리는 유혹적인 색면 추상시대를 지나 자연과 생명의 빛을 향한 순수 추상시대를 전개하면서 미래가 기억할 작가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법관 화백의 작품들은 깊은 사색과 성찰이라는 수행정진 과정에서 탄생된 육필언어 입니다. 명상의 수행(修行)과정에서 인간사의 오욕칠정(五慾七情)을 붓끝으로 잠재우면서 탄생된 구도(求道)의 선(禪)예술로서 깨달음과 겸손의 미학입니다. 또한 그의 예술은 수행 과정에서 깊은 사색과 내적 통찰을 통해 우주의 본질에 육박하려는 명상과 통찰의 미학입니다. 마치 침묵의 땅 깊은 어둠 속에서 피어나는 듯한 점(點)과 선(線)들의 향연(饗宴)은 또 다른 세상을 향해 돋아나는 새순처럼 진정한 아름다움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그의 예술이 전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예술은 감동’이라는 미의 전달과 평안입니다. 그의 예술은 ‘모든 물질은 그 자체 속에 생명을 갖추고 있어서 생동한다’는 물활론(物活論)에 근거한 오브제들의 생명력 갈구로서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영원한 생명의 선율입니다. 그의 예술은 선(禪)수행으로부터 오는 긴 시간의 흐름에 대한 기록으로서, 벽산(碧山)을 향해 붉음을 토해내는 구도(求道)의 선(禪)예술입니다. 실로 ‘생명의 예술’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법관 미학의 최고가치는 균형(均衡)입니다. 이는 시메트리(Symmetry)로 인식되는 좌우균제 차원이 아니라 깨달음의 이치입니다. 또한 작품들은 만물의 존재가 의지하여 동일체를 이루려는 성상(成相)예술로서, 일정한 형식 등에 구애됨이 없이 자유로운 영혼의 숨결을 담아내는 존재의 미학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는 현재 수행 길로부터 깊은 사색과 통찰의 과정을 통해 절대적 의미의 순수 추상회화의 독자적인 화풍을 개척하면서 우주의 본질을 향해 비행하고 있습니다. 작품들을 통한 소통과 위안을 갈망하면서 말입니다.

 

“…(중략) 그림은 본래 자기의 성품을 잘 드러내야 하고, 그 성품은 수행을 통해 간결하고 욕심 없는 가운데 즉심에서 나와 모자람과 어리석음을 넘어 부족함이 없는 가운데서 오롯이 모든 것을 능히 담아야 한다. 궁극적으로 간결하고 맑으며 모자람이 어린아이처럼 천진하여야 하고, 고졸함이 잘 다듬어진 인품을 담은 노인네와 같아서 가만히 보고 있기만 하여도 감동을 주어야 한다. ...(중략)... 모든 것은 느낌으로 전달되어야 하고 따뜻하고 자유로워야 한다. 드러냄 없이 드러내고, 깊고 따뜻함이 내적으로부터 나와 사람의 마음을 원만하게 품을 수 있어야 한다. 근본 마음을 일상에 두어야 하고, 그것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균형을 이루는 데 있어 군더더기를 허락하지 않아야 한다. 맑기가 거울과 같아야 하고 그 뿌리가 훤히 드러나 진정성이 보여야 한다. …(중략)… 마음을 뚫고 투과해서 그리는 사람과 그려진 그림이 하나가 되어 보는 이도 그리는 이도 그려진 것도 없어야 비로소 우주의 펼쳐짐을 눈앞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작가노트에 있는 말입니다.

 

법관 화백의 예술세계는 자연과 생명의 빛을 향한 갈망의 숨결로서 묵언수행을 통해 영글은 작가의 속살입니다. 법관 화백의 순결하고 자유로운 영혼이 켜켜이 스며있는 투명하고 밀도 높은 작품들 속에 우주의 운행원리가 숨겨져 있으며, 그 원리는 보는 이들의 관점에 따라 각각 다르게 사유될 수 있는 열린 예술입니다. “수행을 통해 얻은 마음의 평안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작품이 그러하겠지요”라는 작가 법관의 무심한 고백은 이의 갈망입니다.

 

법관 화백은 승려 이전에 감수성을 잃지 않는 예술지상주의자입니다. 우리는 그의 작품들에서 잃어버린 감수성을 되살리면서 영감의 확충과 마음의 풍요를 느낄 수 있습니다. 우주로의 여행을 위해 멈춰진 숨결 속에 껍질을 벗어던지고 속살마저 태우고 있는 영원한 예인 법관 화백의 모습을 떠올리면 붓을 든 수월관음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의 손놀림에 의해 찰나의 순간에 우주의 신비가 조형됩니다. 그의 붓은 그리는 도구가 아니라 사색의 일부이기도 합니다.

 

그는 “예술의 세계는 스승도 제자도 없으며, 작가는 오로지 작품으로만 평가된다. 평가는 날카로운 관람자들의 몫이다”라고 강조하면서,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처럼 수많은 관람객의 눈초리에 포위당할 것을 생각해 땀을 흘리고 또 흘리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수행의 과정에 오브제들이 저절로 형상화 되었다. 그러므로 형상화 된 오브제들은 나의 또 다른 원형으로서 무어라 표현할 수 없다. 생명력을 간직하면서 우주를 비행해 주길 바랄 뿐이다”라고, 힘든 작업과정과 바램을 솔직 담백하게 전달했습니다. 그러면서 “나의 작품들이 푸른 바람이 되거나 부드러운 햇살 또는 흰 구름이 되어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면서 통로를 열어주는 열린 예술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습니다.  

 

달마 등 선화에서 시작된 그의 작품들은 섬광처럼 스쳐가는 영감 속에 변화를 거듭하다 색면 추상시대를 거처 순수추상시대를 개척하면서 우주로의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이는 영감과 의지의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예지와 노력을 넘어선 운명의 필연적 흐름이라 볼 수도 있습니다. 점점 더 골 깊은 예술의 산속으로 들어가는 법관 화백은, “향후의 삶은 고달프고 험난할 것이 예상되지만, 숙명이라면 어쩌겠나”면서, 생의 종점까지 담담히 걸어갈 각오를 밝혔습니다.

 

법관 화백의 작품에서는 인간들이 원초적으로 동경해 온 우주의 신비가 꿈틀거리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한 퇴적된 기억 속에서 순수를 발견하면서 상처를 위로 받을 공감과 감동을 찾아 낼 수 있습니다. 법관 화백은 시간과 공간의 여백을 마음껏 향유하면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 점 하나만으로도 그의 행위 하나하나는 평가받을만한 예술 그 자체라 할 것입니다. 

 

삶이 다하는 순간까지 치열한 예술혼을 불태워 불후의 명작들을 남김으로서 예술문화 발전에 기여하길 염원합니다. 

 


 문화저널21 최병국 기자 / 영상편집 : 박명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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