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솟는 풍경 / 한영옥

서대선 | 기사입력 2021/08/23 [08:54]

[이 아침의 시] 솟는 풍경 / 한영옥

서대선 | 입력 : 2021/08/23 [08:54]

솟는 풍경

 

길 건너려고

푸른 신호 기다리며 서 있는 데

사람들이 오고 가는 건너편에서

갑자기 풍경 하나 솟아오른다

이쪽저쪽에서 뛰어오시던 할머니들

서로 가까워지자 두 손 치켜들고

춤추듯이 달려와 와락 껴안으시더니

겅중겅중 솟아오르신 것이다

드디어 푸른 신호가 들어왔다

바삐 건너왔을 때 두 분, 할머니들은

벌써 위쪽으로 많이 걸어가셨다

솟는 풍경 나도 만들 수 있을까

어제와 그제 또 내일을 두리번거리며

아래쪽으로 더듬더듬 내려갔다

 

# ‘죄송합니다. 양보해 주세요. 공항에서 바로 여기로 왔어요. 어머니가 비행기 안에서 내내 냉면 이야기만 하셔서...’  몇 해 전 냉면집 안으로 연로한 어머니를 등에 업은 채 “솟는 풍경”으로 허겁지겁 들이닥친 아들을 위해 대기실에 앉아서 순번을 기다리고 있던 열댓 명의 손님들은 두 말없이 대기 순번을 양보했다. 먼 이국땅에서 뿌리를 내리며 팍팍하고 외로웠던 세월 동안, 고국이 그리울 때마다, 가장 먼저 할머니 마음속에 전경(figure)으로 떠올랐던 허기가 아마도 슴슴한 냉면 한 그릇이었나 보다. 

 

개인에게 전경으로 “솟는 풍경”은 주로 그 사람과 가장 밀접한 관계에 있거나 의미 있는 것이며, 주요 관심사를 나타내는 것이다. 예컨대 오랜만에 고국을 방문하게 된 할머니께서 몹시도 드시고 싶었던 냉면 한 그릇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욕구가 되어 할머니의 마음속에 전경으로 “솟구쳤던” 것이다. 이렇듯 전경으로 떠올렸던 욕구를 해소하고 나면 전경은 자연스레 배경으로 물러나게 되고 또다시 새로운 욕구가 전경으로 형성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유기체의 순환과정을 ‘게슈탈트(Gestalt) 형성과 해소’ 또는 ‘전경과 배경의 교체’라고 한다. 

 

우리가 바라보는 시야 앞에는 다양한 대상들이 널려있지만, 이 모든 대상에 대해 동시에 주의를 기울일 수는 없다. 순간순간의 상황과 조건에 따라 많은 대상 중에서 특정 대상만을 선택하여 전경(figure)으로, 그 배후의 대상은 배경(ground)으로 구분하는 전경-배경 분리(figure-ground segregation) 경향을 지닌다. 전경-배경 분리 과정은 우리 뇌에서 시각처리 흐름과 관련이 있다. 시각정보 세포가 가지는 중요 특성은 색에 민감하고, 반사된 빛의 강도에 따른다. 또한 개인에게 내재 된 욕망의 갈급한 순서에 의해 결정되기도 한다. 

 

'전경과 배경의 교체'는 자연스러워야 하는데, 과거에 만성적인 부정적 정서의 경험이나 외상적 사건이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게 되면, 자신의 진정한 욕구가 무엇인지 잘 모르게 되어 어느 것부터 해결해야 할지 알 수 없게 된다. 따라서 매사에 결정 장애가 발생하게 되어 혼란스러운 태도를 보인다. 건강한 삶을 지속하려면 자신의 욕구를 정확하게 알아차리고 그 욕구의 중요도에 따라 전경으로 내보내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아, 나도 코로나 때문에 팍팍했던 시간들 물러가면, 보고 싶었던 친구들과 약속을 잡고 길거리 카페 앞에 먼저 가서 기다리다가 사람들 사이로 친구들이 나타나면 “춤추듯 달려”가 “와락 껴안고” “겅중겅중 솟아오르”는 풍경을 만들고 싶다.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 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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